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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인간 노무현'과의 인연 공개…"가슴이 시리다"

입력 2013-07-16 18:31

정치인에서 다시 소설가로…작가 김홍신의 '인생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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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서 다시 소설가로…작가 김홍신의 '인생 4장'

[앵커]

작가 김홍신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Q.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 우리의 역사 '대발해'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지난주 사랑이야기를 탈고했다. 사랑은 뜨겁고 아름답기 때문에 너무 아픈 거다. 사람들은 아픈 건 생각하지 않고 따뜻하고 좋은 것만 생각하는 것 같다.

[앵커]

소설가에서 방송인으로 그리고 정치가로 활동하다가 다시 소설가로 돌아온 김홍신 작가! 네 장의 사진으로 본 김홍신 작가의 인생이야기~ "김홍신의 인생 4장" 함께 보시죠.

Q. 육영수 여사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
- ROTC로 군대를 제대하고 처음 취직한 곳이 '선명회'(현 월드비전)였다. 당시 육영수 여사가 한센병 환자들과 스킨십을 하시는 등 봉사활동을 하셨다. 그래서 열심히 하니 육영수 기념재단에 가서 한센 환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라고 해 저를 홍보부장으로 불렀다. 당시 '독재자의 재단에서 일 하란 것이냐'라고 거절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후회했다. 동국대 총장을 했던 교수님에게 가서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고 했더니 "너는 크게 될 인간이다"라고 격려해주셨다.

Q. 당시 급여나 대우는 어느 정도였는지?
- 액수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예전에 받던 월급의 2배였다.

Q. 박근혜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해서
- 현재는 잘 한다 아니다라고 말할 상황은 아니다. 지켜봐야 하는데 불안한 점은 있다. 국회의원이 할 일은 법을 만들고, 국정감사를 해서 예산심의를 하고, 예산 결산을 해서 국민의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지켜보는 것이 도리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하실 때 처음부터 너무 대우를 받아 부총재를 하고 정치를 했지 일을 안했다. 일을 안했기 때문에 참모를 잘 써서 국가를 제대로 경영을 해줘야한다. 상임위 활동을 하긴 했지만 의무적이었다. 그 안에서 법을 몇 건 만들었나, 국정감사를 제대로 했나 보면 아쉽다. 예산 결산은 해보질 않았다. 돈을 어디에 얼마를 어떻게 썼는 가를 봐야 세상이 보이는 것인데 그것을 안해봐서 조금 걱정이다. 현재는 평가할 때가 아니다.

Q. 한나라당 의원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 늘 사람들과 인사를 잘했다. 웃는 모습이 해맑고 밝았으면 좋았을텐데 만들어진 웃음, 보여주는 웃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것이 인간승리의 모습이다. 요즘은 밝은 모습이 조금 보인다. 얼마 전 수해가 있을지 모르는 지역에 가서 칸막이를 세우고 하는 사진이 있었는데,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수해을 입지 않게 예방할 수 있는 총체적 대책을 각 부처에게 지시하고 단속하고 확인하는 것이 대통령이 할 일이라고 본다. 그것만큼은 생각해 주는 것이 우리 미래를 위해서 좋은 것이다.

Q.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 소설을 쓸 때 후원회장을 맡은 선배가 만나자고 해서 함께 등산을 했었다, 하다보니 너무 털털하고 인간적으로 편안했다. 국회의원이 아닌 동네에서 만난 아저씨 같았다. 국회의원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친해진 이후 제가 국회를 들어갈 때 저를 설득하더라. 정치를 같이하자고 해서 함께 하게 되었다. 민주당 대변인으로 국회에 들어갔고 노 전 대통령은 떨어져서 야인 생활을 했다. 그때 같이 음식점을 했다. 우리가 정당하게 돈을 벌어서 정치를 해보자라고 투자를 했는데 나중에 망했다. 1구좌가 2천만원이었는데, 나중에 망해서 100여만원 받았다. 너무 정직하게 장사를 해서 망했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게 사업을 했다가 들통이 나면 망하니까 정직하게 신고하고 운영하다 보니 남는 것이 없더라. 우리 중에는 영업을 해본 사람이 없었고 경영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다.

Q.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화를 받은 심경은?
- 그것을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대통령은 대통령인데, 대통령이라고 이름을 쓸 수 없는 그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 얘기를 비서관에게 했더니 전달하겠다고 하더라. 가슴이 시렸다.

Q.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 들었을 때 심경은
- 정이 들었던 안 들었던 사람이 간 다는 것은 누구든지 서럽다. 자연사라면 덜 안타까울텐데 가슴 아프게 가고 나면 누구라도 뭉클한 것이 솟아날 수 밖에 없다. 그 소식을 듣고 바로 기도를 했다. 영결식 때 가서 그 얘기를 서울신문에 썼는데, 감사하게도 1면 전체에 깔아줬다.

Q. '건대 2인방' 김한길 의원과 인연은?
- 후배인데 나를 따라오더라. 조영남 선배는 김한길 대표와 있을 때 90도로 절을 한다.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면 우리보고 "국어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자기 나이를 깎으려고 지나친 부분이 있다.

Q. 비슷한 행보, 라이벌로 느끼진 않는지?
- 제가 먼저 출세를 했고,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로 기록이 되어 있다. 그래서 열등 의식이 없다. 김한길 대표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방송위원회 다닐 때 점심 식사하자고 해서 11시 반 쯤 만나면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다. 오후 2시쯤 신문에 줘야 할 소설 원고를 그때 쓴다. 말이나 되나. 그리고 말수가 많지 않은데 감각이 뛰어나다. 같은 학교 출신이지만 학교에서 만난 것이 아니다. 군대에 있을 때 보니 워낙 유능한 후배가 문학을 하면서 판을 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친해지게 됐다. 그 이후 미국에 오래 있다가 조영남 선배와 김한길 대표가 거지 비슷하게 하고 왔다. 그래서 밥 사줄 사람도 저밖에 없었다. 그런데 밥을 사주는데도 짜증을 낸다. TV가 주말에 하는데 못 본다고 하더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인간적으로 푸근하고 기분 좋은 친구들이었다.

Q. 김홍신 작가가 바라는 미래는?
- 사람들이 저를 보고 건강하다고 한다. 비결을 뭐냐고 묻는데 운동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아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남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보탬이 되도록 살겠습니다"라고 한다. 남이 내 이름을 부를 때 그 사람에게 기쁨이 되도록 살아야 겠다, 또 남은 인생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에서 제자에게 강조하는 것은 "죽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기억해 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자"이다. 그렇다면 함부로 살 수 없다.

Q. 앞으로 정치인으로 활동할 계획은?
- 선거 때만 되면 수도 없이 제의가 오는데 거절하는 이유는 죽었을 때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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