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소셜스토리] 판문점, 평화의 상징될까

입력 2018-04-26 13:35

널문리 주막마을에서 정상회담 개최지로
전 세계 눈과 귀 집중될 판문점의 역사
라이브, 스토리, 비하인드! JTBC 소셜스토리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널문리 주막마을에서 정상회담 개최지로
전 세계 눈과 귀 집중될 판문점의 역사
라이브, 스토리, 비하인드! JTBC 소셜스토리


내일(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게 될 판문점. 판문점은 한국전쟁 이후 양측의 갈등과 협력이 반복됐던 분단의 한복판입니다. 서울에서는 직선거리 52㎞, 평양에선 147㎞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널문리라는 지명의 평범한 농촌 주막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1951년 10월 휴전회담 장소로 선정되면서 지명도 한자식 표기인 '판문점(板門店)'으로 바뀌었습니다. 공식명칭은 '공동경비구역(JSA)'입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남한은 1965년 '자유의 집'을 북한은 1968년 '판문각'을 판문점 안에 세웠습니다.

남북이 세운 건물 사이, 군사분계선(MDL)위로는 3동의 푸른 단층 건물이 늘어서있습니다. 1953년 만들어진 조립식 건물입니다.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T1),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본회의실(T2), 군정위 소회의실(T3) 등입니다. T는 'Temporary(임시)'의 약자입니다. 건물을 세울 당시엔 분단과 정전이 반세기 넘게 지속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는 얘기입니다. 

1976년엔 판문점에서 미군장교 2명이 살해당하면서 한반도가 전쟁 직전 상태로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북한 초소를 가린 미루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장교를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일명 '도끼만행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판문점 내에는 높이 10cm·너비 50cm 군사분계선 경계석이 만들어집니다. 불과 165일 전인 지난해 11월에도 총격이 벌어졌습니다. 북한군 하전사 오청성이 판문점을 넘어 귀순하자 추격하던 북한군이 총격을 가한겁니다. 

늘 긴장만 있던 건 아닙니다. 판문점은 남북 화해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1971년 남북적십자 회담 예비접촉을 계기로 판문점 내 남북 직통전화가 개설됐고. 1998년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으로 갔습니다. 이를 계기로 금강산관광이 본격화되고 남북경협이 물꼬를 트기도 했습니다.

남북 분단의 역사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판문점. 이곳은 내일 또 다른 변곡점을 맞게 됩니다. 휴전회담부터 정상회담까지 이뤄진 판문점은 남북 갈등과 냉전을 끝내고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요.

※영상을 클릭하면 도끼만행사건, 소떼방북 등 판문점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앵커브리핑] '널문리…문이 다리가 되는 곳' 폭 4m에 얼룩진 분단의 상흔…판문점 T2~T3 사이 65년 [취재설명서] 55년간 켰다, 껐다…상호 비방 확성기, 완전히 끌 수 있을까 회담장 가구·그림에 새긴 의미…'경제 참모' 배석 안 해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