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박상욱의 기후 1.5] '굿 뉴스'와 '배드 뉴스'

입력 2020-06-08 09:50 수정 2020-06-25 14:39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9)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9)

지난 금요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었습니다. 이를 맞아 국내에선 아주 의미있는 일도 있었지만 안타까운 일도 함께였습니다. 물론, 모두 기후변화, 기후위기와 관련한 일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굿 뉴스'와 '배드 뉴스'

#세계 첫 '기후비상 공동 선언'

지금껏 많은 나라들, 많은 기관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해왔습니다. 그런데, 한 나라의 모든 기초지방자치단체가 한 데 모여 '기후비상 선언'까지 한 일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개별 지역들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그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나라에서 모든 자치단체가 한 목소리로 기후비상을 선언했습니다.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선언 자체로도 충분히 드라마틱한데, 진행 과정은 더욱 드라마틱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지자체가 참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선언일이 다가오면서 하나, 둘 더 많은 지자체들이 모여들어 선언 전 날, 전체 228곳 220개 지자체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선언 당일, 점심시간 직전까지도 여기에 동참하는 지자체가 나왔습니다.

결국, 선언문엔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전체 228곳 중 단체장이 옥살이 등의 이유로 공석인 2곳(울산 남구, 경남 의령군)을 뺀 모든 지역이 참여한 겁니다. 이를 '사실상 전국 모든 기초지자체가 참여했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선언문의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 수준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경고의 증거는 곳곳서 나타나고 있다. 태풍과 허리케인의 세기는 강력해지고, 빈도는 잦아지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과 한파, 가뭄과 홍수는 예측이 어렵고, 대형 산불이 전 세계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의 발병이 증가하는 것도 기후위기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사태는 개발 위주의 경제성장정책이 빚어온 결과이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특히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이러한 위협이 주는 피해는 훨씬 심각하다."

"기후위기와 재난에 가장 먼저 대응하는 주체는 지방정부다. 기후재난에 취약한 약자들을 위해 적응계획을 실행하는 주체도 지방정부다. 지방정부가 앞장서서 시민들과 함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고, 취약계층을 위한 대응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당장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거대한 전환의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전환은 각자의 책임에 합당한 부담을 져야 하며, 약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단순히 중앙정부와 국회를 향해서 책임을 묻는,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지자체 스스로 정책의 시행 주체임을 강조했죠. 소외계층이 더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또 다른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할을 하겠다고도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전국 모든 기초단체가 이렇게 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높은 평가를 받을만합니다. 지난해 미세먼지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허울뿐인 법'이 되는 데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헛발'이 큰 몫을 했습니다. 분명, 법규는 타이트하게 만들어 놨는데, 이를 시행할 지자체에겐 준비할 시간도, 장비도, 인력도, 비용도 없었으니까요. "법에는 있는데 왜 현장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는가" 허탈함만 남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시민단체들도 이같은 선언을 반겼습니다. 여러 환경단체들이 모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로 한 국가의 모든 지자체에서 기후위기 비상을 선언한 역사적인 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만합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의장을 배출한 나라, 또 다른 기후변화 국제기구인 GCF(녹색기후기금)의 사무국이 위치한 나라, 뒤늦게 '그린 뉴딜'을 외치는 유럽보다 먼저 '녹색 성장'이라는 화두를 국제사회에 내놨던 나라. 모두 대한민국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변화도 없는 나라, 변화가 없는 것을 넘어 온실가스 배출이 해마다 꾸준히 신기록을 달성중인 나라이기도 하죠. 이번 공동선언은 모처럼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의 면이 설 만한 일입니다.

#'동상이몽' 전력수급계획

"대한민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86% 이상은 에너지 부문이다. 지금까지 해 왔던 국가 중심의 중앙집중형 에너지시스템으로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기초단체장들이 선언문을 통해 강조했듯, 전력수급계획은 한 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향방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요. 파국? 아니면 지속가능한 미래?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20년부터 2034년까지 향후 15년의 전력수급을 결정하는 계획입니다. 2050년, 우리가 내뿜는 온실가스와 자연이 흡수할 수 있는 온실가스가 만나는 '넷 제로', 탄소 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지는 바로 이 계획에 좌지우지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굿 뉴스'와 '배드 뉴스' 앞으로 10년 후에도 전력 발전에선 화석연료가 절반 넘는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정부가 내놓은 안에 따르면, 9차 계획의 마지막 해인 2034년에도 우리나라는 석탄발전의 비중이 가장 큰 상태입니다. 우리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을 5억 3600만톤만 뿜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2017년 대비 24.4%를 줄이는 셈이고, '평소 늘어나는 대로'의 배출량을 말하는 2030년 BAU(Business As Usual) 배출량 대비 37%나 줄이는 겁니다. 특히 에너지 분야의 경우, BAU 대비 42.2%나 줄이겠다고 하고요.

분명, 목표를 세운 것도, 이런 전력수급계획을 세운 것도 정부입니다. 그런데 2030년, 석탄발전 비중이 31.4%에 달하면서 무슨 수로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걸까요.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최근 이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 "파리기후협정에 상응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온실가스가 3.2배나 초과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묶자는, 그러기 위해선 각 나라마다 얼마만큼 줄이겠다고 합의한 협정을 지키지 못 하는 거죠. 아슬아슬하게 못 지키는 것이 아니라, 3배 넘게 뿜어대면서 말입니다.

이는 2016년, 우리 국회가 비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깨는 것뿐 아니라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도 깨는 셈인 거죠.

#컨트롤타워 따로, 키 따로

세계 각국에서 기후변화 대응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환경부가 도맡고 있습니다. 면밀한 검토 끝에 목표를 설정하고, 이 목표를 어기는 일에 대해선 엄격한 법적 조치를 취합니다. 전세계를 뒤흔든, 디젤게이트. 세계 판매 1위의 폭스바겐 그룹을 코너로 몰아붙였던 것은 미국 EPA(환경보호청)였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쫓아가기 어려울 만큼 녹색 전환, 그린 뉴딜에 적극적인 EU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중심엔 기후변화총국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응 정책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부처는 환경부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보면 체감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키'를 쥔 부처는 따로 있다는 겁니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결국 우리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활동은 대부분 소비와 생산에 관련된 것들이죠. 당장 위에서 언급했던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세우는 계획입니다. 발전 다음으로 온실가스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송 분야, 바로 자동차 같은 경우 환경부뿐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 개별 지자체까지 얽혀있습니다.

각각의 입장이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부처간 협력과 논의가 강조되는 것이고요. 정반합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지금까진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후변화 대응, 감축의 큰 틀을 정하는 곳도, 실질적인 감축 계획을 만드는 곳도… 서로 '딴 소리'를 할 뿐인 겁니다. 분명,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정해졌고, 분야별로 어떻게 줄일지도 정해졌는데, 그 분야를 담당하는 부처의 계획을 보면 도무지 '어떻게 줄이겠다는 건가', '줄이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는 건가' 알 수 없는 거죠. 우리나라가 일찌감치 '녹색'이라는 화두를 던져놓고도 이렇다 할 진전을 이루지 못 한 이유입니다.

컨트롤타워를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취급하는 것일 수도, 컨트롤타워가 '책임 의식' 없이 있는 것일 수도,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부처별 의전서열도 다르고, 다루는 예산의 규모도 천차만별입니다. 예산 규모가 크다고, 혹은 의전 서열이 높다고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계획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의전 순서가 좀 더 뒤고, 다루는 예산이 적다고 해서 목표와 계획이 휘둘리게 두어서도 안 됩니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정책 설명회나 토론회를 가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는 말이 온화하고 교양있는 버전으로 나옵니다. 서로 부딪히는 양쪽의 말을 들어보면 결국 방향은 같습니다. 온실가스를 더 줄이자는 쪽도, 덜 줄이자는 쪽도 모두 '먹고 살자'고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오늘'만' 먹고 살 것인지, 내일'도' 먹고 살 것인지를 생각하면, 답은 이미 여러분의 머리에 떠오를 겁니다. EU가 괜히 대대적인 감축에 나서겠습니까.

'그렇게 목표 잡아도 달성 못 한다'며 감축과 거리 먼 전력수급계획을 내놓는 것도, '우리가 EU도 아니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며 큰 소리 내는 것 주저하는 것도…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기후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드린지 어느덧 7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젠 텍스트뿐 아니라 디지털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도 이야기합니다. 방송으로는 매주 금요일, 뉴스룸이 끝난 직후 유튜브와 페이스북, 네이버TV 라이브로 기후변화를 논합니다. 적응과 감축, 기후변화 두 축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지난 금요일인 5일,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과 함께 첫 시간을 가졌는데요, 실시간 댓글을 통해 시청자 여러분의 질문에도 현장에서 바로 답을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관련기사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박상욱의 기후 1.5] 위기 때마다 급감하는 탄소 배출량 [박상욱의 기후 1.5] 냉탕 온탕 오간 '그린 뉴딜'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