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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장기·바둑판' 갈등의 수…노인복지 '묘수' 없나

입력 2018-11-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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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공원에서 장기, 또 바둑을 두기 위해서 무거운 바둑판을 직접 들고 다녀야하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돈을 내면 대여를 해주거나 무료로 쓸 수 있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인데요. 우리 사회 노인 복지의 실태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지적입니다.

밀착카메라로 윤재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서울 종로 탑골공원 후문 앞입니다.

아침부터 노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정오가 되자 곳곳에서 장기 대국들이 벌어집니다.

[심상태 씨/81세 : 인천서 왔어 인천. (지하철 타고 오셨어요?) 예. 자주 오죠.]

갈만한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모 씨/73세 : 춥죠. 추운데 노인네들 뭐 갈 데가 별반 만만치 않으니까.]

길거리 장기에 쓰이는 의자와 장기판은 인근 한 자영업자가 무료로 제공한 것입니다.

하지만 장기 대국을 즐기기 쉽지 않습니다.

주변 노숙자나 쓰레기와 뒤엉키기도 하고, 구청 단속도 수시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거리에 쌓아둔 장기판은 불법 적치물에 해당됩니다.

[장기판 제공자/73세 : 수거하면 찾아오고 그래요 우리가. (쌓아두는 건) 불법이죠. 불법인데, 어디다 쌓을 데가 없잖아요.]

인근 종묘광장공원은 길거리 바둑 명소로 꼽힙니다.

[A씨/76세 : 엄청 춥죠. 그런데도 좋다고요 여기가. 기원은 5000원씩 가잖아요. 부담되잖아요.]

그런데 광장 곳곳에 불법 상행위를 금지한다는 큰 현수막이 붙어있습니다.

원래 이곳에는 1000원을 내면 하루 종일 바둑판을 대여해주는 업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근 기원들로부터 민원이 제기되자 구청이 단속 현수막을 붙인 것입니다.

무게가 꽤 나가는 바둑판입니다.

노인들 사이에서 바둑 명당으로 통하는 이곳에서 원래는 바둑판을 빌리는 것이 가능했지만 민원이 들어간 뒤로부터는 집에서부터 직접 챙겨오게 됐습니다.

구청도 현수막은 붙였지만 실제 단속은 쉽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종로구청 관계자 :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를 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어르신들이 갈 곳이 없잖아요.]

실제 바둑과 장기를 두는 사람보다 이를 지켜보는 노인들이 더 많습니다.

공원에서 만난 노인들 대부분은 하루를 보낼 곳이 마땅치 않다고 토로합니다.

[강수성 씨/72세 : (공원에서) 그냥 한 다섯 여섯 시간. 새벽같이 나와서 늦게 늦게 조용히 들어가서 자고 그래요.]

공항이나 지하철역 종점에서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인네들 차비 공짜니까 시간 보내려고 제일로 돈도 없는 영감들만 오는 데가 여기야, 영세민들.]

서울시복지재단에 따르면 서울내 경로당과 노인복지관 등 노인여가복지시설은 3500여 개.

하지만 10명 중 1명꼴로 해당 시설을 찾는 등 대부분 노인들은 기피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경로당은 너무 폐쇄적이라서.]

[그전에는 무료 급식을 했거든요. 근데 요즘은 1000원씩 받아.]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공원도 있습니다.

비닐천막 안에는 장기 두는 노인이 가득합니다.

[강모 씨/83세 : 여기만 오면 걱정할 게 없어. 난 뭐 갈 데가 없거든 대우 못 받으니까. 좋잖아.]

이 곳은 한 장기동호회원이 공원 측에 3년가량 민원을 넣은 끝에 만들어졌습니다.

[오만성/장기방 관리자 : 배드민턴 같은 데는 올라가는 길도 만들어주고 시설도 잘해주고. 왜 노인들 편안히 쉴 수 있는 장소는 이렇게 하나 만드는 데 어렵나.]

노인인구 700만 시대.

날은 추워지고 있지만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노인들은 거리에서라도 쉴 곳을 찾고 있습니다.

단속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마음 놓고 갈 곳을 만드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인턴기자 : 우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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