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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언론과 기업 그리고…'장사장의 치부책'

입력 2017-08-0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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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공무를 의논하기 위해서 홍주목사 유의에게 편지를 띄운 것이 한참 전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았던 겁니다.

다산은 유의를 직접 찾아가 왜 답장을 않느냐 따져 물었고 유의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벼슬에 있을 때는 편지를 뜯어보지 않소"

실로 그의 편지함에는 채 뜯지도 않은 편지가 가득했습니다.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지방 고을 수령에게 어찌 그리 많은 청탁이 있었는지….

비록 작은 고을의 수령이었지만 유의는 보지 않고 듣지 않음으로 해서. 스스로를 지켜왔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공개된 문자메시지들입니다.

상대는 작은 고을의 수령도 아닌, 국내 최고, 최대라는 대기업의 최고위급 힘 있는 임원. 그러니 그 청탁의 간절함은 더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부모의 애끓는 마음을 가눌 길 없어…하해와 같은 배려와 은혜를 간절히 앙망하오며…"

자녀의 채용을 부탁하거나. 사외이사 자리를 청탁하고 광고와 협찬 증액을 요청한 사람들.

유려해서 차라리 더 서글픈 이 문자메시지들을 보낸 사람들의 일부는 바로 언론인들이었습니다.

장사장의 치부책에 기록되었을 수많은 청탁의 증거들. 그 거래의 대가로 은폐되었을 부조리의 크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홍주목사 유의가 편지를 뜯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편지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보지 않아도 선명히 보였기 때문이겠죠.

청탁의 말을 주고받은 이들 역시 보지 않아도 선명하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언론과 기업. 그 팽팽한 긴장이 흘러야 할 관계 속에서 선의로 인해 거저 주어지는 것은 결코 없다는 것.

그렇게 해서 장사장은 보지 않고 듣지 않아야 할 것을 보고 들었을 것이고 언론은 그 대가로 봐야 하고 들어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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