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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꿀벌도 송이도 잿더미…남은 건 속 타는 마음뿐

입력 2022-03-16 20:29 수정 2022-03-1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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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산불 때뿐 아니라, 산불 뒤에 현장의 모습도 반드시 살펴봐야 합니다. 잿더미와 잿물 앞에서 절망에 빠져 있는 우리 이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함께해야 이들이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밀착카메라 이상엽 기자가 213시간 사투를 벌인 울진 주민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기자]

꿀벌 천만 마리가 있던 한 양봉농가입니다.

저장고 입구는 이렇게 문이 부서졌고 안쪽을 보시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부 타버렸습니다.

벌통 250개가 불에 탔고 안에 있던 꿀벌은 모두 죽었습니다.

[김형원/양봉농가 주인 : 살아 있는 벌통이 한 통도 안 남았어요. 100% 전소됐다는 거예요. 이게 타고 남은 흔적이에요. (죽은 벌통이에요?) 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예요.]

7년간 아들과 함께 키워온 벌들입니다.

[김형원/양봉농가 주인 : 저희 아이들이 지적장애 3급이거든요. 큰애, 작은애 둘 다. 밖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는 거북이니까 농사를 지으면서 살 수 있게끔 하려고…]

아이들의 미래였고 희망이었습니다.

[김형원/양봉농가 주인 : 5월 초가 되면 아카시아 꿀을 딸 수 있는, 저희는 결실을 앞둔 때 아닙니까. 꿀은 봄에 수확하는 건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냥 모든 게 끝난 거죠.]

비 내린 거리 곳곳엔 매캐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떠내려온 잿물은 바다로 흘러갑니다.

[임춘자/주민 : 잿물이 바다로 나오면 미역이 상하기 때문에…나무 타고 잿물이 내려와. 들어 올려줘. (제가 올려드릴게요.) 미리 해야 해. (어머니 이거 실을까요?) 고마워.]

송이산에 직접 올라와 봤습니다.

이번 산불로 산 전체가 시커멓게 타버렸습니다.

송이가 자라는 흙은 까만 재로 뒤덮였습니다.

[장영철/송이 산주 : 이렇게 하얀 게 다 포자거든. 그런데 포자가 시루떡처럼 다 쪄졌어. 포자가 형성돼서 송이가 자라는 건데 지금은 열이 하도 많아서…]

4월이면 바빠지는데 이렇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장영철/송이 산주 : 4월쯤 되면 송이가 나기 시작하는 단계. 6월부터 따야 하는데 지금 뭐 산에 가봤자 다 타고 없으니까. 볼 게 없어.]

50년간 대대로 지켜온 송이산이었습니다.

[장영철/송이 산주 : 이게 산인지 숯 공장인지 분간이 안 가. 여기 오기만 하면 복장이 다 터져. 아버지 돌아가신 지 5년 조금 넘었는데 아버지 볼 면목이 없어요.]

쏟아지는 잿물에 옛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날도 불이 났고 비가 온 뒤엔 산이 무너져 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장영철/송이 산주 : 아들만 없더라고요. 나중에 아들 찾았는데 저는 마지막 아들 얼굴도 못 보고… 생각을 안 하려고 했는데 열심히 살라고 하는데 아들 생각이 많이 나네요.]

푸른 잎 대신 검은 잿더미를 뒤집어쓴 소나무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숲과 함께 생계를 이어오던 주민들의 일상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모두가 들여다봐야 할 현장에서 밀착카메라 이상엽입니다.

(VJ : 김대현 / 인턴기자 : 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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