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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 단죄'…뒤늦은 정의 구현

입력 2018-03-27 10:53 수정 2018-03-27 13:00

누명 쓴 소년 10년 복역 뒤 재심 끝 무죄…18년만에 진범 징역 15년 확정
경찰·검찰 2003년 진범 잡고도 석방…'억울한 옥살이' 영화로도 조명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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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쓴 소년 10년 복역 뒤 재심 끝 무죄…18년만에 진범 징역 15년 확정
경찰·검찰 2003년 진범 잡고도 석방…'억울한 옥살이' 영화로도 조명돼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 단죄'…뒤늦은 정의 구현

지연된 정의는 굽이굽이 18년을 돌아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최모(33·당시 16)씨는 2000년 8월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하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최씨는 10대 초반부터 다방에서 배달일을 했다.

후텁지근했던 그 날도 평소와 같았다.

최씨는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끔찍한 현장을 목격했다. 길가의 한 택시 운전석에서 기사 유모(당시 42)씨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던 것.

예리한 흉기로 12차례나 찔린 유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날 새벽 숨을 거뒀다.

최초 목격자인 최씨는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현장에서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하는 등 초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자꾸 그를 범인으로 몰았다.

강압에 못 이겨 한 거짓 자백이 발목을 잡았다.

경찰은 최씨가 택시 앞을 지나가다가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었고, 이 과정에서 오토바이 공구함에 있던 흉기로 유씨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경찰 발표와는 달리 최씨가 사건 당시 입은 옷과 신발에서는 어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재판은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범인으로 몰린 최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0년 만기출소했다.

수감 생활 중이던 2003년 3월 진범이 잡혔다는 희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사건 발생 2년 8개월이 지난 시점에 경찰은 진범이 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

당시 군산경찰서 황상만(64) 강력반장은 이 정보에 따라 진범을 알고 있다는 증인 임모씨로부터 '친구 김모(당시 19·현재 37)씨가 사건을 저질렀고, 한동안 내 집에서 숨어 있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용의자 김씨는 경찰에 붙잡히자 "유흥비를 마련하려고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과 검찰은 발칵 뒤집혔다. 김씨가 진범이 맞는다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재판에 넘긴 꼴이 되기 때문이다. 유죄 판결까지 내린 법원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경찰이 진범 김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해버렸다. 범인이 이미 검거돼 복역 중이라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풀려난 김씨는 이혼한 부모에게 충격과 고통을 줘 재결합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김씨의 친구 임씨도 주변 사람들에게 김씨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허위로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검찰은 구체적인 물증이 부족하고 사건 관련자의 진술이 바뀐 점 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진범 김씨는 재판 한 번 받지 않고 혐의를 벗었고, 개명한 뒤 회사원으로 살았다.

범인으로 전락해 2010년에 만기출소한 최씨는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그러다 재심 사건 전문가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의 설득에 2013년 3월 광주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6년 11월 "최씨가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무죄를 인정했다.

사건 발생 당시 15세의 나이로 구속돼 청춘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던 최씨의 누명이 풀린 것이다. 재심 선고 직후 검찰은 2003년 당시 경찰이 새로운 용의자로 지목됐던 김씨를 체포해 구속기소 했다.

1심은 지난해 5월 25일 "가족의 관심을 끌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는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2003년 경찰 조사 때 인정한 살인 관련 내용은 스스로 꾸민 이야기"라며 항소했지만, 2심도 지난해 12월 1일 1심과 같은 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7일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진범 김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18년 만에 진범에 대한 단죄가 이뤄진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지난해 2월 개봉한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됐다.

최씨의 재심 사건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뒤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지고 단죄가 이뤄져 다행"이라며 "진범이 따로 있는 현장에서 목격자인 15살 소년을 범인으로 만들고 이 소년이 복역 중인 상황에서 진범을 풀어준 당사자들은 아직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당시 수사진의 속죄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당시 군산경찰서 황상만 반장이 없었다면 재심조차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경찰과 검찰, 법원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지난해 7월 법원 판결로 형사보상금 8억4천여만 원을 받았다. 이 돈의 5%를 사법 피해자 조력 단체에 기부하고, 진범 체포에 결정적 도움을 준 황상만 반장에게도 5%를 전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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