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배 이름만 다를 뿐 '판박이'…되살아난 21년 전 악몽

입력 2014-04-25 07:44 수정 2014-04-27 17:39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지난 1993년에 발생한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습니다. 당시 수사 검사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퇴보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경미 기자입니다.

[기자]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면에서 서해 훼리호가 출발 30분 만에 침몰했습니다.

세월호처럼 물살이 거센 해역에서 급히 방향을 바꾸다 사고가 난 겁니다.

정원을 141명 초과 한데다 무자격 업체에서 복원력 검사를 받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세월호와 서해 훼리호 모두 악화된 기상여건을 무시한 채 출발을 강행해 사고를 자초했습니다.

오락가락 정부의 발표도 여전했습니다.

세월호 사고 직후 정부는 477명에서 462명까지 수차례 탑승자 수를 번복했습니다.

서해 훼리호의 경우 해경은 승선자 수를 140여 명에서 221명으로 번복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많은 362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김희수 변호사/서해 훼리호 사고 당시 수사검사 : 우왕좌왕하고 여러 가지 지휘체계가 부실한 점에 대해서 비난이 쏟아졌었는데 이게 전혀 나아지지가 않고 거꾸로 퇴보한 듯한 그런 느낌을 전 굉장히 많이 받고 있어요. 그게 좀 가슴이 아픕니다.]

서해 훼리호 사건이 발생한 지 21년, 292명이 목숨을 잃으며 지적된 문제들이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인터뷰] 이종인 씨 "해양경찰청장이 다이빙벨 투입 요청" 한시가 급한데…해경-민간 잠수사, 수색작업 갈등 '눈살' 해경 "수색 방해" vs 민간잠수사 "우리만 배제" 갈등 배경은 다이빙벨 안 쓴다더니 현장에? 대학서 빌려와 '논란' 급파됐던 소방헬기, 해경 통보에 대기만 하다 돌아갔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