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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보] 2차례 정상회담과 핵게임…벼랑 끝 전술 달인

입력 2011-12-19 20:15 수정 2011-12-20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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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 위원장은 17년동안 집권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동시에 두 차례의 핵실험도 강행했습니다.

안지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던 1994년 1차 핵 위기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핵확산금지조약, 이른바 NPT 체제 탈퇴까지 강행했던 북한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성사시킵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카드는 김 주석의 사망으로 물거품이 됐습니다.

1차 핵 위기는 같은 해 10월 제네바 합의로 극적으로 타결됩니다.

김 위원장은 98년 8월 국방위원장에 오르기 직전 광명성 1호를 발사합니다.

김정일 체제 출범의 신호탄을 장거리 미사일로 쏘아 올린 것입니다.

금창리 시설 등 핵의혹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짙어졌습니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은 대결 국면의 한반도를 화해 국면으로 뒤바꿨습니다.

그러나 2002년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당시 북한이 우라늄 농축 사실을 인정하며 한반도는 2차 핵위기로 빠져듭니다.

북한은 2005년 핵시설의 폐기와 중유 지원을 핵심 골자로 한 9·19 공동성명에 서명합니다.

하지만 1년 만인 2006년 10월 함경북도 풍계리에서 1차 핵실험을 강행합니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됐지만 화해 국면은 얼마 길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2009년 같은 장소에서 다시 2차 핵실험을 밀어붙입니다.

김 위원장은 최고 지도자에 오르기 전인 87년 대선 직전 1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은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화와 긴장 국면을 번갈아 조성하며 체제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벼랑끝 전술에 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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