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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역사속의 명마·기마대 39.민족의 자긍심, 대한제국 기병대

입력 2011-12-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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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역사속의 명마·기마대 39.민족의 자긍심, 대한제국 기병대

한민족의 기마 전통은 멀리 단군조선부터 고구려·백제·신라가 싸우던 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를 지나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한민족의 기마 전통을 간직한 기마대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의 기마대를 끝으로 사실상 끝났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한민족의 기마 전통은 희미하게나마 이어졌고 그 자취는 조선의 뒤를 이은 대한제국의 기병대에 녹아 있었다. 대한제국의 기병대는 고종 32년인 1895년에 창설됐는데 이들은 참령이 주관했고 황제 친위대의 연대장의 지휘를 받았다.

서구(유럽열강과 일본 등)의 기마 전통이 들어온 시대에 이들로부터 한민족의 마문화 전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구식군대 출신 마병들을 주축으로 구성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신군대인 훈련대가 조직됐을 때 편입되지 못한 구식군대를 중심으로 1894년 13개 신설대(1대~13대)가 편성됐는데 이 가운데 3대가 기마병으로 편제 됐고 1985년 기병대로 개편됐다.

마병 3대는 2개대대로 장교 70명 병사 800명으로 구성됐는데 중앙군의 후비군에 속했다. 그러나 을미사변 이후 훈련대가 친위대로 개편되면서 이에 흡수됐고 1896년 친위대 안에 친위기병중대와 치중마병대가 생기면서 명맥을 이었다. 궁성호위를 목적으로 설립된 시위대가 1897년에 증강되자 기병대도 1900년(광무 4년) 황제를 근접 보호하는 시위대에 예속됐다.

여기에서 시위기병대대로 발전되면서 명실상부한 독립부대로서의 근대적 기병대로 개편됐다. 기병대대는 4개 중대로 1개 중대는 4개 소대로 편성되었다. 대한제국에 독립기병대대가 신설된 것은 민족의 자긍심과 황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편제를 보면 대대본부에 대대장 1명·부관 1명·향관 2명·정교 1명·부교 2명·참교 9명이 있었고, 중대에는 중대장 각 1명씩 4명·소대장 각 4명씩 16명·하사관 각 1명씩 4명·부교 각 5명씩 20명·참교 각 8명씩 36명·병졸은 모두 328명으로 1개 대대는 본부에 16명과 중대소속의 408명으로 조직되었으며, 기병대대는 따로 1등 군악장이 주관하는 51명의 군악소대가 있었다.

그러나 기병대대는 오래 존속되지 못했다.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에 의해 1개 중대로 축소됐고, 1개 소대로 잔존했던 군악소대도 폐지됐다. 이후 1907년 일본의 강제군대해산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군대 해산으로 한민족의 마문화 전통은 완전히 단절됐고 이와 함께 강인한 한반도의 말도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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