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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밖에선 보이는데 안에선 안 보이는 '탄소중립'

입력 2020-11-30 09:00 수정 2020-11-30 12:4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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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54)

기후변화, 기후위기. 심각하다, 그렇지 않다. 혹은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 당장의 가치 판단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리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다룰 땐 얘기가 달라집니다. 복잡하다, 어렵다 등 이 문제와 '거리두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밖에선 보이는데 안에선 안 보이는 '탄소중립'

아래의 표는 기후위기로 인해 심각해질 것들을 분야별로 나눠서 표현한 표입니다. 복잡한 수식들로 가득한 표를 인포그래픽으로 대체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건데, ① 현재, ② 국제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기후변화 대응의 '마지노 선' 1.5℃가 오른 2030~2040년(기후변화가 일어나버린 시대), 그리고 ③ 2080~2100년, 산업화 이전보다 4℃나 오른 기후 옵션의 시대. 이렇게 각각의 상황에 따른 분야별 위협을 따져봤습니다.

분야는 총 8개로 나뉘어져 있죠. ① 폭염(열), ② 영양부족(식량), ③ 매개체에 의한 감염병, ④ 노동위생(직업보건), ⑤ 정신 건강 및 폭력성, ⑥ 극단적인 이상 기상 현상, ⑦ 대기질, ⑧ 수인성 감염병. 이렇게 말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밖에선 보이는데 안에선 안 보이는 '탄소중립' (자료: 카본브리프, IPCC 5차 보고서)

일단, 당연히 원이 커질수록 '위험'하다는 뜻이겠지만, 색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조금씩 다릅니다. 노란색 원이 커지는 것은, 우리가 달라지는 기후에 아주 적극적으로 '적응'에 나서는 경우의 위험을 뜻하고, 적갈색 원이 커지는 것은, 현재 우리가 기울이고 있는 정도의 노력만 이어졌을 때의 위험을 뜻합니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원이 커지는데, 붉은색이 많은 원이라면 "노력하면 그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되고, 노란색이 가득한 원이라면 "노력하더라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거죠.

자, 그럼 저 위의 인포그래픽의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조금이라도 더 풀어보고자, 재가공을 해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밖에선 보이는데 안에선 안 보이는 '탄소중립'

지구가 더워졌을 때, 당장 가장 심각해지는 문제는 바로 영양부족, 식량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적응을 해보려 노력하더라도 이상 기상 현상이나 우리 정신 건강의 문제, 노동위생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부채꼴이 커지는데, 특히나 노란색의 비중이 큼), 반면 식량부족의 문제는 어느 정도 우리의 적응 노력으로 커버할 수도 있다는 것(부채꼴이 크지만 상대적으로 노란색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어렵습니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뿐 아니라 관심이 있는 사람조차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밖에선 보이는데 안에선 안 보이는 '탄소중립' (자료: 카본브리프)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영국의 기후환경단체 카본브리프는 최근 "IPCC 그래픽의 직관적이지 않은 디자인"을 꼬집었습니다. 위에 제가 예시로 든 사례는 그나마 '직관적인 디자인'에 속하는 편입니다. 이쯤 되면, "기후변화 심각하다는 건 알겠는데, 자세한건 복잡하니 됐다"고 절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경우도 있습니다. 배터리, 풍력발전 터빈, 태양광패널 관련주의 치솟는 주가 그래프는 말 그대로 '직관적'입니다.

기후의 'ㄱ'도, 환경의 'ㅎ'도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경제와 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린뉴딜 정책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떤 주식을 사야, 어떤 기업에 관심을 가져야 '내 주머니'가 두둑해지는지 알고 싶기 마련이니까요.

일찌감치 재생에너지 확대를 중심으로 한 그린뉴딜에 앞장선 EU에 이어 이젠 미국까지 본격적인 변화와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에너지 산업은 여기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고, 정부의 자금뿐 아니라 민간 자본 역시 대규모로 신속하게 투입되고 있죠.

재생에너지, 친환경차 전환에 느린 우리나라지만 다행히 배터리를 중심으로 국내 기업 곳곳이 세계무대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기업도, 정부도 여기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언제든 '위협적인 경쟁상대'는 나타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당장 EU는 2025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셀을 수입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습니다. 친환경차로의 전환에 가장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EU 입장에선 전기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마뜩찮은 일일 것입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부집행위원장은 "2025년까지 EU가 역내 자동차 업계의 수요뿐 아니라 수출 물량까지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배터리 셀을 생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고 자신했습니다. 그저 말만 앞세운 '선언'에 불과할까요? EU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EU가 배터리 자체 생산의 자신감을 갖게 된 근거, 바로 올해로 만 3년이 넘은 'EU 배터리 연합'입니다. 2017년 10월, 일찌감치 EU 차원에서 배터리 산업 육성에 나선 것인데 여기엔 역내 80개 넘는 기업 연구소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코트라의 남호선 폴란드 바르샤바 무역관은 "배터리 원재료 확보에서부터 핵심소재 연구개발, 제조 과정 및 사용 후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배터리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경쟁력 있고 지속 가능한 배터리 공급 사슬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궁극적으로 EU 내 자동차 산업 고용시장을 보호하고 아시아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다른 근거는 폴란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밖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자동차 브랜드 하나 없는 나라지만 폴란드는 EU에서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남 무역관은 "2019년, 유럽 전기차 배터리 생산량 중 40%가 폴란드에서 제조됐다"며 "폴란드가 유럽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허브로 부상했다"고 분석했습니다.

폴란드가 허브가 된 배경엔 해외 배터리 제조사들의 적극적인 진출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폴란드 행렬'을 이끈 기업은 바로 한국 기업이죠. LG화학은 축구경기장 5배 크기의 배터리 공장을 폴란드에 마련했습니다. 유럽 최대의 생산 능력을 자랑할뿐 아니라 유럽 최초로 전극과 셀, 모듈, 팩까지 모두 만드는 '환결형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죠. 코트라에 따르면, 폴란드엔 LG화학뿐 아니라 엔켐(전해액), 후성(전해질), SK이노베이션(분리막) 등이 폴란드에 생산 투자 진출을 했습니다. 여기에 내년부턴 중국 배터리 기업들 역시 폴란드 진출을 활발히 할 것이라는 게 코트라의 전망입니다.

이 같은 '탈 화석연료' 움직임, 자동차 산업에만 국한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밖에선 보이는데 안에선 안 보이는 '탄소중립'

IEA(국제에너지기구)는 풍력과 태양광발전의 용량이 올해 수력발전을 뛰어 넘고, 2023년 천연가스발전을, 2024년엔 석탄화력발전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 같은 전망과 함께 2021년, 전 세계 재생에너지 확대를 이끌 곳으로 EU와 인도를 꼽았습니다. EU야 이전부터 재생에너지 확대에 힘써왔지만, 중국과 함께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인도도 여기에 포함된 겁니다. IEA는 "인도는 올해보다 연간 증설량이 배로 늘어난다"며 "그간 지연되어온 각종 프로젝트와 계약들의 협상 과정이 내년엔 본격적으로 착수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렇게 돈의 흐름을 보면, 분명 글로벌 시장뿐 아니라 한국 기업도 적극적인 전환에 나서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영토 안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아직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반도만 기후변화로부터 자유로운 다른 행성에 있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한 달이 지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다시 한 번 이를 강조했습니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대통령 직속으로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칭)'도 설치하겠다고 했죠. 이뿐만 아닙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엔 에너지 전담 차관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고요. 

 
"2050년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가 됐다"
"한국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몇 년 전에 발표했지만,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해에야 처음 줄어들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탄소중립까지 가는 기간이 촉박하다"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주공급원을 전환하고, 전력망 확충과 지역 중심의 분산형 전원 체계를 확산할 것이며, 재생에너지·수소·에너지IT 등 3대 에너지 신산업 육성에 주력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세제와 부담금제도의 개편을 검토하겠다"
"모든 경제 영역에서 저탄소화를 추진해 나가겠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특별기금 신설 등 재정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


이날 회의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다시 오늘 <박상욱의 기후 1.5>의 첫 문단으로 돌아가 봅니다. 분명 가치 판단은 간단해 보이지만, 구체적인 실행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위기상황임을 인식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밖에선 너무도 명확히 보이는 탄소중립이 안에서도 눈으로 뚜렷이 보일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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