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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적자 본다"는 데도 손 못 떼는 석탄, 왜?

입력 2020-07-06 09:5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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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3)

불과 며칠 전이죠, 지난달 30일 한국전력공사가 임시 이사회를 열었습니다. 계속해서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던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 사업 투자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논의를 해보는 자리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적자 본다"는 데도 손 못 떼는 석탄, 왜?

어떤 사업일까요. 인도네시아 자와('자바'라고도 알려져 있죠) 섬에 2000MW급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사업입니다. 총 사업비는 35억 달러로 우리 돈 약 4조 2천억 원에 달합니다. 한전은 여기에 5100만 달러를 투자하고 2억 5천만 달러를 보증할 계획입니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우리 공적 금융기관의 돈도 대출 형식으로 약 14억 달러가 들어가죠. 시공사는 최근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 받게 된 두산중공업입니다.

이 같은 사업을, 투자를 진행하려면 빠지지 않는 절차가 있습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듣는 '예타', 바로 예비타당성 조사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투자계획이 883만 달러, 우리 돈 약 106억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한전은 포기를 몰랐습니다. 재심의를 받았고, 그 결과는 또 다시 '마이너스'였습니다. 발전소를 운영하는 25년 동안 이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과 나가는 비용을 따져봤을 때, 708만 달러, 약 85억의 손실을 입는다는 겁니다. 열심히 서류 속 숫자와 머릿속 계획을 바꿔가며 노력한 결과, 손실액이 소폭 줄어들었지만 어쨌든 마이너스라는 결론이었습니다.

결국 지난달 26일, 정기 이사회에선 '의결 보류' 결정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한전은 포기를 몰랐습니다.

2020년 6월 30일 아침, 한전은 임시 이사회를 열어 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와 석탄발전소 투자 계획은 이 임시 이사회의 단일 안건이었습니다. 이 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정기 이사회 나흘만에 임시 이사회를 열고 통과시킨 겁니다.

거듭된 예타 조사 결과에도 금전적 손실이 예고됐고,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국제사회에선 한전의 '석탄 사랑'으로 우리나라를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고 있죠.

그럼에도 '통과'될 수 있었던 근거는 단 하나. 계층화분석법(AHP) 상의 종합평점이 0.549를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사업의 Go나 Stop을 판단하는 데엔 그저 수익성만이 아닌 공공성이나 기타 다른 부분들도 따져봐야 하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종합평점인데, 재심의를 거친 결과 기준치(0.5)를 0.049 넘은 겁니다. 금전적으로도 손해인데 대체 공공성 측면에선 어떤 계산법을 거쳐 양(+)의 결과가 나왔을지는 아직 정확한 내용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임시 이사회를 하루 앞둔 29일, 정치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었습니다. 국회에서 열린 '기후악당에서 기후선도국가로, 그린뉴딜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강화' 정책간담회가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적금융기관이 막대한 자금을 해외 석탄화력에 지원하고 있다"며 "그린뉴딜 정책을 위해선 해외 석탄화력의 수출문제를 재논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은 "전 세계에 '기후 악당'이라고 불리는 나라는 호주, 뉴질랜드, 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딱 네 나라"라며 "OECD에 들어간 나라 치고 악당이란 소리를 듣는 것은 불명예스럽다"고도 지적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간담회 직후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지원을 수출하고 있는 것도 '기후 악당'으로 지목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보다 앞선 25일, 2030 청년 세대가 주축인 청년기후긴급행동은 한전 이사회의 이사들에게 해외 석탄투자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의결 보류' 결정이 내려졌던 정기 이사회 바로 전날의 일입니다. 서한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적자 본다"는 데도 손 못 떼는 석탄, 왜? 청년들은 직접 한전 본사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사진: 청년기후긴급행동)

000 이사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기후위기에 맞서는 대한민국의 20대, 30대 청년들입니다. 6월 26일 한국전력 이사회에서 우리 모두의 삶을 위협하는 석탄투자에 반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석탄발전은 가장 큰 온실가스 배출원입니다. 수 많은 과학적 연구가 기후위기로 인해 인류가 전례 없는 재난과 생존의 위협을 겪게 될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가장 보수적인 데이터를 내놓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조차 생태계 붕괴 마지노선을 산업화 대비 1.5℃ 온도상승으로 추정했고, 현재 전 세계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추세에 따르면 1.5℃까지 7년 6개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몇 백년 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사님도 겪게 될 기후위기입니다. 이사님의 자녀, 손자, 손녀들, 우리와 같은 청년들은 위기를 넘어 미래가 없는 파국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집이 불타고 있는데, 저탄소 기술적용과 환경보호활동, 그리고 '조건을 만족시킬 때만 사업을 추진'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해외 석탄투자 결정은 조금이나마 나은 미래를 꿈꾸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미래를 재로 태워버릴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겪어야 할 일상의 붕괴, 불안, 비용을 모두 떠넘기고 있는 석탄투자자들에 크나큰 분노와 절망을 느낍니다. 석탄발전소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국내 청소년과 청년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가는 중입니다. 외신에서도 한전의 해외 석탄 투자 결정이 비판받고 있습니다. 해외 투자사들은 석탄이 좌초자산이라 강력히 경고하고, 해당 지역 공동체는 건강 피해 우려로 사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6일의 결정으로 건설될 석탄발전소가 내뿜을 온실가스 배출량을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투자를 멈춰주십시오. 해외석탄투자에 반대표를 던져 주십시오. 우리 모두에게 기후재난이 닥쳤을 때, 세상은 이사님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셨는지 기억할 것입니다. 26일 이사회에서 찬성표를 던지신다면, 대한민국의 마지막 석탄투자를 승인해준 사람으로 영원히 남게 될 겁니다. 그리고, 청년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짓밟은 이 결정을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투자가 결정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습니다. 이사회의 선택이 우리에게 절망과 분노가 되지 않게 투자를 재고하여 주십시오.

 
[박상욱의 기후 1.5] "적자 본다"는 데도 손 못 떼는 석탄, 왜? 청년들은 한전의 이사회를 앞두고 이사진들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사진: 청년기후긴급행동)

이들은 전체 이사 13명 중 10명에게 요구사항과 서한을 전달했고, 이 중 4명에게서 답신을 받았습니다.

긴급행동에 따르면, 한전 본사에선 실무자가 면담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해외 석탄사업은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해외 석탄발전 투자를 철회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환경단체들도 한전의 투자 중단 결정을 촉구했습니다. 임시 이사회가 열리기 바로 전날인 지난달 29일, 녹색연합은 "예타 조사에서 수익성이 마이너스로 평가되면서 사업성 부족에 해당하는 '그레이존(회색 영역)' 사업으로 분류된 바 있다"며 "해외 석탄 투자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해외 석탄발전 투자에 대해 한전은 "해외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수익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며 "국내 신재생 사업 확대 등을 통해 환경친화적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해외엔 '수익 창출'만 따져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국내에선 친환경 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온실가스가 국경선을 넘지 못 한다는 전제 조건이 없다면, 이 같은 입장은 자가당착, 어불성설일 뿐입니다.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결정은 '사업 추진'으로 정해졌고, 자연스레 곳곳에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한국 정부가 그린뉴딜을 표방하면서 동시에 자국 기업이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하는 석탄발전 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이중적 행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한전이 내세우는 '초초임계 석탄화력발전'이라는 최신 기술도 "기존의 배출량 대비 10~15% 정도만 줄어들 뿐"이라며 "여전히 심각한 오염물질을 뿜어낸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이보다 더 강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기후 재난에 맞닥뜨린 수많은 이들의 삶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결정이다", "한전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행위이다", "공기업의 이런 잘못된 행보에도 수수방관하는 정부는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린뉴딜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진정성마저 의심케 한다"… 녹색연합은 한전의 결정 직후, 강한 어조의 규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전은 왜 이렇게 사업을 밀어붙였을까요.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공적 금융기관이 해외 석탄사업에 제공한 '공적 자금'만도 11조원이 넘습니다. 세계 석탄화력계의 '큰 손'인 셈이죠. 투자 성과는 어떨까요. "해외 사업의 최우선 목표"라며 환경이고 뭐고 수익만 추구한다고 했으니… 한 5~10년 앞을 내다보지 못 한 투자운용으로 결국 발을 빼고 싶어도 못 빼는 상황에 빠진 것만은 아니길 바랍니다.

한전은 지난해 호주 바이롱 석탄광산에 투자한 돈 중 5135억원을 손실로 처리했습니다. 이 광산에서 석탄을 캐내 돈을 벌 생각이었는데, 호주 정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겁니다. 결국, 석탄 한 톨 캐내지 못하고 인수비용은 모두 날아가버린 셈이죠. 한전이 손실 처리한 금액보다 실제 인수 비용은 훨씬 더 컸습니다만, 회계의 마법(?)으로 손실액은 다행히 인수 비용보다 3천억원 가량 줄어들었습니다.

금융만 제공한 것도 아닙니다. 기업으로서도 '큰 손'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자산운용사 '블랙록', 이 회사에 투자 손실을 입힌 '친 화석연료 기업 리스트' 21개 기업엔 한국 기업이 딱 두 곳 있었습니다. 한전과 두산입니다. 투자 큰 손이자 손실 큰 손, 2관왕입니다.

인도네시아 자와 석탄화력발전 사업은 일종의 '한국 석탄 빌런'이란 노래의 프렐류드, 전주곡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이사회의 안건에선 빠졌습니다만 베트남 붕앙 석탄화력발전소 2호기 사업, 한전은 여전히 손에서 이 카드를 완전히 놔버리진 않았습니다. 이 사업은 KDI의 예타 조사 결과 950억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 사업의 적자 예상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액수입니다. 인도네시아 사업 건을 '전주곡'이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공기업이나 공적 금융기관의 손실만 우려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상 투자자(한전, 공적 금융기관)가 돈을 잃더라도 사업이 진행되면 공사를 맡은 기업(두산중공업)은 돈을 벌기 마련입니다. 이 사업을 통해 두산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약 1조 6천억원. 그런데, 이에 대해 "터무니 없이 낮은 금액으로 저가 수주에 나서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옵니다.

기후솔루션의 윤세종 변호사는 "KDI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이 너무 낮은 가격으로 입찰에 응했기 때문에 실제 공사 진행하면 6천억원 가량의 추가 공사비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며 "계약 특성상 추가 공사비는 시공사가 부담하도록 되어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정부는 두산에 수조원의 혈세를 지원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이미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는 두산 입장에서도 득보다 실이 될 가능성이 큰 사업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석탄화력계의 '큰 손'이라는 점은 참으로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 덕(?)에 한국은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는 별명을 여전히 버리지 못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대통령이 직접 '그린 뉴딜'을 언급하면서 국제사회가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런 모순적인 행보가 우리나라의 '국격'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바로잡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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