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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이제야 네 편지를 읽을 수 있구나"…연필 쥔 주름진 손|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입력 2020-10-10 19:56 수정 2020-10-1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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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9일)가 한글날이었죠. 그래서 이번에는 한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삐뚤삐뚤한 글씨, 언뜻 보면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데 위에 그려진 꽃을 보면, 뭔가 좀 다르죠. 뿌리가 있습니다. 농사지으랴, 밥하랴 늘 뿌리를 보며 살아온 우리 할머니들이, 이 그림과 글의 주인공들입니다. 할머니들은 글을 모른 채 수십 년을 살아오다, 이제야 주름진 손으로 연필을 쥐어 들었는데요.

할머니들의 '꿈'과 '도전' 오픈마이크에서 담아왔습니다.

[기자]

[(사람은) 사람은 (꿈이 없을 때) 꿈이 없을 때 (늙는다) 늙는다]

할머니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집니다.

나이도, 고향도 모두 다르지만, 이제야 글을 배우는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김계심 : 일 하고 애기 보고, 나무 하러 다니고 밭 매고. 여자애들은 거의 다 학교 안 다녔어요, 우리 때.]

글을 모르니 읽고 써야 하는 은행이, 병원이 할머니들에게 가장 두려운 곳이었고, 버스 타는 것도 겁이 나, 늘 가는 '작은 세상'에 자신을 가둬야 했습니다.

행여 '글 모르는 엄마'라는 걸 선생님에게 들킬까 봐 딸 학교에도 못 가서 '새엄마'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에겐 이제 '꿈'이 있습니다.

[김기분 : 나는 꿈이 있다, 열심히 배워서 당당하게…]

[서앵순 : 나는 공부를 많이 해서 책을 술술 읽고 싶습니다. 책이라면 다 읽고 싶어요.]

[조정순 : 시집을 한 번 내고 싶다. 세월 속에 묻어 두었던 인생에 꿈을 지면에 펼쳐놓고 싶다.]

간판 보고 다니기, 딸에게 문자 메시지 보내기, 손주에게 동화책 읽어주기, 봉사 활동, 세계여행까지 할머니들은 오늘도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김후덕·양방자 : 독서실, 헬스 마우스? 마이스? (파크여, 파크.) 파크여? 헬스 파크네. (응, 헬스 파크.)]

아들만 셋인 할머니는 오늘 작은 꿈 중 하나를 이뤘습니다.

아들이 군대서 보내온 편지에, 늦었지만 이제라도 답장을 쓴 겁니다.

[김후덕 : 군대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다녀오라는 편지를 못 보내서 엄마는 가슴이 많이 아팠다. 앞으로는 편지를 자주 쓸게. 아들아, 사랑한다.]

돋보기안경이 없으면 잘 보이지도 않고, 연필을 쥔 손은 쭈글쭈글하지만, 할머니들은 지금이 '청춘'이라고 말합니다.

[양방자 : 지금이 청춘이야. 이제 배우니까 이제 청춘이지.]

[김후덕 : 이 마음이 진짜로 뭐래도 있으면 타고 날아다니고 싶은 마음? 이렇게?]

과거의 나처럼 움츠려 있는 이 땅의 모든 청춘에게, 날 보고 용기를 내보라는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김후덕 : 진짜로 나처럼 바보스럽게 살지 말고,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용기를 내서 뭐든지 해보라고 용기를 주고 싶어요. 뭐든지. 뭐가 됐든 간에! (나도) 그전에는 땅만 보고 다녔어요. 땅에 뭐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 글씨를 배웠다고 자꾸 쳐다봐져요. 계속해 계속 그치지 않고, 나도 그러고 싶어.]

(화면제공 : 푸른어머니학교)
(영상디자인 : 신하림 / 영상그래픽 : 박경민 / 연출 : 홍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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