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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7회] 산모 출산 위해 '헬기' 부르는 사연은?

입력 2014-03-30 22:56 수정 2014-03-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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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 나라의 보건의료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모성 사망률'이란 게 있습니다. 임산부가 분만 등의 과정에서 사망하는 비율인데, 우리나라는 세계 41위입니다. 의료 선진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산부인과 후진국이 됐을까요.

주정완 기자가 부실한 분만 인프라 실태를 집중 취재했습니다.

[기자]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전남 완도군 보길도입니다.

이곳의 섬마을 아기 윤다인 양, 생후 7개월인 다인 양의 별명은 '하늘 공주', 하늘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얻은 이름입니다.

다인 양은 지난해 8월 전남 소방항공대 헬기 안에서 출생했습니다.

[아기 나왔다. 아기 나왔다.]

임신부를 병원으로 옮기던 중 아기가 태어난 겁니다.

의료진이 탯줄을 잘라 아기를 받아들면서 겨우 위급한 순간을 넘깁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의사는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완호/전남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 아기는 이미 헬기에서 나온 상태였고요. 아기가 나오고 나서도 후속 조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헬기가 내리자마자 바로 산모에게 달려가서 태반이랑 이런 것을 아기랑 분리를 시키고….]

소방대원의 침착한 대응도 한 몫 했습니다.

[김상훈/전남 소방항공대 소방교 : 환자 분의 엉덩이에서 아기가 보이니까 그때 분만세트를 열어서 아래에 멸균 시트를 깔고 그 이후부터 아기를 받게 됐습니다.]

산모와 아기가 건강한 것은 다행이지만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김상훈/전남 소방항공대 소방교 : 어떻게 보면 하늘 공주 아기가 태어나서 축복을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료인이 있고 산부인과 안에서 출산을 했다면 더더욱 축복을 받았겠죠.]

출산 당일 경로를 따라가봤습니다.

새벽 6시 40분쯤 양수가 터진 산모는 바다에서 육지로, 다시 하늘로 2시간 이상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주변 지역에 아기를 받아줄 산부인과 병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남 지역 22개 시·군 중 14곳은 분만 병원이 아예 없거나 거리가 멀어 취약지역으로 분류됩니다.

임신부에게 응급 상황이 생기면 장거리 이송이 불가피합니다.

[김윤하/전남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 거의 99%, 고위험 임신부가 입원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자가 전라남도 지방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전송된 환자들이거든요.]

분만 병원이 없는 지역의 산모들은 일찌감치 큰 병원에 와서 대기해야 합니다.

인구 15만 명의 광양시에서 온 30살 함상희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함상희/전남 광양시 광양읍 : (광양에는) 병원이, 큰 병원이 없어서. 순천을 넘어간다고 해도 받아줄지도 모르겠어요. 갈 만한 데가 없어요.]

[김윤하/전남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 2008년부터 우리나라 모성사망률이 많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거든요. 산부인과 의사의 부족, 분만 환경이 나빠지는 그런 것들이 모성사망률 증가에 같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모성사망률은 세계 41위,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보다도 못합니다.

심지어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을 맡고 있는 박노준 원장도 분만 진료를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서울 천호동에 개업한 박 원장은 13년 전 마지막으로 아기를 받았습니다.

[박노준/산부인과 원장 : 매년 분만을 포기하는 산부인과 병원이 50여 곳 됐죠.]

오래된 분만대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그의 손길엔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앞쪽엔 빼곡하던 출산 기록이 뒤로 갈수록 줄어듭니다.

[박노준/산부인과 원장 : (2001년 6월 26일, 이 날이 마지막이군요.) 이 때는 보세요. 1달에 1~2건도 안 되잖아요. 포기했죠. 도저히 안 돼서.]

옛 분만실을 지키고 있는 이 침대 위에서 많을 때는 매일 한 명씩 소중한 생명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박노준/산부인과 원장 :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안 되면 제왕절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취과 의사가 필요하고, 아기 상태가 안 좋다고 하면 소아과 의사도 필요합니다.]

인구 11만 명의 경기도 여주시, 시내에 산부인과는 4곳이지만 모두 분만 진료를 포기했습니다.

[김춘석/여주시장 : 임신을 하게 되면 보통 산부인과에 가서 15~20번 검진을 받고 검진 받은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 추세인데요. (분만 병원이 있는) 이천이나 원주까지 계속 다녀야 되는 불편한 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죠.]

모두 이런 건 아닙니다.

강원도 삼척의료원은 정부에서 설치비 등을 지원받아 폐쇄했던 분만실을 다시 열었습니다.

[서영준/삼척의료원장 : 저출산 현상은 전국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꼭 삼척만 심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느 지역이든 간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산부인과가 있어야만 (합니다.)]

[앵커]

정부는 최근 수조 원의 예산을 들여가며 저출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지않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생사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과연 정부가 알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를 낳으라고 하기에 앞서 최소한의 인프라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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