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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인물 최태민…수상한 종교 활동 최순실도 영향?

입력 2016-10-27 15:42 수정 2016-11-0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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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인물 최태민…수상한 종교 활동 최순실도 영향?


수수께끼 인물 최태민…수상한 종교 활동 최순실도 영향?


수수께끼 인물 최태민…수상한 종교 활동 최순실도 영향?


최순실씨가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라는 의혹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순실씨의 연결고리인 고(故) 최태민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순실씨의 부친 최씨는 1970년대부터 박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통상 '목사'라고 불리지만 정식으로 안수를 받았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영애였던 시절은 물론 청와대 퇴거 이후에도 박 대통령을 좌지우지했다는 지적이 파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사망한 아버지 최씨는 생전에 다수의 직업과 전과 기록을 가진 것으로 전해지지만 정확한 실체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이름을 7번이나 바꾼 것으로 전해졌고 직업도 경찰, 군인, 언론사 사장, 불교단체 부회장, 농민회 차장, 정당 중앙위원에 심지어 신흥종교 창시자까지 다양했다.

지금까지 최씨에 관해 알려진 정보는 주로 1979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조사했다는 보고서와 같은 해 11월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기록 등에 기반한다.

이에 따르면 우선 최씨는 1912년 황해도 출생으로 1942년부터 45년까지는 황해도경의 순사로 활동했다. 1945년에는 강원도경 소속 경찰로, 이후 대전경찰서와 인천경찰서에서 근무하다 육군 헌병대로 적을 옮겼다.

1951년에는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을, 1955년 전국 불교청년회 부회장, 대한농민회 조사부 차장 등을 지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를 통합했다는 이른바 '영세계(靈世界)'교리를 내세운 종교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박 대통령을 만난 다음 목사 안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75년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 스스로 총재에 취임한다. 박 대통령은 당시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최씨는 요즘도 흔히 '목사'로 지칭된다. 가령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미르-K스포츠재단도 연결시키면 '미륵'이라고 한다"며 "그 미륵은 최순실씨의 선친인 최태민 목사로, 그는 스스로를 미륵이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상황은 박 대통령이 최태민-최순실 두 사람의 사교(邪敎)에 씌어 이런 일을 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2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MBC 기자시절인 1994년 박 대통령을 인터뷰한 일을 회고하면서 "제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최태민 목사에 대한 마음의 의존이 컸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등으로 꼬박꼬박 '목사'라는 직함을 붙였다.

하지만 종교계에서는 이미 반 세기 전의 일이기 때문에 최씨의 종교활동이 실체가 있었는지 애매하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대부분 "최씨가 돈을 주고 목사 자격을 샀다더라", "알 수 없는 교단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계 한 관계자는 "최씨가 신학대학이나 특정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들었다"며 "확인도 안 됐는데 언론 등에 공공연히 목사로 지칭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관계자는 "최씨가 어디에선 목사라고 하고, 또 어디에선 승려 행세를 했던 모양"이라며 "정확한 신분이나 소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하는데 현존하지도 않고 알 수 없는 곳에서 받았는지 확인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2007년 신동아에 게재된 박 대통령 관련 기사를 살펴보면 당시 정치권에 박 대통령 관련 CD가 돌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해당 기사는 'CD는 총 181MB 분량으로 1980~1990년대 일간지, 잡지 기사 18건의 전문이 들어있었다. 이들 기사는 모두 고(故) 최태민 목사의 비리 의혹 및 박근혜와의 관련성을 강하게 암시하는 내용이다. 박근혜 측에선 흑색선전물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돼 있다.

또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한 국회의원이 "1970년대 후반 최태민을 조사했던 중앙정보부의 백광현 검사와 신모 수사관이 아직 생존해 있다. 신 수사관은 현 정권에서 잘 나가고 있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면 '최태민 건 한방'에 한나라당은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언급한 얘기도 담겼다.

이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피격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항소심에서 최태민 관련 내용이 처음 등장했다고도 전했다.

기사는 '재판과정에서 김재규 변호인은 항소이유서와 항소이유 보충서를 군법회의 측에 제출했는데 이 서류에 최태민 관련 내용이 처음 등장했다'며 '10·26 사태(박정희 피격 사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거의 하나로 최태민을 거론했다'고 밝혔다.

당시 항소이유 보충서에는 '구국여성봉사단이란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돼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하다'며 '그럼에도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다'고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친국(임금이 중죄인을 친히 국문하는 제도)까지 시행했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 큰 영애를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렸다'고 전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정치적·종교적 영향을 최순실씨가 물려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최씨가 일찌감치 순실씨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 박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도록 했다는 설도 나온다.

최씨는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비명에 숨진 뒤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박 대통령 앞에서 '어머니의 영혼에 빙의됐다'며 박 대통령에 처음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순실씨도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녔다며 박 대통령에게 소개해줬다는 설이다.

최씨는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칩거하다 1994년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당시 순실씨는 최씨로부터 수백억원대 재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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