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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7회] 구출된 염전 노예 "다시 돌아가겠다"…왜?

입력 2014-03-30 23:13 수정 2014-03-3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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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달 서해안의 한 섬에서 이른바 '염전 노예'가 구출되면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많은 시민들이 놀라고 또 분노했습니다. 탐사플러스는 과연 염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김관, 정진우 두 기자가 염전에 두 달 가까이 머물며 밀착 취재했습니다.

[기자]

어제(29일) 전남 비금도에서는 채염식이 열렸습니다.

첫 소금 생산을 축하하고 한 해의 소금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국내 최대 천일염 생산지인 신의도는 조용했습니다.

풍악을 울리며 채염식을 했던 작년과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신의도 염전 업주 : 이렇게 너무 갑작스럽게 일하던 직원들 다 잃어버리고. 생활 자체가 마비되다시피 해버리면 안 되지. 주인 혼자서는 못 하는 일들이고.]

염전노예의 후폭풍은 신의도에 어떻게 몰아친 걸까.

전남 목포에서 서해 상으로 30km 떨어진 신안군의 섬 신의도.

이 섬엔 염전 240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염전 작업철을 몇 달 앞둔 지난 2월 28일, 신의도의 한 유력 인사의 자택 앞에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 형사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때, 급하게 집으로 향하는 트럭 한 대, 트럭에서 내린 양복차림의 남성이 형사들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금 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 오른쪽, 오른쪽!]

이 남성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 다른 승합차에서도 형사들이 내립니다.

이 곳은 신안군의회 부의장 박 모씨의 집.

양복 입은 남성이 바로 박씨였습니다.

경찰은 신의도에서 수십 년 동안 염전을 운영해온 박씨가 염전 인부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강제노역을 시킨다는 첩보를 입수해 내사를 벌여왔습니다.

집 앞을 서성이던 박씨의 부인은 취재진에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얘기합니다.

[박 부의장 부인 : (경찰들은 그냥) 상담하기 위해서 왔는데, 왜 아저씨들 이렇게 취재 따라다니냐고. (지금 여기는 경찰이 왜 오셨대요?) 전반적으로 저 사람들(경찰) 다 돌아다녀.]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박씨의 인부는 취재진을 보자 황급히 피합니다.

[박 부의장 염전 인부 : ((경찰조사) 다 끝나고 가시는 거예요?) 다 끝났는데요. (선생님은 임금은 다 받으셨어요?)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박씨의 얘기를 직접 듣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압수수색의 흔적 때문인지 입구부터 어수선했고 박씨의 부인은 언성을 높였습니다.

[박 부의장 부인 : 알고 물어봐. 뭐 알고 물어보라고!]

[박 부의장 : (제가 아는 걸 확인하는 겁니다. 잘못 알고 있으면, 잘못 알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면 되는 겁니다.) 지금 충분하게 조사를 3번, 4번 받았어요. (결국 임금체불 혐의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뭔 혐의가 있겠어요?]

며칠 뒤 박씨는 50대 염전 인부를 폭행하고 7년간 9천만 원에 달하는 임금을 주지 않은 혐의로 결국 입건됐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박씨뿐 아니라 신안군 일대의 염전 업주 15명도 같은 혐의로 검거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한 순간에 노예섬으로 전락한 신의도.

오랫동안 숨겨졌던 비극이 세상에 알려진 건 한 남자의 처절한 탈출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좋아하는 곡들을 연주해주겠다며 건반에 손을 올리는 남자.

[잘 치는 걸 한번 쳐볼까요.]

손도, 목소리도 떨고 있지만 그가 연주하는 건 '고향의 봄'이었습니다.

두 달 전만 해도 그는 자신이 피아노 앞에 다시 앉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굳게 다문 입으로 연거푸 담배 연기만을 마시는 이 남자.

그가 바로 지난 1월 24일, 목포행 배에 오른 신의도의 염전 인부 그리고 피아노를 치던 김성백 씨입니다.

신의도로부터의 탈출.

염전 주인 홍 모씨의 강제노역에 시달린 지 1년 반 만의 일이었습니다.

서울 구로경찰서 실종수사팀 사무실엔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성백 씨 어머니 : 이놈의 자식아. 살아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

울음을 참으려는 듯 김씨의 입은 더욱 굳게 다물어졌습니다.

그리고 2주 뒤, 난생 처음 선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다물었던 그의 입이 열렸습니다.

[김성백/염전 강제노역 인부 : 사장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때리고 사장 말 들으면 그땐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때릴 때는 주먹이나 발로 치는 것은 고사하고 나무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칠 때도 많았습니다.]

주인 홍씨의 염전에서 새벽 4시부터 하루 15시간씩 넘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받았어야 할 월급 900만 원은 끝내 그의 통장엔 입금되지 않았습니다.

[김성백/염전 강제노역 인부 : 어떻게 해서든지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김씨를 구해준 건 서울의 어머니에게 부친 편지 한 통이었습니다.

온갖 노역에 시달리며 돈도 못 받고 있다는 아들의 SOS.

작전을 짜주듯 소금을 사러오는 것처럼 위장하라는 마지막 문장에선 이 편지에 마지막 희망을 건 김씨의 절실함이 묻어있습니다.

어머니는 곧바로 구로경찰서에 신고했고, 그제서야 김씨는 섬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겁니다.

경찰은 섬이 어딘지 밝히기를 주저했습니다.

[한증섭/당시 구로경찰서 형사과장 : (섬 이름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요?) 섬 이름이 공개가 되면, 섬에 나쁜 이미지가 되고, 의도치 않은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탐사플러스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해당 섬이 신의도라는 사실을 파악해 현장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정말로 21세기에 염전 노예가 존재하는 걸까.

취재진은 경찰이 제공하는 영상에 담겼던, 바로 그 건물, 사람의 숙소라고 믿기 힘든 그곳을 찾아냈습니다.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편지를 부칠 당시 김씨의 동선입니다.

분뇨가 쌓여 있는 숙소에서 하나뿐인 읍내 이발소로, 이발소를 나와 다시 우체국으로, 그런데 이발소 바로 앞에 보이는 파출소.

위기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상식이지만 김씨는 코 앞의 파출소 대신 500m 거리의 우체국으로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

[김성백/염전 강제노역 인부 : (파출소는 왜 안 가셨어요?) 사장님하고 관계가 있어 가지고 다 연락이 가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질문을 파출소 직원에게도 던졌습니다.

[당시 신의파출소 경찰 : (이발소 나오면 여기가 바로 앞에 보이는데 왜 안 왔을까요?) 그러게요. 다른 염전 종업원들은 다 와가지고 정리하고 돈 받을 거 받고 다 가요. (주인 홍씨가 너무 무서워서 그랬을까요? 도망가려다 잡혔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글쎄요. 걔네들이 좀 정상적이지 않으니까. 약간 몇 프로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정상적으로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받고 여기서 일할 사람 있겠습니까? 도시에 가면 노숙 생활 할 사람들이에요]

면사무소도 찾아가 봤습니다.

[신의면사무소 관계자 : (주인 홍씨는) 상당히 활발하게 마을 이장도 하셨고, 좋은 분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건은 전혀 모르셨나요?) 몰랐죠. 옛날에는 인신매매가 있고 그런 관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관계가 다 없어졌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의도의 경찰과 공무원들은 늘상 접하는 현실에 감각이 무뎌진 듯 했습니다.

주인 홍씨는 임금체불과 폭행, 감금 등의 혐의로 결국 구속됐습니다.

[홍00/김성백 씨 염전 주인 : 죄송하게 됐습니다. (밀렸던 임금을 다시 주실 생각은 있나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데 연락이 없어서 못 주고 있습니다. (폭행 부분은 인정했다던데?) 서로 일을 하다보면 일을 거꾸로 할 때도 있고 일하는 과정에서 피해가 가게끔 하니까 그 부분에서 이렇게 일을 하면 되겠냐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이제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자신이 그리워하던 평범한 삶을 되찾은 김씨.

비로소 그의 얼굴에서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전남 무안군의 한 요양시설.

우리는 이곳에서 자신들 역시 김씨와 같은 염전 노예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번에 경찰과 노동부의 합동점검으로 구출된 사람들입니다.

함께 구출된 다른 인부들은 가족의 품으로,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갈 곳 없는 이들 9명은 이곳에 남았습니다.

염전 노예로 살았던 삶에 대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박 모씨/염전 강제노역 인부 : (1년 동안 염전에서 일해서 얼마 받으셨어요?) 원래는 400만 원 준다고 했어요. (실제로 받으신 금액은?) 90만 원이요.]

[채 모씨/염전 강제노역 인부 : (어느 정도 받으셨어요?) 대충 1,500만 원 받고 해결이 됐어요. (1년에 1,500만 원이요?) 아니, 20년 일한 것을 이번에 받은 거예요. (20년 동안 월급을 한 번도 못 받으셨어요?) 네.]

20년에 1,500만 원이면 한 달 월급이 6만 2,500원인 셈입니다.

[이 모씨/염전 강제노역 인부 : (임금 왜 안 주냐고 해보셨어요?) 얘기하면 뭐해요, 안 주는 걸. 돈 자체를 안 주는 걸.]

폭행과 욕설도 난무했습니다.

[이 모씨/염전 강제노역 인부 : 얼마나 폭행을 하는데. 너 봤지? (삽질로 심하게 때려, 심하게.) 몽둥이로도 패버리지. (사모님 앞에서 따귀를 막 때리고.) 이유 없이 맞는 거야, 그냥.]

더 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채 모씨/염전 강제노역 인부 : 칼로 여기 맞았어요. 칼로. (왜요?) 경찰 진술이 다 됐어요. 나보고 주방에서 후라이팬 닦으라고 했어요. 그 주인이 식당도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잘 못 닦은 모양이에요. 그 아줌마가 그러니까…(저희가 그 상처를 볼 수 있나요?)]

이번 사건에 불을 지핀 김성백 씨에 대한 목격담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박 모씨/염전 강제노역 인부 : (김성백 씨와 좀 알고 계셨나요?) 바로 옆에 염전에 있었으니까 알죠. 나는 같은 동네니까 잘 알지. (염전 주인한테 맞는 것도 보셨나요?) 내가 알려줄게. 쉽게 말해서, 이게 삽이야. 이걸로 막 때려. 등짝을 때리든지 여기를 때리든지. 몽둥이로 때리지, 따귀 때리지. 이렇게 머리 때리든지. 아니면 이렇게 밀어서 넘어뜨리고 발로 밟고.]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피해의 증언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분명한 건 이들이 인간답지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심한 모멸감에 괴로워했다는 사실입니다.

[박 모씨/염전 강제노역 인부 : 말도 좀 좋게 하면 되는데, 욕 하면서 야 '이 00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러니까. 우리도 사람인데 존중을 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앵커]

현장을 취재한 김관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김기자, 신안 천일염하면, 고급 소금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충격도 더 큰 건데 우리 식탁에 오르는 천일염, 강제 노역으로 생산된게 대부분이라는 이야기죠?

[기자]

네, 우리나라에서 단일 지역으로 가장 많은 천일염을 생산하는 곳이 바로 신안군입니다.

전체 생산량 30만t 중 7만t이 신안군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이번에 적발된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이 어떤 유통 과정을 거치느냐거든요. 대기업이 들어가있다면 과연 저비용 구조의 문제를 몰랐겠느냐하는 것도 있고요.

[기자]

저희도 그 게 궁금해 검증해봤습니다.

함께 보시죠.

대형 식품업체 C사가 2010년 신의도에 지은 천일염 공장.

공장 완공 당시 이 회사는 신의도 염전 업주 83명이 참여한 신의도 천일염 주식회사와 납품계약을 맺습니다. .

[신의도 염전업주 : ㅇㅇ에서 공장을 지었으니 소금을 공급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주주로 참여시킨 것이 염주들한테 ㅇㅇ하고 계약한 사람들에 한해서 소금을 가져간 거죠.]

C사는 이들의 원료를 가공해 '명품 천일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천일염 시장 진출 3년 만에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습니다.

혹시 이곳에 납품되는 소금 중엔 염전노예 문제로 적발된 업주의 소금은 없을까.

[C사 천일염 공장 공장장 : 다행히 저희 주주들은 적발된 적은 없고요. 언론 상에 나오는 적발된 사람에 한해서 확인을 하시려면 저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83곳 주주 명단이 있는데 그것을 보시면 저희 주주가 (적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장장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반된 진술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의도 염전업주 : (몇 명 적발됐는데 그 사람들이 만들던 소금이 다 납품이 됐을까요?) 100% 다 그 소금이에요. 거기서 나온 소금 다 쓰는 거죠. (누구누구인지 이 사람들이 ㅇㅇ에 납품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1시간만 기다리시면, 확인해드릴게.]

그리고 잠시 뒤 수신된 문자 메시지.

전남경찰청에 직접 확인해봤습니다.

김 모씨와 박 모씨는 인부들의 임금을 8년 이상 가로채거나 제대로 주지 않은 혐의가 적발돼 경찰 내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장 모씨는 인부에게 3년 동안 임금을 안 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박 모씨는 바로 신안군의회 박 부의장이었습니다.

박 부의장은 C사의 천일염 공장이 완공될 당시 신의도 천일염 주식회사의 추진위원장이었고, 동시에 생산자 대표직까지 맡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염전노예를 부린 업주들의 소금이 국내 최대 식품업체의 천일염 공장에 납품됐다는 얘기입니다.

대기업의 포장지를 입은 명품 천일염.

하지만 명품이란 수식 뒤에는 염전노예들이 있었던 겁니다.

C사는 답변서를 통해 이번에 문제가 된 염전주 4명에 대해서는 수매 중단 조치를 검토하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진 염전에선 수매를 중단하겠다고 했습니다.

염전노예 사건이 터진 직후 온라인에서는 신안 천일염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윤리적 소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비윤리적인 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얘기입니다.

[최경숙/주부 : 구매를 안 하지. 정당하게 생산된 소금이 아니잖아.]

다른 염전 생산지는 어떨까.

신의도와 가깝고 역시 천일염으로 유명한 비금도와 도초도.

취재진은 사전 통보 없이 두 섬의 천일염 공장을 찾아갔습니다.

소금을 퍼나르고, 무거운 자루를 들어 옮기는 힘든 일을 40~50대 여성들이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인부들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주장합니다.

[강영삼/비금농협 생산과장 : 여기는 부부간, 가족간, 형제간 또는 같은 지역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임덕길/도초농협 생산과장 : (도초는) 소금 생산 농가가 105개 농가 정도 되는데, 거의 대부분이 가족 집약적인 염전들이기 때문에…]

신의도 같은 사례를 찾지 못했습니다.

염전노예 파문은 한 때 강제 노역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새우잡이로도 번졌습니다.

안개 자욱한 바다를 가르는 해경의 경비함정.

목포를 출발해 새우젓으로 유명한 신안군 임자도로 향합니다.

해경은 한 달 넘게 새우잡이 선원들에 대한 인권 유린 점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물 손질을 하던 인부들은 해경을 보자 긴장하는 눈치입니다.

우리는 배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새우잡이배 선원 : (선생님, 지금 무슨 식사 드시는 거에요) 김치찌개 해서 먹고 그래요.]

유일한 휴식공간이자 잠자리인 선원실로 들어가봤습니다.

[윤경수/새우잡이 선원 : 여기서 잠을 자든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든가. 여가시간을 가지는 거죠. (여기서 몇 분이 주무세요?) 여기서 5명.]

10년째 배를 타고 있다는 윤씨는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합니다.

[윤경수/새우잡이 선원 : 선주가 좋은 편이라 오고 또 왔지요. 안 좋으면 왔겠어요? (좋은 선주는 어떤 기준인가요?) 먹는 거 잘 챙겨주고, 월급 계산 잘 해주고.]

어쩌면 직원으로서 마땅히 받아야할 대우지만 이것만으로도 선원들은 고마워하고 있었습니다.

해경은 이런 식으로 신안군 일대의 어선 192척을 점검해 선원을 때리거나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선주 7명을 붙잡았습니다.

지난 주 신안군의 한 체육관, 염전 업주 900여 명이 모였습니다.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근로자를 가족과 같이 아끼며 사랑한다!]

염전 노예 사건으로 인한 비난 여론이 식지 않자 신안군이 자구책으로 마련한 천일염 종사자 자정 결의대회.

출석 여부를 확인한다고 하자 업주들은 일단 모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인권 침해 예방 교육이 시작되자 하나 둘 빠져나가고, 빈 자리가 더 많아졌습니다.

이들은 되레 주변 가판대에 관심이 많아보였습니다.

[신안군 염전업주 : 오늘 염전에 날씨 좋았으면 많이들 안 오지. 날씨가 비오고 하니까. (안 오신 분들은 어떻게 되나요?) 관련 없지. 오면 오고, 말면 마는 거지.]

과연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진 염전 노예 관행이 근절될 수 있을까.

취재진은 경찰의 구출로 염전에서 빠져나온 인부들과 대화를 이어가던 중 믿기 어려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김 모씨/염전 강제노역 인부 : 다시 돌아갈 거예요. 나이가 많이 먹어서 공장에서 쓰지도 않아요. 40대는 일자리 많이 생기죠. 나이가 50 넘으니까 공장 같은 데 들어가기도 힘들고 그렇더라고.]

힘들게 빠져나온 염전이었지만, 결국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채 모씨/염전 강제노역 인부 : 가족은 없고, 친구도 없고. 다른 데 염주가 전화했는데 오라고 하네요. (또 염전으로 갈 생각이에요?) 지긋지긋하기는 하죠, 소금만 봐도요. 그런데 마땅한 직업이. 그런 것도 안 하면 사회에 나가면 아무거라도 해야 먹고 살 거 아니여.]

이들뿐 아닙니다.

경찰이 구해낸 염전 인부는 모두 49명.

이 중 주인의 불법 행위에도 불구하고 염전에 남아 있기로 한 인부는 10명이나 됩니다.

염전을 벗어나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게 이유입니다.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탈출, 그 이후의 길이었습니다.

[김태은/보건복지부 중앙지원단 변호사 : 언론의 관심을 받을 때, 그리고 경찰이 수사를 할 당시에는 빠져나왔다가 결과적으로 사회안전망 내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분들이 구조되고 난 다음에 사회에 실제로 안착해서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하는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앵커]

말 그대로 염전 노예인데, 어렵게 구출이 됐지만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겠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생산한 제품을 유통하는 공정무역이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 역시 무조건 값싼 소금이 아니라 '공정한 소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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