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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팬심'은 롯데를 겨냥한다

입력 2014-10-29 21:29 수정 2014-10-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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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팬심'은 롯데를 겨냥한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최근 불거진 구단 문제와 관련하여 저희 구단을 성원하고 아껴주시는 팬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를 드립니다.
이번 사태는 팀 내 각 구성원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자 노력하는 열정이 상호 충돌하였고, 결국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바람직한 성적을 내지 못한 결과 서로 간의 크고 작은 오해가 발단이 되었습니다. 또한, 일련의 과정에서 상호간 소통의 부재와 시각 차가 존재했음을 인정하고, 구단 내의 현황과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여 이번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구단에 대한 비판과 지적도 겸허히 받아드리며, 이에 대한 교훈을 가슴 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이번 일로 구단을 사랑해 주시는 많은 팬들께 우려와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조속히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여 효율적인 훈련실시 등 팀 정상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팬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 부탁드립니다."


29일 오후 날아든 한 장의 보도자료입니다. 발신은 롯데 구단, 수신은 언론사 기자들이었습니다. 제목을 보니 사과문인데, 내용에선 기자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팬들을 향한 사과였습니다.

이 사과문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사과인가 싶을 정도로 변죽만 때립니다. '각 구성원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자 노력하는 열정이 상호충돌 하였다'라고 했는데,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선수와 프런트간 열정에서 비롯한 충돌이라고 '미화'해선 안될 것 같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숨죽였던 선수들이 프런트의 전횡에 반기를 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쌍방과실로 몰아가는 것은 선선히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판단은 이 사과문이 향하고 있는 팬들 몫이겠죠. 진정성있는 사과보다 변명이 앞서고, 문제의 해결책이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구단의 시각인데, 추측컨대 그 근본에는 잘못된 현실 인식이 깔려있을 겁니다.

십분 양보한다고 해도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감독 선임보다는 구단 내부의 갈등을 먼저 해소하는 게, 요컨대 스스로 '갑'이라 여기면서 선수나 팬을 '을'로 생각하는 프런트의 인식 전환이 우선일텐데요.

[취재수첩]'팬심'은 롯데를 겨냥한다
다시 롯데팬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롯데가 사과문을 내놓았지만 단단히 뿔난 롯데 팬은 쉽게 마음을 돌릴 것 같지 않습니다. 사직구장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열성팬은 "롯데는 죽었다"고 울분을 토했고, 부산 서면의 롯데백화점 앞에는 롯데 야구의 '죽음'을 상징하는 근조화환이 줄지어 있습니다.

우리 프로야구에서 열성팬 중에서도 열성팬으로 손꼽히는 롯데팬들. 성적이 좋지 않아도 사직구장에서 비닐봉지를 뒤집어 쓴 채 신문지 응원을 펼치던, 그 충직했던 팬들이 분개한 겁니다.

'팬덤'으로 불리던 야구팬들의 엄청난 힘은, KIA를 통해서 한화를 통해서 10월 내내 확인했습니다. 그렇기에 롯데팬들의 반발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 겁니다. 팬심이 감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구단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

정용철 서강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프로스포츠의 대안 제시"라며 "스포츠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이 독점해선 안되는데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의 팬들이 힘을 갖기 시작했다. 힘 가진 한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게 결정됐던 게 이번엔 힘이 없지만 여러명이 모인 팬들이 방향을 설정하고 실제로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했습니다. 또 "팬들의 요구에 밀려서 구단의 결정이 번복되기보다는 앞으로는 구단이 더 적극적으로 팬들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빨리 캐치해서 이것들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팬덤 현상이 구단 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게 꼭 옳은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구단이 여론을 의식할 경우 인기투표 하 듯 감독을 뽑는 수도 있다는 건데요. 집단적이며 감정적인 팬심의 본질을 분명히 꿰뚫어보는 구단의 수용능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정윤수 스포츠 평론가는 "1990년대까지도 기업문화, 기업의 홍보수단이었던 프로스포츠가 2000년대 들어 마케팅 영역을 팬까지 확장하면서 팬덤 현상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팬심은 때때로 팀에 대한 사랑이, 팀에 대한 불만으로 거칠게 표현될 수도 있다"며 "팬들은 요구사항을 정열적으로 요구하고, 구단은 이것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여 팬들을 위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번 프로야구 팬들의 분노 폭발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스포츠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반발이라고 봅니다. 과거의 팬들은 야구장 그물을 올라타고, 물병을 던지고, 구장 쓰레기통을 불태우는 것으로 분노를 표시했지만, 요즘엔 인터넷과 SNS를 통해 즉각적이며 조직적으로 세력화해 더 큰 힘을 냅니다. 물병을 던지는 대신 '김성근 감독 영입 청원 동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던 한화 팬들처럼 말입니다.

일부에선 최근 팬들의 움직임이 '프로야구의 소비자 운동'이라고 얘기합니다. '팬이 프로야구의 주인'이라던 수사가 현실이 됐습니다. 구단은 표를 팔기 위해 '팬을 주인처럼 모시자'고 했지만, 어느새 팬들은 경기장을 찾아 응원만 하는 존재, 그 이상이 됐습니다. 내홍에 휩싸인 롯데가 정작 무서워해야 하는 건, 선수들이 프런트에 등을 돌린 어제와 오늘이 아니라, 열혈 롯데팬들이 롯데에 등을 돌리려고 하는 오늘과 내일입니다.

(사진=트위터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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