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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다리 소년' 한순철, 복싱 값진 은메달 강펀치를 날리다

입력 2012-08-12 22:10 수정 2012-08-12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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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다리 소년' 한순철, 복싱 값진 은메달 강펀치를 날리다


"내가 해준게 아무것도 없어서..."

한순철의 어머니 이상녀(49) 씨는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을 붉혔다. 이 씨는 인터뷰를 꺼렸다. 속초의 자택에 방송국이 온다는 것도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어렵게 입을 연 그는 지난 28년간 아들에게 짐만 지웠다며 가슴을 쳤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란 아들은 어느덧 한국 복싱의 대들보가 됐다.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값진 은메달을 땄다. "고생만 한 아들이 맞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던 어머니 이씨는 은메달이 확정되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운동부에서도 안 받아준 약골

한순철(28)은 1984년 12월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장비 기사였다. 유복하지 못했지만 단란한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못 배운 것이 한이었다. 그래서 아들만큼은 속초의 명문인 속초고에 들어가길 바랐다. 어린 한순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공부는 생각만큼 안 됐다. 중학교 1학년 때 한순철은 운동을 잘하면 속초고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운동부를 기웃거렸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레슬링부였다. 몸무게가 29kg도 안 나갔던 어린 한순철은 악으로 버티겠다며 레슬링부 코치를 설득했다. 그러나 탄탄한 체형이 유리한 레슬링에 길쭉한 체형의 한순철은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일주일도 안 돼 퇴짜를 맞았다.

##눈빛으로 통과한 복싱부

좌절하고 있던 한순철에게 담임 선생님이 복싱부를 추천했다. 당시 설악중 복싱부를 이끌던 염평림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한순철은 '너무 말라 뼈만 앙상했고 다리는 새다리'였다. 염 감독은 "복싱은커녕 서있기도 힘들어보였다"고 떠올렸다. 그래도 염 감독은 한순철의 눈빛을 보고 운동을 시켰다. 눈에서 광채가 났다. 한순철은 아무리 힘든 훈련을 시켜도 다 소화했다. 줄넘기와 스텝 밟기, 달리기 등등 기본기 훈련만 1년 반을 넘게 했다.

염 감독은 한순철이 중학교 2학년 때 전국을 돌며 스파링을 시켰다. 한순철의 펀치는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빠른 스텝과 긴 리치를 이용한 잽, 스트레이트가 빠르고 예리했다. 염 감독은 '아웃 복서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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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가장이 된 한순철

한순철은 중학교 3학년 때 전국소년체전에 나가 설악중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연스럽게 복싱부가 있는 속초고 입학도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속초고 입학을 앞두고 있던 중3 겨울방학. 아버지가 고장난 기계를 고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가 서른 아홉의 젊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어머니 이 씨가 식당을 차려봤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모아둔 돈도 대부분 날리고 이 씨의 건강까지 나빠졌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야 했다. 소년 가장이 된 한순철은 더욱 절실하게 복싱에 집중했다. 고교 무대에서는 그를 상대할 선수가 없게 됐고 주니어 대표까지 선발됐다.

##의리와 집념으로 도전하는 마지막 무대

아마추어 선수들이 가장 진학하고 싶어하던 한국 체대에서 그를 원했다. 그러나 한순철은 돈을 벌기 위해 실업팀인 서울시청에 들어갔다. 그는 황철순 서울시청 감독을 만나 기량을 만개했고 전국체전 7연패란 금자탑을 쌓았다. 자연스럽게 다른 실업팀에서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그를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한순철은 "황 감독님 때문에 팀을 옮길 수 없다"며 높은 연봉도 뿌리쳤다.

국내 무대는 평정했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도하 아시안게임 때는 은메달에 그쳤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에 머물렀다. 광저우 때는 왼손 부상까지 입었다. 이후 왼손의 뼈는 돌아가며 금이 갔다. 지난 5월까지도 깁스를 하고 있었고, 국제대회에 많이 못나가다 보니 세계랭킹은 19위까지 떨어졌다.

왼손이 완전치 않았지만 한순철은 가족을 위해 마지막 올림픽 무대의 링에 올랐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와 두 살 된 딸이 있다. 이들은 랭킹 19위에 불과한 한순철이 예상 밖의 은메달을 딴 원동력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면 22살의 부인과 어린 딸을 뒤로 한 채 군대에 가야했다. 이승배 감독은 '딸'과 '군대'라는 두 단어를 반복해서 얘기했고, 그 때마다 한순철은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내뻗었다.


속초=김민규 기자 gangae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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