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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대한민국 '석탄 고집', 한전도 정부도 '고집불통'

입력 2020-10-12 08:58 수정 2020-10-12 11:0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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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47)

바로 지난주 연재글에서 상승세가 꺾일듯한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 그래프를 보며 기대와 희망을 품었었죠. 하지만 '역시는 역시다' 싶은 일들이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대한민국 '석탄 고집', 한전도 정부도 '고집불통'

앞서 지난 4월과 7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 오명을 벗지 못 하는 배경엔 국내외 석탄 문제가 있다고 전해드린바 있죠.

 


이후 기초자치단체를 시작으로 국회에서도 기후위기 비상 선언에 나섰고,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중장기 국민정책제안' 결정을 위한 공론화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변화와 행동에 박차를 가한다는 인상이 채 남기도 전에 곳곳에서 '허울뿐인 선언'이 우려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해외_석탄발전소_추가_건설_확정한_한전
한국전력은 두 차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도 '손실'이 예상됐던 인도네시아 자와 9호기, 10호기에 대한 투자 결정을 강행했었죠. 2020년 6월 30일 화요일 아침, 임시 이사회까지 열어가면서 말입니다.

그로부터 불과 석달이 조금 지난 2020년 10월 5일, 한전은 또 다른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 계획을 확정졌습니다. 베트남 붕앙 2호기 사업입니다. 총 사업비 22억 달러(우리 돈 2조 6천억원)에 달하는 사업인데, 이중 한전은 2200억원의 지분 참여를 하게 됩니다. 설계 및 조달, 시공엔 삼성물산과 두산중공업이, 대출과 보증엔 수출입은행이 나섭니다. 투자부터 건설까지 다 우리나라가 개입하는 사업인 겁니다.

#한_사업의_예상_적자만_950억_석탄에_묶인_돈_12조
적자 판정을 받았던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소와는 상황이 다르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5월 예타 결과, 베트남 석탄발전소도 역시 '950억원 손실' 판정을 이미 받은 상태입니다. 이는 곧, 투자한 금액의 40%를 잃는다는 뜻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적자폭 85억은 '애교'처럼 보일 정도죠.

우리나라가 이 사업에서 이렇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 치열한 경쟁의 결과였을까요? 앞서 윤세종 기후솔루션 이사는 지난 7월 JTBC 소셜라이브에 출연해 "기존에 있던 사업 투자자들이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윤 이사는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 DBS, OCBC가 모두 투자를 철회했고, 지분 투자자인 홍콩의 전력회사 CLP도 탈석탄 선언과 함께 지분 매각에 나섰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장 기후변화, 환경 문제를 떠나서 '수익성'조차 담보할 수 없자 모두들 떠나간 겁니다. '손절'에 나선 CLP의 보유 지분 40%는 한전이 거둬들였습니다.

"사실 석탄사업은 지금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이걸 따내지 못 하면 다른 나라에게 빼앗기는 사업이 아닌, '폭탄 돌리기'에 가까운 사업이다. 경제성이 워낙 안 좋아지고 있고, 앞으로의 전망도 나쁘기 때문에 다들 떠나고 싶어하는 사업인데 오히려 한전이나 수출입은행 같은 우리나라 공기업, 공적 금융기관들이 이걸 나서서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의 상황에 대한 윤세종 이사의 분석입니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등 우리나라의 공적 금융기관은 이미 2008~2018년에만 해외 석탄에 11조 6842억원의 돈을 투입했습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사업까지 추가하면 그 규모는 약 12조원에 달하게 됩니다.

#잃는_것은_돈_뿐일까
기후솔루션이 경제적 측면에서의 손실을 면밀히 분석했다면,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온실가스 측면에서 이 문제를 조사했습니다. 한전과 5개의 발전 자회사(중부발전, 서부발전, 남부발전, 남동발전, 동서발전), 3개의 공적 금융기관(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이 투자, 대출 또는 보증 등의 형태로 금융을 지원한 해외 석탄발전소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총량을 따져본 겁니다.

이번에 한전이 투자를 확정한 베트남 붕앙 2호기는 오는 2025년 가동을 시작합니다. 이 때, 우리나라가 투자한 해외 석탄발전소들이 내뿜는 탄소 배출량은 연간 1억 7800만톤에 달한다는 것이 조사 결과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의 양일까요. 네덜란드 한 나라가 1년동안 내뿜는 양(1억 8800만톤)에 육박하는 막대한 양입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2030년까지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양(1억 7300만톤)을 웃도는 양입니다.

#고집불통_일방통행_뒷배는_정부?
이렇게 온갖 잡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해온 해외 석탄 투자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한전은 지난 10년새(2010~2019년) 1조 2743억원의 해외 사업 평가 손실을 입었고, 이중 절반이 넘는 6437억원의 손실이 석탄 사업에서 발생했다." 녹색연합은 이같이 꼬집었습니다. 해외 석탄 투자에 대한 비판에 언제나 "수익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고 답변하고 있는 한전은 도대체 어떤 '근자감'에서 이런 입장을 내놓을 수 있었던 걸까요.

한전과 공적 금융기관이 이런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은 그저 해당 기업, 기관의 '독단적 판단'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지난 9월 18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회 산업통산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한전이 이사회를 열어 베트남 안건을 통과시킨 것은 그로부터 보름도 더 지난 후의 일입니다.

#안에선_그린뉴딜_밖에선_석탄팔이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그린뉴딜을 천명했을 때, "3년 내 성과 낼 수 있다"고 자신했던 사람은 바로 성 장관이었습니다. 당시 성 장관은 "그린뉴딜은 2~3년내 성과를 도출할 수 있고, 에너지 전환과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함께 나올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호언했습니다. 장관이 말 한 "2~3년 내"에 이뤄진 해외 석탄 투자,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녹색연합은 "산업통상자원부를 필두로 한 정부 부처와 청와대가 해외 석탄투자를 용인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정부와 여당을 비롯한 국회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말_뿐인_탄소중립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의 해법을 찾기위한 국민 공론화 과정을 준비중입니다. 지난 9월 19~20일 양일간 '예비 토론회'를 열었고, 오는 24~25일 전체 국민정책참여단이 참석하는 '종합 토론회'가 열리죠. 이 토론회를 통해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을 도출하게 됩니다. 이후 산업계와 지자체 등과의 협의, 자문단 의견수렴, 국가기후환경회의 본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에 오는 11월 최종 제안이 넘어가게 됩니다.

이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엔 8대 대표과제가 있습니다. ① 2030 미세먼지 감축목표 설정, ② SDGs(지속가능개발목표), 기후변화, 녹색성장을 아우르는 국가비전 마련, ③ 미세먼지, 기후변화 연계 다자제도(협약) 구축, ④ 미세먼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가 싱크탱크 설치, ⑤ 자동차 연료가격 조정(경유, 휘발유), ⑥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 로드맵 마련, ⑦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 등 국가전원믹스 개선, ⑧ 전기요금 합리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탄소중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⑥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 로드맵 마련, ⑦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 등 국가전원믹스 개선입니다.

문제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국민정책참여단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 대안'에 "2030년 석탄발전 퇴출"이 아예 없다는 점입니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마련한 '석탄발전 퇴출연도'는 2040년, 2045년, 2050년 총 3가지입니다. 국민정책참여단은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환경운동연합과 기후솔루션, 녹색연합, 에너지전환포럼 등 전국 탈석탄 시민사회단체의 모임인 '석탄을 넘어서'는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대한민국 등 선진국들은 2030년 이전까지, 개도국까지 포함하면 늦어도 204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탈석탄을 마쳐야 한다는 것이 IPCC의 권고"라며 "석탄발전 종료 시점 시나리오를 최대 2050년으로 제시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산업계가 아닌 기후 과학과 시민 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겁니다.

#기후악당_넘어_기후악마로?
사실, 이미 우리 정부가 만들고 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만 보더라도, 2054년경 석탄발전소는 도태되게 됩니다. 잘 굴러가던 것을, 새 발전소를 갑자기 멈추고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쓸만큼 써서 도태되는 시점이 2054년인 거죠. 그렇다면, '기후변화에 대응한다',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면서 탈석탄 시점으로 2040~2050년을 논의하는 것, 이것이 국제사회에 주는 시그널은 무엇일까요.

또, 손실이 확실시되는 해외 석탄 투자를 강행하는 한전, 그 한전의 '해외 투자자'들은 그 판단을 어떻게 볼까요. 윤세종 기후솔루션 이사는 "(한전의 해외 석탄 투자에 대해)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이미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3월엔 16개의 글로벌 투자자가 공동으로 한전의 해외 석탄 사업에 우려를 표명했고, 4월엔 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사인 '블랙록'이 한전에 사업 투자의 근거를 밝히라고 요구하기도 했죠. 한전의 금전적 손실, 온실가스의 증가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로부터의 신뢰까지 저버리게 되는 상황인 겁니다.

양연호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한전의 붕앙 2호기 사업 확정에 대해 "그린뉴딜을 통해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최근 발표를 스스로 어기는 꼴"이라며 "이런 행보는 코로나 펜데믹 와중에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제사회에 또 다시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꼬집었습니다.

대대적으로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홍보한 나라에서, 유엔에 '푸른 하늘을 위한 국제 맑은 공기의 날'을 제안한 나라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협의체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의장의 나라에서 2020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그저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기만 했던 '기후악당'에서 표리부동, 겉과 속이 다른 '기후악마'로 변해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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