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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11회] 꽃다운 청춘 앗아간 '총체적 부실'

입력 2014-04-2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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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청자 여러분, 탐사플러스의 전진배입니다. 지난 16일 이후 대한민국에선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모두가 깊은 우울과 죄책감에 빠져있습니다. 착하고, 곱고, 예쁜 학생들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17년의 짧은 삶을 마쳐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한껏 멋을 내고 찍은 학생증 사진은 지금 영정 액자 속으로 들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지, 탐사플러스가 추적해 봤습니다.

[기자]

체육관 한쪽 벽면이 꽃으로 채워졌습니다. 국화 사이사이로 앳되고 예쁜, 우리 아이들 얼굴이 빼곡합니다. 2주전만 해도 평생 추억으로 남을 수학여행 준비에 들떠 재잘거리던 친구들. 이제는 조용히, 통곡하는 어른들을 바라봅니다.

이 아이들을 바다가 앗아간 건 지난 16일이었습니다.

지난 16일 오전 긴급 뉴스가 방송됩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400명 넘는 승객을 태운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고가 어느 정도 심각한 건지 온 국민이 걱정하고 있을 때 정부 당국에서는 대부분이 구조됐다는 내용의 발표가 잇따라 내놓습니다.

[이경옥/안전행정부 2차관 : 현재 구조자는 368명입니다. 다시 신원 확인해서 정확한 인원에 대해서는 다시 발표하겠습니다.]

특히 단원고 학생들은 전원이 구조됐다는 소식도 전달됩니다.

재난 대응의 책임자인 강병구 안전행정부 장관은 경찰 간부 졸업식에 참석해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축사를 합니다.

[강병규/안전행정부 장관 : 정부는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 중심에서 국민중심으로 (전환)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정부 당국이 이렇게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경보음을 낸 건 방송이었습니다.

[허웅/구조된 세월호 승객 : (해경이) 장비 얼마나 투입했다고 그 많은 장비를 투입했다고 그럽니까? (10시 30분 경에 선박 34척이 투입됐다고 했는데, 현장엔 없습니까?) 어선들이 많이 왔지, 헬기 2대 하고요. 그 구조 시간이 있잖아요. 사고가 나가지고 나서 40분 이상 흘렀어요.]

[박용운/구조된 세월호 승객 : (해경이) 너무 늑장을 부리다보니까 한 시간만에 오니까 배는 다 기울고 이미 절반 넘어간 다음에 가서 구조하면 구조가 되겠어요? 다 죽지.]

세월호를 탈출한 승객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배 안에 수백 명이 남아있다는 심각한 내용을 전달한 겁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구조됐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며 고함을 칩니다.

[허웅/구조된 세월호 승객 : 빨리와서 구해야 돼요. 학생들 다 죽었어요. 다 죽는다니까요.]

이들의 증언이 하나둘씩 사실로 드러나자 분위기가 급격히 변해갑니다.

[단원고 교장 : 학부모 : 단원고는 전원 구조됐다는 얘기만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확인되는대로 저희가 알려드리겠습니다. 학생들이 약간 타박상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큰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좀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사고가 몇시에 났어요?) 10시에 좀 넘어서 저희가... (9시에 문자가 왔어 아들한테. 배가 기울고 있다고.) 왜 똑바로 말 안 해줘, 똑바로. 지금 구조가 아니잖아. 구조 중이지, 전원 구조가 아니잖아.]

정부가 발표한 구조자 숫자는 1시간만에 뚝 떨어졌습니다.

[이경옥/안전행정부 2차관 : 구조자 164명, 사망이 2명, 실종이 294명으로 구조인원이 368명에서 164명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중복계산된 것으로...]

선박 내부에서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통로와 창문, 난간. 이미 이 모든 것들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였습니다. 1분, 1초에 수백 명의 목숨이 걸린 순간들. 해경은 뭘 하고 있던 걸까. 하나씩 드러나는 사실은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사고 당시 해경은 세월호 안에 있던 단원고 학생으로부터 최초 신고를 받았습니다.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

전남 소방본부 119 상황실을 통해 학생과 연결된 목포해양경찰은 배의 위치부터 물었습니다. 경도와 위도를 말하라는 겁니다.

침몰하는 배에 갇힌 탑승객, 그것도 고등학생이 배의 위도와 경도를 알고 있을리 없었습니다.

당황한 학생이 '네?'를 연발하자 보다 못한 119 관계자가 이 학생은 탑승객이라고 일러줍니다.

하지만 해경은 계속해서 GPS를 거론하며 위치만 묻습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배 이름을 물은 건 1분 30초가 지난 뒤였습니다. 해경은 신고자를 선장으로 오인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목포해양경찰서 관계자 : 우리는 선장 기준으로... 선장들은 다 알거든요. GPS 보면서 위도, 경도 딱 말해주거든요.]

이렇게 들어온 신고마저도 사고 해역을 관리하는 관제센터, 진도 VTS에 전달되기까지는 1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목포해양경찰서 관계자 : 진도VTS에 문서로 최초로 간 건 9시 5분이에요. 문서는 작성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김형준/진도VTS 센터장 : (최초로 사고 상황 접수받은 시간은?) 사고 접수는 9시 6분에 받았습니다.]

역시 목포해경이 담당하는 진도VTS는 그렇게 9시 7분이 되어서야 세월호를 호출합니다.

[진도VTS-세월호 교신(사고 당일 9시 7분) : (귀선 지금 침몰 중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해경 빨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빨리 구해달라. 그 말을 들은 진도VTS는 주변 어선에 연락을 합니다.

[진도VTS-세월호 교신(사고 당일 9시 7분) : (000호는) 그쪽으로 가셔서 구조 부탁드리겠습니다.]

9시 14분,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세월호의 말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지시가 없습니다. 급기야 9시 25분 탈출은 선장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말합니다.

[진도VTS-세월호 교신(사고 당일 9시 25분) : 세월호 인명 탈출은 선장님이 직접 판단하셔서 인명 탈출 시키세요.]

9시 35분이 되어서야 내려진 대피 지시.

[진도VTS-세월호 교신(사고 당일 9시 35분) : 지금 탑재돼있는 구명정, 라이프링 전부 다 투하하셔서...]

교신은 3분 뒤 끊겼습니다.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는 배를 탈출했지만,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 대부분은 이들의 지시한대로 객실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아예 단원고 학생을 직접 거론하며 지시를 한 것입니다. 순진한 우리 아이들은 이 말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겁이 나 형에게 도움을 청한 동생도,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함께 나눈 대화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선실에 대기하라는 지시를 굳게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승객들이 선실에서 선원들의 말만 믿고 기다리는 동안, 선장 일행은 텅빈 갑판을 탈출합니다. 선박직 15명은 모두 무사했습니다. 해경 헬기는 최초 신고가 이뤄진 지 45분이 지난 9시 40분 처음으로 2대가 도착했습니다. 비슷한 시각 구명정이 도착했지만 세월호는 이미 60도 넘게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배 안엔 갇힌 수백명을 창문이라도 깨부수고 구해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해경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미 배가 기울어 수중 특공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게 해경의 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목포항에 대기하고 있던 서해해양경찰청 특공대는 10시 10분이 되어서야 출발합니다. 이들이 세월호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

배는 침몰됐고, 조류는 거세진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특공대원들은 선체 진입 시도 16분만에 철수합니다. 단 한 명의 승객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경은 사고 직후의 '골든 타임'을 놓쳐버린겁니다.

[장동원/단원고 생존자 학부모 대표 : 초기 대응만 잘 했어도 이런 피해는 없었을 겁니다. 재난관리시스템이 이렇게 허술할 수 있습니까. 정부의 늑장 대응에 온 국민이 규탄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이탈리아에서도 대형 여객선이 좌초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경의 대처는 극과 극이었습니다. 당시 이탈라이라 해안경비대장과 선장 사이에 오간 교신 내용입니다.

[해안경비대장 : 승객이 얼마나 됩니까? 아이나 여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를 나한테 보고하세요.]

[선장 : 저도 유람선에 오르고 싶지만 다른 구명정이 멈춰서 표류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해안경비대장 : 배로 가라고! 당신을 배를 버렸다고 선언한 겁니다. 이제 내가 책임자입니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 배로 돌아가!]

선장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우리 해경과 확연히 비교됩니다.

[진도VTS : 선장이 탈출여부는 판단하시고]

도대체 왜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한 것일까? 이 큰 배가 이처럼 어이 없이 침몰했을까? 국민들은 이런 어이 없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에서 일했던 항해사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합니다.

세월호가 사고 상황을 알리는 과정에서 공용인 16번 채널을 쓰지 않은 이유도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전 항해사는 고질적인 관행이 반드시 뿌리뽑혀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전직 세월호 항해사는 그동안 의혹 수준으로 남았던 세월호 선내 문제도 폭로했습니다.

모든 선박은 배가 급하게 움직이더라도 휘청이지 않도록 화물을 앞뒤 좌우로 결박해야하지만 세월호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그의 증언은 충격을 던졌습니다. 그의 주장이 모두 진실인지는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통해 규명되겠지만, 고귀한 우리 아들 딸들의 생명을 앗아간 이유가 허술한 선박 관리 때문이라는 사실은 하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사고가 일어난 이후 정부의 대응은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습니다.

사고 당일 자정을 넘긴 시간, 사고 지점과 10여 km 떨어진 팽목항. 가족들은 잠수사를 투입해 승객들을 구해달라고 거듭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실종자 가족-이용욱 해경 정보수사국장(4월16일 자정) : 아까 저녁 9시에 한 얘기랑 똑같아요 지금. 말 못해요? 우리가 누구한테 얘기해야 (잠수사들이) 투입이 되는 겁니까, 지금. (투입하라고 제가 얘기 했습니다...) 투입을 안 했잖아요. 아까 뭐라고 했어요 나한테. 아까 9시에도 똑같이 말했어요, 그렇게.]

해경 간부는 별 대답을 못합니다.

[실종자 가족 : 민간 잠수사를 투입해서라도 구조를 해야죠. 그런데 해경은 왜 막습니까. 우리가 돈을 줘서라도 구하겠다는데.]

[실종자 가족 : 책임을 갖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관계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상황실도 꾸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 누구 하나 책임지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지시를 내려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차가운 물 속에서 소리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20일 새벽 진도 실내 체육관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실종자 10명의 시신이 한꺼번에 발견됐다는 비보였습니다. 가족들은 밖으로 몰려나왔습니다.

더 이상 정부의 구조 작업을 믿을 수 없다. 그러니 이제 대통령과 얘기하자며 청와대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막아선 경찰 병력. 몸 싸움까지 벌어지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범정부 중앙사고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왔습니다.

[단원고 실종자 학부모 : 왜 우리가 국민들이, 부모들이 가는 길을 왜 막습니까.]

[단원고 실종자 학부모 : (세월호에서) 두 시간에 걸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경찰이 안 왔습니다. 우리가 잠깐 이렇게 움직이는데 1분만에 경찰이 떠버렸어요. 이거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애들이 수백명이 죽어가는데도 경찰이 안 떴는데도...]

결국 정 총리는 자리를 피합니다.

[정홍원/국무총리 : 그 얘기를 가지고 자꾸 하실 일이 아니라...]

정 총리가 탄 차량은 한참동안 학부모들에게 둘러싸여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단원고 실종자 학부모 : 아니, 우리 자식 살려달라는 대안도 4일 동안 안 해주고, 진짜 본인 생각만 하는 거 아닙니까. 대체 뭐하러 온 거냐고. 여기 온 이유가 뭐냐고.]

수중 구조 활동도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사고 직후 팽목항엔 전국 각지에 있던 민간 잠수사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이들 중엔 15년 안팎의 경력을 지닌 베테랑 잠수사들도 있었습니다. 참았던 불만이 폭발합니다.

[김명기/UDT 동지회 간사 : 바지선까지 자비로 준비해왔고, 투입 요청해씨만 (해경은) 연락주겠다고만 했고, 지금까지 계속 (투입을) 거부하는 상황입니다.]

[황대영/한국수중환경협회장 : 초기부터 시작된 게 오늘까지 혼서늘 빚어온 것에 대해 우리 민간 다이버들이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맞서 해경측이 민간 잠수사들의 문제를 폭로합니다.

[고명석/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 : 5분도 안돼 나옵니다. 물에도 안들어가고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도 있다. 민간잠수사들의 구조실적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고 해역 투입을 기다리던 200여명의 민간 잠수사 대부분이 이제 팽목항을 떠났습니다. 엄청난 참사의 책임을 묻는 절차도 시작됐습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를 침몰시킨 뒤 승객들을 배에 남겨두고 탈출한 선박직 전원을 형사처벌 대상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청해진 해운에도 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사고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총체적 부실의 책임을 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홍원/국무총리 :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인 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고 사죄드리는 길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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