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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포항 현장에서 본 '액상화 현상'

입력 2017-11-29 11:37 수정 2017-11-29 11:56

논밭에서 보이던 액상화 의심 현상 #어환희 기자
뉴스의 숨은 뒷얘기! JTBC 취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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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에서 보이던 액상화 의심 현상 #어환희 기자
뉴스의 숨은 뒷얘기! JTBC 취재수첩


[취재수첩] 포항 현장에서 본 '액상화 현상'



1. "물이 송송송 솟아오르는 게 있더라고요." - 논밭에서 보이던 액상화 의심 현상



흙이 담긴 상자를 마치 지진이 온 것처럼 흔들어봤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푸석했던 흙이 질척해 집니다.

그리고 어느새 위쪽에 자리 잡은 물에서는 뽀글뽀글 기포까지 깁니다.

액상화 현상이 일어났다고 얘기를 듣고 간 경북 포항시 흥해읍 망천리 논밭에 있던 흙입니다.

이 곳에서 만난 주민은 물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신기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개념인 액상화 의심 현상은 지진으로 솟아나온 물과 섞여 땅이 물렁해 지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15일 규모 5.4의 포항 지진이 발생한 뒤, 국내에서는 최초로 이런 액상화 의심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강한 지진으로 인해 땅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평소 흙 입자와 균형을 이루고 있던 물이 한 쪽으로 쏠리면서 흙 모래와 함께 밖으로 솟구치는 현상입니다.

지진 관측 이래 역대 두 번째로 강했던 이번 포항지진은 액상화 의심 현상이 특히 도드라졌습니다.

2. "장화 없이는 걸어 다닐 수도 없었어~" - 도심에서의 액상화 의심 현상

논밭이 아닌 도심에도 액상화 의심 현상이 발견됐다는 제보에 빌라, 공원, 놀이터 등지에도 가 봤습니다.

그런데 제보 받은 장소는 포항시 북구가 아닌, 진앙으로부터 거리가 있는 남구였습니다.


[취재수첩] 포항 현장에서 본 '액상화 현상'


오래된 빌라의 갈라진 바닥에는 액상화 현상의 핵심 증거라는 모래 분출구가 있었습니다.

물이 흐른 흔적도 있었습니다.

빌라 주변 차가 세워진 갓길에도, 인근 놀이터에서도 이러한 모래 분출구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남구 송도근린공원 내에서는 정부의 시추 작업 지점에서 30 걸음도 안 되는 곳에서 큰 모래 분출구들이 보였습니다.


[취재수첩] 포항 현장에서 본 '액상화 현상'


논밭과 다른 점이라면, 모래가 마치 백사장에 있는 양 하얗고 부드러웠다는 겁니다.

현장을 함께 동행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측 전문가는 해안에 인접한 퇴적층의 특성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액상화 현상은 강한 지진 외에도, 퇴적층(퇴적물의 입자 크기), 지하수 포화 정도 등 요소들의 영향도 받습니다.

25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만들어진, 신생대 제4기 지층에서 액상화 현상이 생기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 지층에서는 퇴적물들이 아직 돌로 굳지 않아 입자 사이에 물이 들어갈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천지개벽했지. 장화 없이는 걸어 다닐 수가 없었어. 옛날에는 뻘이라서 온갖 조개도 고기도 잡고 그랬지."

송도근린공원 주변 노인정에서 포항 송도동에만 71년 평생을 살았다는 박춘자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강물과 바닷물로 차 있었던 포항 송도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포항의 지층은 아직 암석화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단단한 화강암이 기반인 경주에서 작년 지진 때 액상화 의심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경주 지진 때 액상화로 추정되는 현상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 역시 경주 내에서 화강암 기반 지역이 아닌, 신생대 제4기 지층이 있는 지역에서 발견됐습니다.

3."그 물 올라오는 거? 다 무너지는 거 아냐, 진짜?" - 막연하지만 근거 있는 불안감

영포회타운에서 만난 횟집 이모님에게 액상화 현상이란 줄어든 매출보다도 더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액상화 현상으로 인해 물렁물렁해진 땅에 건물이 세워져 있다면 기울어지거나 붕괴할 위험이 높기 때문입니다.

"다 폭삭 무너져 버리면 어쩐다냐? 진짜 그렇게 위험해?"

사실 현장에서 같은 피해 지역을 본 전문가끼리도 '과장됐다'와 '위험하다'의 의견이 갈립니다.

과장 됐다는 측에서는, 액상화 현상 자체가 규모 5, 6 이상의 강한 지진에서만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또 여진이 계속 발생하지만, 본진을 능가하는, 강한 지진이 다시 오지 않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현재 액상화 현상이라고 보이는 정도도 건물의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닌 작은 규모라는 입장입니다.

액상화 현상은 지진이 발생한 그 순간에 나타나는 현상이어서 현재 흙 입자들과 물도 균형을 이뤄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화가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반면 위험하다는 측에서는, 내진 설계, 기초 공사 등에 취약한 우리 건물들의 현 주소를 강조합니다.

액상화 현상으로 붕괴 등 직접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2차 피해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합니다.

일반 건물은 약간 만 기울어져도 내부 하중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항 지진으로 안전성 문제가 제기된 필로티 구조의 건물들도 문제입니다.

액상화 위험 지역에서는 통상 지층 깊이까지 건물 기둥을 박는 기초 공사를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저층의 건물은 거의 말뚝 기초공사 하지 않는다고 우려합니다.

4. "눈에 보인다고 무조건 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판정 미룬 정부와 대안들

액상화 의심 현상에 대한 목소리가 커져갔지만, 정부는 판정을 미뤘습니다.

"액상화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액상화 현상이 확실하다고 전제하며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액상화 지수(LPI)를 도면화 한 액상화 지도는 그 중 하나입니다.

액상화 지수(LPI)는 지층의 깊이, 두께, 그리고 지질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지표인데, 액상화 현상에 따른 위험도를 나타냅니다.

액상화가 굉장히 많이 일어날 지역이 눈에 보이면 대비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일본 등 지진 피해가 많은 외국에서는 이 지도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액상화 지수를 참고로 기초공사를 강화하거나 지반을 개량하는 등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약 8일 동안 포항 내 10곳을 대상으로 시추 작업을 마쳤습니다.

확보한 지질 샘플과 시추 자료,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액상화 여부에 관한 결론을 이번 주 중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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