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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손 묶여, 짐승처럼…" 5·18 고문 가혹행위 증언

입력 2018-04-30 21:31 수정 2018-04-30 23:13

'5·18 때 가두방송' 차명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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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가두방송' 차명숙 씨

[앵커]

"한 달간 손이 허리에 묶여 식사도 볼일도, 짐승처럼 해결했다", "흰옷이 까맣게 되도록 짓밟혔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때 가두방송에 나섰던 차명숙 씨가 증언한 가혹 행위 내용입니다. 몇 달 뒤에 출범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밝혀야 할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진명 기자입니다.
 
[기자]

차명숙 씨는 5·18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거리방송에 나섰습니다.

항쟁 시작 며칠 만에 병원에서 부상자를 간호하다 신군부에 끌려갔습니다.

38년 만에 다시 찾은 505 보안대에 서니 모진 고문의 기억이 다시 살아납니다.

[차명숙/대구·경북 5·18동지회 공동대표 : 평생 나가서 사람 구실도 못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겠다는 그런 협박…]

군홧발로 짓밟히고 몽둥이에 두들겨 맞고, 살이 터지기고 피가 흘러 흰색 속옷이 까맣게 변했던 악몽을 고발했습니다.

80년 9월 광주교도소로 옮겨진 뒤에도 고문에 가까운 가혹 행위가 계속됐습니다.

등 뒤로 수갑을 채운 뒤 교도관들이 곤봉에 끼워 들고 다녔습니다.

당시 수감기록에는 다른 재소자에게 불온한 말을 했다며 한 달간 혁시갑 처벌을 가했다는 내용도 남아있습니다.

혁시갑은 25cm 쇠줄에 묶인 가죽 수갑을 양쪽 손목에 차게 하는 형벌입니다.

엎드려 밥을 먹고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차명숙/대구·경북 5·18동지회 공동대표 : 여성들에게 가해진 고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욕과 조금의 인권도 보호되지 않았으며…]

차 씨는 9월 출범하는 진상규명위원회에 고문수사와 잔혹 행위도 조사하고 책임자도 처벌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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