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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우리는 정말 몰랐을까'

입력 2016-02-1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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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 1964년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노비스라는 젊은 여성은 늦은 밤 집에 돌아가던 중 한 정신이상자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녀는 큰 목소리로 '살려달라' 구조요청을 보냈지요.

그 목소리를 들은 동네 사람들은 모두 서른여덟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잔혹하게 살해당하던 그 35분 동안 그녀를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집집마다 불을 켜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을 뿐입니다.

방관자 효과라고 불리는 이 제노비스 신드롬.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여긴 사람들의 심리는 결국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 역시 누군가를 향해 보이지 않는 구조요청을 계속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아이가 겪은 그 참담한 비극을 마치 TV드라마를 시청하듯 '관람'하고만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백골로 발견된 그 아이… 살릴 수 있었다." 어제(16일) 저희들이 전해드린 리포트입니다.

경기도 부천의 그 아이도. 뼈만 앙상하게 발견된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은 가족해체가 가져온 비극만도 아니고 계모의 학대나 폭력의 대물림 때문만도 아니라, 방에 불을 켜고 현장을 목격했지만 그저 외면하고만 싶어했던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여러분께선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드라마 < 응답하라 1988 >이 공감을 얻었던 이유는 아련한 그 골목. 함께 사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선 한부모 가정도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도 모두 무심한 듯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우리가 기억하는 80년대의 추억은 단지 기억의 재구성일 뿐, 당시에도 학대는 있었고 그에 의한 죽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았습니다.

미국인들이 1964년의 키티 제노비스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1988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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