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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홍준 교수 "문화재 복원 시스템부터 고쳐야…기술축적이 안 돼"

입력 2014-11-05 21:59 수정 2014-11-0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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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전해드린 조선시대 선박 발견, 이분에겐 오늘(5일) 가장 관심이 가는 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화유산은 고리타분하다, 이런 인식을 완전히 바뀌게 만들어준 분이죠. 미술과 역사를 오가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또 그 안에 담긴 가치는 얼마나 큰지,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스테디셀러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의 저자이자, 전 문화재청장이기도 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네]

[앵커]

반년 만에 뵙습니다. 반년 뒤에 책 한 권 들고 오시겠다고 하시더니 정말 들고 오셨습니다.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빨리 일본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

[앵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교토의 명소' 이 책을.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이제 4권으로 끝냈습니다. 완간입니다.]

[앵커]

2년 만에? 대단하십니다. 일본 얘기 하기 전에요. 방금 뉴스를 또 전해 드렸으니까 오늘 태안에서 발견된 조선 배로 추정되는 배.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저도 금방 봤는데요.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남해에서 서해안에 고려시대, 조선시대 침몰되어 있다고 문화재청에서 확인하고 있는 배가 200척 됩니다.]

[앵커]

그렇게 많습니까?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네, 그런데 그동안에 탐사선조차도 없었다가 한 6년 전에 제가 청장 있을 때 탐사선과 인양선을 주조를 해서 그동안은 해경경찰청에서 배를 빌리고, 잠수하는 건 UDT를 동원하니까 일이 적었는데 이제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직접 탐사하고 인양을 하면서 이런 성과를 내고 있죠. ]

[앵커]

물론 200척을 다 건져 올릴 수는 없겠죠?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한 600년 걸리면 올릴 수 있겠죠. 저거 하나 건지는 데 3년은 걸리니까.]

[앵커]

그런가요? 보통 작업은 아니네요.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그것이 이제 차근차근 하는데. 마도 있는 데가 안흥량이라고 하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바다 이름에 량이 들어간 것은 물살이 센 데예요.]

[앵커]

명량처럼.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노량 전부 다. 거기 좋은 선들. 세금을 내기 위해서 가던 배들이 많이 빠졌어요, 거기에서. 그래서 지난번에 주꾸미가 청자 건진 사건이 있었죠. 그 사건도 여기서 일어난 거고 이번이 아마 네 번째 배인 것 같은데. 조선시대 건 여태까지 발견된 일이 없고 처음인데. 그동안 항해술이 좋아져서 조선 게 덜 빠졌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지금 어느 쪽이 집중적으로 빠졌는지는 모르는데 어쨌든 지난번에 통일신라 배도 나온 것으로 보도됐고 조선 배가 나왔는데. 아무튼 대한민국이 해양고고학에서는 굉장한 선진국이라고 하는 걸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겁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어떻게 이 얘기로 지금 길게 왔습니다. '교토의 명성'이라는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마지막 책이었습니다. 이런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내력이 있고 우리에게는 사연이 있다.' 어떤 뜻으로 이렇게 쓰셨습니까?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일본의 문화유산 그러니까 자연히 일본의 역사가 서려 있겠죠. 그런데 그 역사가 서려 있는 곳에 우리들의 유물이 있던지 사람이 관계되던지, 도래인의 흔적이 있던지. 어쨌든 우리와의 연관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갔을 적에는 그것을 알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앵커]

사실 많이들 가시는데, 이 교토지역은요. 이쪽에 일본의 역사가 또 오래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지난번에 쓰신 게 규슈, 아스카 나라 그리고 교토. 교토만 2개 쓰셨습니다. 그러니까 역사편하고 명소편. 이렇게 2편.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교토가 일천 년 수도잖아요. 또 교토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17군데입니다. 또 절만도 3,000개가 되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교회당만큼 거기는 신사와 절들이 있는데. 그걸 다 소개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와 연관됐거나 또 그들이 대표적이라고 하는 것을, 지금 하루에 1만 명이 오고 가는데요. 그분들이 좀 더 일본도 알고 그 속에 있는 우리도 알고 가는 그 길라잡이 책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 하고.]

[앵커]

제일 대표적인 곳이 어디일까요?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우리와 연관돼서는 역시 광명사 일본 국보 제1호 반가사유상이 있는 절이고, 그리고 교토에 아라시아마 돌교라고 하는 것이 있는 곳은 신라에서 건너간 진 씨, 일본말로 하다시들이 교토가 본래 습지였습니다. 뻘로 다뤘는데 이분들이 가서 댐을 만들어서 그곳을 농지로 다 환원시켜버렸거든요. 오늘의 교토는 신라에서 간 하다시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거기에서부터 우리와 연관이 시작됐죠. ]

[앵커]

또 빠짐없이 가는 곳이 있죠. 청수사?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기요미즈데라라고 하는 그 절을 세운 분이 백제계 도래인이에요. 그런데 그분의 조상이 아마 5대째 되는 도래인일 것 같아요. 일본 역사상 제일 처음으로 쇼군이라고 하는, 정의대장군이 된 사람이 그분이거든요. 사카도노무리 담화노라라는 분이. 그 일대에는 또 야사카 신사까지 포함해서.]

[앵커]

우리와 연관된 것이 많거든요.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고구려 사람들의 본거지였죠. 고구려 도래인들의. 그러니까 이런 것이 일본 관광책 속에는 잘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앵커]

잘 안 나오는 이유는 그쪽에서는 좀 꺼리나요, 그런 것을.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꺼리는 것보다도 팩트를 추려서 얘기하다 보면 거기까지 얘기하지 못한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다 있고 또 제가 오해하는지 모르지만 옛날에 나온 책일수록 우리 도래인 얘기들이 좀 언급이 되고, 최근에 나온 것일수록…]

[앵커]

그건 일본의 어떤 정치적 상황 이런 거…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그건 아니고 시대적 분위기가 이제 젊은이들한테 가면서 점점 멀어진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앵커]

사실 청수사 같은 경우에는 건축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청수사 무대라고 하는 것이 전설적인 곳이고, 거기에서 내려다봐야 교토가 아름답고 교토를 봤다 하는 데가 있는데, 어쨌든 거기를 창건한 사람은 백제계 도래인이었습니다.]

[앵커]

일본 사람들한테도 청수사 기요미즈데라는 굉장히 의미가 있는 곳이로군요. 제가 가서 들어봤더니 난간이 굉장히 높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본 사람들한테는 자기가 어떤 큰 결심을 할 때 기요미즈데라의 난간에서 뛰어내린다는 각오로 이런.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실제로 뛰어내린 게 백 팔십 몇 번 있다고 그러죠.]

[앵커]

그 얘기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사망률이 몇 퍼센트라고 내 책에 나와 있는데 기억 못 하겠어요.]

[앵커]

나중에 찾아보겠습니다. 진짜로 뛰어내렸나요?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네. 천팔백 몇 년부터 집계된 통계가 백 몇십 번 돼요.]

[앵커]

그냥 속담인 줄 알았더니…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우리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린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앵커]

아까 잠깐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요즘 일본 쪽에서 특히 정치인들 아베 총리 이후로 굉장히 한일관계도 안 좋고, 또 그쪽에 이른바 막말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제가 이렇게 잠깐 봤더니 교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타일러서 될 일이지 계속 맞대결 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게 있는데.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나는 우리 김연아 선수한테 배우고 싶은 거예요. 김연아 선수가 억울하게 은메달 땄다고 징징 울고 소송하고 한 거보다. 점잖게 높은 차원에서 나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금메달이 갔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 한마디가 그 모든 걸 덮어버리잖아요.]

[앵커]

그랬죠.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그러니까 우리도 한일관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가 있어서 역사 왜곡을 많이 하고 또 그걸 강조를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근대사 콤플렉스가 있어서 일본을 무시하고 있는데 그 콤플렉스의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동아시아의 동반자적인 관계로 가는 것이 맞다. 그것은 바로 유물이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앵커]

그런데 사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교수님처럼 말씀하시기가 그렇게 쉽진 않습니다.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그래도 그렇게 해야죠. 그리고 싸우는 방법도 여러 가지 있지 않겠어요. 맞상대해서는 승부 내는 수도 있지만 높은 차원 속에서 얘기하면 밑에서 악 쓰던 사람이 좀 스스로 창피해질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앵커]

글쎄요. 타일러서 안 듣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에.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일본의 지식인들의 생각을 아베 생각하고 일치시키지 말아 달라는 진보적인 또 객관적인 지식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베의 저런 행동, 정치적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 저렇게 하는 것을 스스로 걱정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 아닐까 생각을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앵커]

그게 우선 선결조건이겠죠.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네. 그게 제가 서둘러서 2년 만에 일본 답사기를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

[앵커]

네, 알겠습니다. 문화재청장이셨는데요. 요즘 숭례문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재직 당시에 불에 탔고.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참 국민들에게 할 말도 없고 안쓰러운데, 전에도 한 번 여기서 말씀드렸는데 시스템의 문제를 먼저 손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마도에서 해저 유물 나오는 것도 탐사선 인양선도 없어서 해양경찰청 배 빌려 가지고 UDT가 발굴하던 것을 우리 배를 가지고 우리가 탐사하고 우리 큐레이터가 30m까지 들어가서 건지거든요. 그러니까 이 성과가 계속해서 나오잖아요. IMF 때 되도록이면 정부에서 하는 일을 민간에게 아웃소싱을 다 시켰습니다. 경제적인 문제였죠. 그래서 기술축적이 안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지경보수단, 지경건설단이 문화재청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런 큰일이 있었을 때 문화재청에서 최고 가는 인력들을 끌어서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많이 만드는데…]

[앵커]

문화재야말로 그 보호를 공적영역에서 해 줘야 되는데 사적영역으로 넘긴 바람에 이런 일이 생겼다. 사실 제가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취재를 해 왔습니다.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첨성대 문제도 그렇고 그래서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취재한 바로는 정말 이건 이렇게까지 허술한가 싶을 정도로, 그게 바로 그런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시는 모양이죠?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시스템이고 제가 청장 시절에 이 탐사선과 인양선을 만들기 위해서 참 요즘에 행자부하고 기획재정부에 가서 호소를 하는데, 한 부처의 예산이 올라갈 때는 전년 대비 몇 프로 아닙니까? 이건 전년 대비로 하는 게 아니라 없었던 걸 만들어야 되는데, 또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하면 인원을 축소를 해야지 들지는 못하고. 이제 우리가 국민소득 만 불도 안 되던 시절 또는 500불 시절에 만들었던 사골을 2만 불 넘어서도 하려니까 적용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저희가 문화재 관련으로 이러이러한 점이 문제다라고 보도할 때마다, 문화재청에서는 그래도 바로 다음 날 바로바로 이렇게 수정하겠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좀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될 문제인 같고 또 바로 말씀하신 그 문제라면 좀 더 근본적으로 수술이 있어야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시간을 오래는 못 드릴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만 드리겠습니다. 서울시에서는 서울문화유산답사기 써달라고 하던데 쓰실 생각이십니까?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지금 어차피 내 고향이니까 쓰기는 하겠지만, 또 현재로 봐서는 해야 되지만, 남한강을 따라서 내려오는 답사기를 써오다가 일본으로 갔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충주, 단양 왔거든요. 서울까지 올려면 한참 걸리겠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기다려 보겠습니다. 유홍준 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유홍준 석좌교수/명지대·전 문화재청장 : 네,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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