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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컵라면으로 살아가는 아이들ㅣ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입력 2021-02-20 20:08 수정 2021-02-2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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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픈마이크, 이번에는 우리 아이들의 '밥' 이야기입니다. "밥이 없었어요.", "거의 다 굶어요. 배고플 때는 뭐…참죠"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이야기, 지난해 전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 보도 이후 몇달간 아이들의 하루 밥상을 추적해보니, 나라에서 굶지 말고 나가서 사먹으라고 지원해주는 아이들 중에서도 제대로 된 밥을 못 먹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쫄쫄 굶진 않더라도 편의점 컵라면으로 때우는 겁니다.

이유가 뭔지, 대책은 없는지, 오늘(20일)부터 연속 보도해드리겠습니다.

[기자]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초등학생 형제는 오늘도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작은 손으로 장바구니를 들고는 뭘 사야 하는지 잘 안다는 듯 고민 없이 컵라면과 우유를 집습니다.

모두 하나를 덤으로 주는 '행사 상품'들입니다.

[2+1행사상품입니다.]

[5200원.]

사실 형제는 오늘 아침도, 방금 산 것과 똑같은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왜 아침부터 컵라면 먹었어?) 반찬이 딱히 없어서요.]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가 바쁜 날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아이의 엄마도 꼭두새벽부터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스스로 끼니를 챙겨야 하는 아이가 주린 배를 잡고 가는 곳은 역시 '편의점'입니다.

아이는 빵과 음료수로 배를 채웁니다.

이렇게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 적지 않습니다.

편의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몇 번이나 오는지 물었습니다.

[매번 와요. (매일?) 네.]

[일주일에 7번.]

[6번이요.]

삼시 세끼를 편의점에서 해결한다는 아이마저 있었습니다.

[엄마가 일이 좀 바쁘셔가지고…혼자 세끼 챙겨 먹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최대한 많이 사가지고 세끼 나눠 먹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편의점이 '지겹다'고 말합니다.

[지겹죠. 맨날 똑같은 것만 먹으니까. 그냥 안 먹는 게 나을 거라고는 생각이 좀 들어요. 먹어봤자 자기 입맛에 들지도 않는 거…굳이 꼭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이토록 지겨운데, 왜 계속 편의점만 찾는 걸까요?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이렇게 결식 우려가 있는 아이들에게, 정부는 '아동급식카드'라는 것을 줍니다.

굶지 말고, 학교 급식에 준하는 균형 잡힌 식사를 사 먹으라고 주는 겁니다.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편의점 말고, 급식카드를 쓸 수 있는 식당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이 동네에는 없고, 저기 좀 버스 타고 가야 될 그런 거리?]

실제 저희가 인터뷰한 한 아이 집 근처에서 급식 카드를 한 번 써보겠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식당들로 들어가 봤습니다.

[A식당 : (사장님 혹시 여기 아동급식카드 받아요?) 아니요.]

[B식당 : (아동급식카드 혹시 받아요?) 그런 거 나는 안 해가지고.]

[C식당 : 급식카드? 안 받아요.]

집 근처에 가까이 있는 식당은 모두 쓸 수 없다고 하는데요. 저쪽으로 가면 급식카드를 받아주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한 번 가보겠습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여러 식당이 보이지만, 급식카드를 든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건널목을 건너고, 굴다리를 지나, 어른 걸음으로 20분 넘게 걷고 나서야 '고마운 식당'을 찾았습니다.

[어, 저기. 찾았어요, 드디어.]

[D식당 : (안녕하세요. 저, 사장님 혹시 여기 아동급식카드 사용 돼요?) 네 됩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메뉴판을 보니 걱정이 밀려옵니다.

하루 한 끼 6천 원이 지원되는데, 여기서 6천 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건 '흰죽' 뿐입니다.

다음날 쓸 돈을 당겨 쓸 수는 있지만, 그렇게 쓰다가는 월말에 쫄쫄 굶어야 합니다.

[(그렇게) 매일 쓰다 보면은 가끔 20일 동안은 못 먹어요.]

[원래 6천 원 기준으로 나오니까. 잔액이 없다고 그러면 그때는 '아, 살 빼는 날이구나' 하고 안 먹거나 아예…]

밥 굶지 말라며 급식카드를 쥐여준 아이는 전국 약 12만 4천 명.

서울 한 지역만 따져봐도, 지난해 급식카드가 가장 많이 쓰인 곳은 역시 '편의점'이었습니다.

3년째 급식카드를 쓰고 있지만, 편의점밖에 못 가봤다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이런 부탁을 해왔습니다.

[가맹점이 많아 졌으면 좋겠어요. (가맹점 많아지면 뭐 사 먹고 싶어?) 음… 맛있는 음식이요.]

맛있는 음식은 인스턴트가 아닌, 급식카드 취지에 걸맞는 영양가 있는 따뜻한 밥과 찌개였습니다.

[김치 찌개요.]

[저는 부대 찌개요.]

[엄마 집밥이 그립고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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