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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꿈꾸지 않는 아이들, 한국의 '사토리 세대'?

입력 2016-02-29 21:53 수정 2016-02-2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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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1974년 5월 22일,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서울시내 국민학생 509명의 장래희망을 조사했더니 남학생의 경우 의사, 정치인, 사업가 순으로 답했고, 여학생은 교육자, 의사, 예술가였습니다. 순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학생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이뤄졌던 80년대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교사, 대학교수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사회적인 존경을 받는다는 이유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 대통령, 과학자, 정치인이 사라진 자리는 아이돌과 공무원이 차지하기 시작했는데 높은 소득과 안정성 등 현실적인 이유가 배경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건물주, 부자 등을 희망한 학생들도 다수 있었는데요. '하느님보다 더 위대한 건물주님', '연금이 나와서 공무원이 가장 좋은 직업'이라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우리 청소년들 모습이, 거품이 꺼진 후 최악의 경제 상황을 보냈던 80년~90년대 출생 일본 청소년들을 떠올리게 한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꿈꾸지 않는 아이들, 한국의 '사토리 세대'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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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일본 TV아사히에서 방송된 한 프로그램입니다.

[사토리 세대라고 불리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본 한 유명 교육평론가는 사토리 세대가 일본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오기 나오키 교수/일본 호세이대 : 사토리 세대의 특징을 말하자면, 첫 번째로 소비욕이 없어진 것입니다.]

일본의 장기불황이 이어졌던 '잃어버린 20년'에 나고 자란 이른바 사토리 세대는 출세와 돈벌이에는 관심이 없는 세대로 꼽힙니다.

사토리 세대가 초등학교 재학 시절이던 2000년, 일본의 한 보험사가 실시한 장래희망 조사에서 여학생들에게 1위를 차지한 직업은 '식료품점 주인'이었습니다.

꽃집 주인, 애완견샵 주인 등도 10위 안에 포함됐습니다.

남학생의 경우도 축구와 야구선수를 포함해 경찰, 식료품점 주인 등이 10위 안에 꼽혔습니다.

큰 꿈을 꾸기보다 소소한 삶에 만족하는 사토리 세대의 특성이 어린시절부터 형성됐다는 분석입니다.

[세토 토모코 교수/연세대학교 : 사토리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경제가 불안정했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좋은 회사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보니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능한 생활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사토리 세대의 특징은 일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사토리 세대와 같은 90년대 초반에 출생한 김기용 씨는 어린 시절 꿨던 꿈과 달리 지금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기용 : (초등학생 땐) 대통령, 과학자였고 중고등학생 땐 판검사나 교수, 공부 오래 하는 직업을 하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고요.]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불안감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김기용 : 예전엔 하고 싶은 것들을 도전해 본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무조건 (꿈을) 쫓다 보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구나.]

19살 김세현군도 얼마 전 대학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고심 끝에 입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선택했습니다.

[김세현 : 다 누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겠다고 하면 욕심이 큰 거니까, 포기할 건 포기해야죠.]

갈수록 양극화되는 사회에 대한 불안감에 우리 청소년들의 꿈도 하나둘 잃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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