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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르렁댔던 박태환-쑨양, 막상 만나니 다정한 형·동생

입력 2014-09-2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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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르렁댔던 박태환-쑨양, 막상 만나니 다정한 형·동생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불편했던 감정은 터치패드를 찍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렸다.

박태환(25·인천시청)과 쑨양(23·중국)의 수영 자유형 라이벌전은 이번 대회 최고의 흥행 카드로 꼽혔다. 두 선수는 2010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1상하이세계선수권에 이어 2012런던올림픽까지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로 불리던 자유형에서 타이틀을 양분했다.

쑨양의 행보는 가뜩이나 뜨거운 관계를 활활 타오르게 했다. 쑨양은 이달 초 이번 대회 메인스폰서인 361" 광고에 출연해 "박 선수,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기록을 세웠죠. 대단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그 기록 제가 깨버렸는데. 올해 인천에서는 이제 제 기록에 도전해보시죠." 등의 말로 박태환을 자극했다.

이중에는 어눌했지만 분명한 한국말도 섞여 있었다. 쑨양은 아시안게임 출전차 한국 입국 과정에서 "스폰서의 광고였을 뿐이다. 우리는 친한 사이"라고 해명했지만 박태환을 자극하겠다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태환은 어느 때보다 조용하게 대회를 준비했다. 도발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평소보다 더욱 진중해진 모습이었다. 그동안의 큰 대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훈련 때 가끔 취재진을 만나도 가벼운 눈인사 후 황급히 자리를 뜨기 일쑤였다. 물론 쑨양과의 만남도 없었다.

미묘한 시간차로 엇갈리던 두 선수는 지난 21일 자유형 200m 결승에서 처음 대면했다. 박태환이 6번 레인, 쑨양이 4번 레인이었다.

아시아 대표 스타들의 맞대결로 손색이 없는 명승부였다. 박태환이 초반 50m에서 우위를 점하자 쑨양은 100m 구간에서 곧바로 뒤집었다. 이에 질세라 박태환은 150m 구간까지 0.04초차로 접근하며 승부를 미궁 속에 빠뜨렸다.

견제에 잔뜩 힘을 뺀 두 선수에게 마지막 50m는 어느 때보다 길었다. 박태환이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고 쑨양의 페이스도 예전만 못했다. 이 사이 하기노 고스케(20·일본)라는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다. 둘 사이를 헤치고 나온 하기노는 자신의 자유형 첫 국제대회 우승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장식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두 선수는 잠시 넋을 놓고 전광판을 응시했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곧바로 로프를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아 올렸다.

원했던 금메달은 제3자인 하기노에게 돌아갔지만 처음으로 부담감을 내려놓은 것만으로도 기쁜 듯 했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형' 박태환은 자신을 앞선 '동생' 쑨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축하를 건넸다.

시상식 후 열린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는 박태환과 쑨양만 나섰다. 하기노가 다음 종목 출전 준비로 함께 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대회 전의 서먹서먹함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쑨양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경기였다. 마지막 50m에서 스피드가 발휘되지 못했지만 오늘 경험이 앞으로 있을 세계선수권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마지막에 터치패드를 엄지로 찍어 부상을 조금 입었다"고 말했다.

쑨양의 말은 한국어와 영어로 통역돼 전파됐다. 부상 소식을 들은 박태환은 쑨양의 손을 집어들어 여기저기 살피기 시작했다. 쑨양도 박태환에게 부상 부위를 설명하며 둘만의 대화를 나눴다.

쑨양은 몇 가지 질문만을 소화한 채 치료를 이유로 기자회견을 떠났다. 자리를 뜨며 쑨양은 박태환에게 악수를 건넸고 박태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받아줬다. 본의 아니게 서로를 견제해야 했던 두 선수의 마무리는 훈훈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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