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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는 세 글자가 붙기까지…문재인이 걸어온 길

입력 2017-05-10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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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숨가쁜 두 달을 통해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만들어졌습니다. 문재인 당선인이 만들겠다는 새로운 대한민국에 국민들의 기대감이 높습니다. 문 당선인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앞으로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신혜원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기자]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직에 오르게 된 문재인.

그의 호칭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붙어온 '노무현'이라는 딱지, 그 그림자를 넘어서 수식어 없는 '문재인' 이라는 이름으로 서기까지…

[이제 정치의 주류는 국민이어야 합니다. 권력의 주류는 시민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 앞에 '대통령'이라는 세 글자가 붙기까지 진보정권 10년과 보수정권 10년.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와 건국 이후 최대의 정치 스캔들이 된 최순실 게이트,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과 구속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는 이어졌고, 문재인 역시 험하고 먼 물길을 흘러왔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정치를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한 때 정치를 거부했던, 그러다 운명처럼 정치를 시작했다고 말하는 문재인. 그 운명을 그는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운명을 거부하면, 이 황무지 같은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실향민의 아들

문재인이 태어나기 3년 전, 그의 부모는 전쟁의 공포와 죽음을 피해 길을 떠났고, 경남 거제에 정착합니다.

이후 부산에 정착한 문재인은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고, 친구의 도시락 뚜껑을 빌려 강냉이죽을 받아먹었습니다.

태풍으로 집 지붕이 날아갈 만큼 가난했던 유년 시절. 그래도 유년기는 봄날이었습니다.

경남중, 경남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친구들과 술, 담배를 하며 어울려 '정학'을 당하기도 했지만 크게 엇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운동권, 특전사… 변호사

경희대 법대에 재학 중이던 문재인은 학내 시위를 주도해 이끌다 결국 구속됩니다.

징역은 면했지만, 수상한 시절. 데모를 주도했으니 곧바로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특전사로 차출돼 폭탄을 만들고 하늘을 날고, 수중 침투훈련까지… '군대에 말뚝 박으라'는 선임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문재인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이 명함, 보이시죠?

"법을 잘 모르거나 애태우는 근로자가 있다면 문의 바랍니다. 상담료는 받지 않습니다."

전역 후 또 다시 시위를 하다 잡혀간 유치장에서 문재인은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접한 문재인은 변호사의 삶을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함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에 진출하며 정치의 길로, 문재인은 부산에 남아 노동자의 삶을 대변하는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습니다.

#노무현의 비서실장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문재인은 정치는 시키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청와대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번의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그리고 비서실장을 역임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불어닥친 문재인 총선 징발론.

지지율 하락으로 침체 겪고 있던 열린우리당에서 그를 원한 겁니다.

하지만 문재인은 건강을 이유로 민정수석을 사퇴합니다.

그러곤 향한 네팔의 고산에서 그는 '친구 노무현'의 탄핵 소식을 접합니다.

결국 문재인은 다시 돌아왔고, 탄핵 대리인단에 들어가 기각을 이끌어냅니다.

#결국, 정치인 문재인

[조금 전 9시 30분 경 돌아가셨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가족들 앞으로 짧은 유서를 남기셨습니다.]

정권을 놓은 지 1년 만에 급작스러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문재인은 상주가 됐고, 마치 꼼짝없이 남은 숙제를 하게 하듯 정치판에 뛰어들어 2012년 대선에까지 출마합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51.6% 대 48% 패배였습니다.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과 노무현 정부 저성과의 짐까지…노무현은 여전히 문재인에게 자양분이자 그늘이었습니다.

이후 침잠해있던 문재인이 다시 운동화 끈을 조인 건 2015년 2.8 민주당 전당대회였습니다. 초선의원으로 당 대표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친노' 대신 등장한 '친문'이란 단어. 친문 패권주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당은 결국 쪼개졌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는 결국 문재인이 이번 대선에서 넘어서야 할 가장 큰 벽이었습니다.

[국익보다 앞서는 이념은 없습니다. 국민보다 중요한 이념도 없습니다. 분열의 시대와 단호히 결별하고 정의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겠습니다.]

'재조산하'…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만드는 일.

문 당선인이 2번째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내건 집권의 이유이자 목표였습니다.

선거 내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혀온 문재인 정부.

과연 그만의 세상을 새롭게 세울 수 있을지, 이제부터 국민은 지켜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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