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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 죽기 싫어요" 입양 아이는 왜 부모를 스스로 신고했나?

입력 2022-06-20 18:11 수정 2022-06-20 18:18

'한 사회가 아이를 다루는 모습보다 더 날카롭게 그 시대 정신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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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아이를 다루는 모습보다 더 날카롭게 그 시대 정신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사진=〈JTBC〉사진=〈JTBC〉
A 군은 2010년 태어난 직후 입양됐습니다.

첫 학대가 드러난 건 2017년입니다. A 군이 초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엄마에게 맞아 온몸에 멍이 들고 갈비뼈가 부은 채 학교에 왔습니다.

엄마는 이 사건으로 보호관찰 1년과 상담위탁 6개월 처분을 받았습니다.

A 군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또다시 온몸에 멍이 들어 등교했습니다.

교사에게는 엄마에게 맞았다고 말했지만 경찰 조사에서는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않아 엄마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오은영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A 군이 엄마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은요, 당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고립시킵니다. 사랑을 가지고 등판하기 때문에 어떨 땐 헷갈립니다." "썩은 동아줄을 잡고 때로는 그때 머리 한번 쓰다듬어 줬던 게 사랑 아닌가,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진술할 때 '아니에요, 안 때렸어요' 했다가 이러면 아이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죠."

그 무렵 엄마와 A 군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악화했습니다.

부부는 서류상 이혼을 하기로 한 뒤 A 군 초등학교 4학년인 2020년 2월부터 원룸에 홀로 뒀습니다.

 
사진=〈JTBC〉사진=〈JTBC〉
자신들은 친딸과 함께 인근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A 군 진술과 상담 녹취록에 따르면 원룸에는 TV와 책상, 냉장고, 침대 등 기본적인 가재도구는 물론 장난감도 없는 방입니다.

부엌문을 잠갔습니다. A 군은 목이 마르면 수돗물을 마셨습니다.

아빠는 하루 1번 찾아가 1끼만 줬습니다. 오리 볶음밥인데 A 군 표현에 따르면 개밥입니다.

흘린 밥을 주워 먹으라는 엄마 말을 거역했다며 이후에는 서서 밥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방에는 소리가 전달되는 양방향 CCTV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A 군은 스피커에서 엄마의 욕설이 쏟아졌다고 했습니다.

매일 나가 죽으라고 주문처럼 말했다고도 했습니다. 죽는 방법도 구체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죽으려면 벽에 머리를 찧어 죽든지 혼자 죽고 싶으면 산에 올라가 절벽에서 떨어져라.“

당시 A 군 상담기록을 보면 이런 엄마의 폭언과 정서학대에 심각한 후유증을 보이고 있습니다.

갑자기 괴성을 지르거나 옷을 벗는 등 이상행동과 돌출행동은 심각했습니다.
 
사진=〈JTBC〉사진=〈JTBC〉

교사들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원룸은 냉난방도 안 됐습니다.

한겨울에도 찬물에 목욕하고 냉방에 이불 한장으로 버텼습니다.

A군 아빠는 남자는 군대 가서 찬물에 목욕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본인은 원룸에서 아이와 함께 찬물로 안 씻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김해시와 경찰, 학교, 김해시아동보호전문기관 등도 알았습니다. 이들은 2020년 11월 대책회의도 열었습니다.

하지만 아동학대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섣불리 신고한 뒤 또다시 엄마가 무혐의로 풀려날 경우 드러나지 않는 교묘한 정서 학대가 행해질 수 있고 이는 A 군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어 확신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보복도 신고를 주저하게 하는 한 이유였습니다.

A 군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동학대 신고가 무혐의가 난 뒤 엄마가 '가정을 파탄 나게 했다'며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교사들을 무릎 꿇고 사과까지 했습니다.

김해시아동보호전문기관도 똑같은 민원에 시달렸습니다.

김해시아동보호전문기관 조사관이 조사하러 가정을 방문하자 A 군이 팔을 물어뜯어 조사를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A 군 엄마에게 시달렸던 교사와 김해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이 사건에 다시 연루되기 싫다며 인터뷰를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결국 2020년 12월 17일 오후 A 군은 스스로 경남 김해의 한 지구대를 찾아가 부모를 신고했습니다.

오늘 집에서 찬물에 목욕하고 자면 얼어 죽을 것 같다며 따뜻한 세상에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 사회가 아이를 다루는 모습보다 더 날카롭게 그 시대 정신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 넬슨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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