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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11회] "너무 미안해…영원히 잊지 않을게"

입력 2014-04-2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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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사람들이 빚어낸 참사의 희생자들은 지금 끝 모를 어둠 속에 갇혀 있습니다. 날개를 한껏 펴보지도 못하고 삶의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변명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간직하려는 마음이 경기도 안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퍼지고 있습니다.

[기자]

안산 합동분향소에 희생된 학생들의 위패가 모셔졌습니다. 지난 23일 분향소가 마련된 이후 매일같이 수 만명의 조문객이 이어집니다. 앳된 얼굴의 영정사진과 위패 아래 국화꽃이 쌓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낯선 얼굴도 많이 보입니다.

분향소 앞 도로에는 아직도 배 안에 있을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는 노란 리본이 달렸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쓴, 살아 돌아오라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사고가 난 4월 16일 이후 휴교에 들어갔던 안산 단원고가 4월 24일부터 등교 재개에 들어갔습니다. 등교 재개를 하루 앞둔 단원고의 모습입니다. 교문에는 보시는 것처럼 수백장의 메세지가 붙어 있습니다. 단원고의 선후배 학생들, 그리고 안산 시민들이 붙여 놓은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메시지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시민들이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메세지들을 붙이고 있는데요. '기적은 일어날거야' , '어서 빨리' , '힘내세요' 이런 메세지들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안타깝게도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단원고 학생들을 애도하는 메세지와 국화꽃이 놓여져 있습니다.

학교 앞 문구점과 세탁소에도 노란 리본 물결은 계속됩니다. 해가 져도 안산 단원고에는 시민들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퇴근 길 학교 앞을 찾은 한 남성. 두 손을 꼭 쥔 그 기도가 진도 먼 바다까지 나아갑니다.

지난 4월 19일 실종 나흘째. 김중열 씨는 시연이가 꼭 살아 돌아 올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김중열/고 김시연 아버지 : 저희는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신 한 구가 나올 때 까지라도 저희는 항상 기다리고 노력하고...그럴 겁니다. 시연아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금방 갈게.]

애간장이 끊어질 듯한 긴 긴 기다림.

그리고 시연이는 돌아왔습니다.

실종 일주일 만에 시연이는 차디찬 바다에서 부모 품으로 왔습니다. 평소 붙임성이 좋고 나서기를 좋아하던 시연이에겐 늘 친구가 많았습니다.

[김중열/고 김시연 아버지 : 모든 일에 친구들과 함께 하려는 그런 성향이 강했었고 여자 아이였어도 의리가 있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밝기만하던 시연이는 얼마전부터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김중열/고 김시연 아버지 : 2학년 들어서 진로쪽으로 고민을 시작하면서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에 대해서 고민에 빠졌었나 보더라고요.]

일을 핑계로 딸과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게 한으로 남습니다.

[김중열/고 김시연 아버지 : 애 엄마한테 전화가 온 게 9시 45분 정도. 그리고 저한테 전화가 온 것은 55분... 그 전화를 못 받아서 안타깝습니다. 만약에라도 제가 그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됐든 간에 무조건 바깥으로 나와서 바다로 뛰어들어라, 그런 이야기를 해 줬을 거고...]

아직도 그는 시연이가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김중열/고 김시연 아버지 : 비행기 같은 경우 사고가 나서 떨어질 경우에는 대책이 없고 배같은 경우 구명조끼만 입고 바다로 뛰어들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농담 비슷하게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거든요.]

며칠 뒤, 발인을 마친 중열 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온통 시연이의 모습이 남아있는 집에서 가족들은 다시 힘든 일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중열/고 김시연 아버지 : 식사 때나 그럴 때 한번씩 더 돌아보게 되고 아직까지는 실감이 난다거나 현실적으로 느껴지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어린 시연이의 동생이 잘 견뎌줄지도 걱정입니다.

[김중열/고 김시연 아버지 : 맨날 다투고 그래도 자기가 도움 받을 거 있으면 찾게 되고 그러던 언니였는데 아직까지는 실감이 안날 것 같아요.]

시연이는 엄마와 단짝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윤경희/고 김시연 어머니 : 머리하러 갈 때도 친구들이랑 가잖아요. 쟤는 무조건 엄마랑. 저랑 같이 이대도 가고 대학로 가서 뮤지컬도 보고...항상 같이..]

시연이와의 마지막 통화가 아직도 경희 씨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윤경희/고 김시연 어머니 : 아빠한테 9시 55분에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빠가 못 받았고 제가 10시에 또 받았어요.]

[윤경희/고 김시연 어머니 : (몇마디 주고 받았나요?) 많이 했어요. 지금 불이 나서 불덩어리가 발에 떨어졌다 화상을 입어 가지고 아프다. 무서워 죽겠다면서 짜증을 냈어요. 저한테. '시연아 조금만 참아 구조될 수 있어' 하니까 엄마가 여기 어떻게 올거냐고 이러면서 짜증내고 했었거든요... (시신이 나왔을 때) 전화기를 들고 있더라고요. 애기가 나왔는데...(전화기를 들고 있었어요?) 네..]

전화기를 손에 꼭 쥐고 나온 시연이.

마지막까지 엄마, 아빠에게 전화가 오길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윤경희/고 김시연 어머니 : 하나도 (훼손)안됐어요. 자고 있는 것 같았고. 손하고 발이 너무 차가워서 만져주니까 진짜 손잡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거기서 전화기만 의지하고 있었을 거예요.]

작은 방은 친구들과 시연이의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습니다.

[김중열/고 김시연 아버지 : 일곱살 때부터 갖고 있던 인형이에요. 다 헤지고 그랬는데도 이걸 못 버리고 해 가지고.]

[윤경희/고 김시연 어머니 : 이건 지금 방금 놔두고 간거예요. 망고 먹다가 생각나서 갖고 왔다고. 중학교 때 친구들인데(시연이 대신 딸 노릇 하려고 하겠네요?) 그렇게 얘기해요. 이제부터 엄마라고 부른다고. (시연이는 어디 있어요?) 우리 시연이. 튀는 아이. 시연이는 항상 튀어요.]

친구들을 보면서 경희 씨는 시연이를 다시 만납니다.

[윤경희/고 김시연 어머니 : 진도에 왔을 때도 애들이 돈을 걷어서 구호품을 잔뜩 사왔더라고요. 슬리퍼랑 속옷이랑. 첫날, 이모 장례비 나올까봐 그 아이 엄마가 그러는데 밥도 안먹고 음료수도 안먹었대요. (애들이?) 예 애들이.]

시연이의 친구들은 마지막까지 경희 씨에게 가장 큰 힘이 돼 줬습니다.

[윤경희/고 김시연 어머니 : '내일은 오지마'했는데 한 명이 왔더라고요. '왜 왔냐'고 하니까 '이모 시연이가 마지막으로 사주는 밥인데 제가 그걸 못 먹었어요. 오늘 것만 먹고 얼른 가서 공부 할게요' 하더라고요.]

시연이의 사진과 벽에 친구들이 쓴 낙서. 곳곳에 이번 사고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 았습니다. 수학여행 직전, 시연이의 방에 모여 함께 설레하던 7명 단짝 친구들. 불행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윤경희/고 김시연 어머니 : 도원인가 도현인가 둘 중에 한 명은 살았다고 들었어요. 나머지 애들은 지금 다 못 돌아오고.]

시연이의 유치원 사진까지 악몽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윤경희/고 김시연 어머니 : 지금 이 자리에 3명이 다 사망한 거예요. 아니 4명. 동엽이, 정슬이하고, 예지가 어디갔지? 시연이하고.]

중열씨는 하루 대부분 시간을 딸의 방에서 보냅니다.

[김중열/고 김시연 아버지 : 혹시 꿈에라도 볼 수 있을까 해가지고. 모든 순간이 다 아쉽죠. 제가 앞으로 생활하면서 모든 순간에 생각이 날 것 같아요.]

세월호에는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 외에 108명의 일반 승객도 탔습니다. 이들 상당수가 또 사망하거나 아직 실종상태입니다. 특히 부모와 형제를 잃고 거친 세상에 홀로 남은 아이들의 얘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5살 권모 양은 이번 사고로 엄마, 아빠, 한 살 터울 오빠와 헤어졌습니다. 마지막까지 권양을 지켰던 엄마는 시신이 돼 돌아왔고 구명조끼를 양보했다는 오빠와 아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6살 요셉이는 이제부터 외삼촌 지대만 씨에게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을 세월호에서 잃었습니다.

[지대만/조요셉 삼촌 : 사발면을 먹고 그 찌꺼기를 버리러 나간 사이에 둘째가 아빠를 따라 나간 거예요. 근데 엄마는 당연히 아빠랑 같이 들어오겠거니 했는데 둘째가 안 들어왔어요. 그 사이에 사고가 났고요.]

어린 요셉이는 아직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지대만/조요셉 삼촌 : 나처럼 배에서 나오면 또 만나게 될텐데 왜 배에서 안 나오냐고. 배에서 나오게 해달라고 그러고 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한 푼 두 푼 모아 처음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나섰다가 참변을 당한 겁니다.

[지대만/조요셉 삼촌 : 네식구가 2인분 칼국수를 먹은 거라든지 아침에 사발면을 사고 반찬을 싸간 거라든 지 이런 것들도 참 마음이 아파요.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파요. 열심히 살려고 아등바등 힘들게 애썼는데 한순간에..]

대만 씨는 요셉이의 아빠가 마지막 순간에도 남을 먼저 생각한 의인이었다고 얘기합니다.

[지대만/조요셉 삼촌 : (구명조끼가) 모자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사람들 다 입고 있는데 혼자 안 입고 있어요. 그대로 받아서 지금 현재 이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한테 넘어가는 듯한 그런 장면이 나와요.]

대만 씨는 요셉이가 커서 이 나라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더욱 착하고 바르게 살다간 엄마, 아빠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지대만/조요셉 삼촌 : 마지막 끝까지 나 혼자 보다는 가족들을 위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거 꼭 명심하고 바르고 착하고 그렇게 자라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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