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가입자 정보 유출 사건을 통해 이동통신사의 과도한 보조금 경쟁이 개인정보 해킹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경찰청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의 영업전산망에 접속해 가입자 870만명의 개인정보를 빼돌린 혐의로 검거된 최모씨 등 일당은 철저히 'KT의 이동전화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텔레마케팅(TM)'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다.
경찰 조사에서 최씨는 텔레마케팅 사업을 하다가 KT 가입자만을 상대로 하면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보다 더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판단, 작년 8월 KT의 가입자 정보를 빼낼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KT의 대리점·판매점이 다른 이통사보다 많은 수준의 수수료를 텔레마케팅 업체들에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결과 최씨 등은 기기변경 가입자를 1명 유치할 때마다 KT로부터 10만∼15만원의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번호이동이나 요금제 변경 건수를 올릴 때도 일정 금액의 수수료가 있었다"고 말했다.
텔레마케팅은 이통사가 관리하지 않고 대리점·판매점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텔레마케팅 수수료도 이통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러나 대리점·판매점은 이통사가 지급한 보조금 등 영업비의 일부로 텔레마케팅 업체를 고용하기 때문에 이통사도 텔레마케팅의 기승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판매점이 텔레마케팅 업체에 지급한 수수료가 15만원이었다면, 대리점에서 판매점으로, 이통사에서 대리점으로 내려온 수수료 규모는 더욱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각 단계에서 마진을 남긴 나머지 금액을 하위 유통망에 수수료로 주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롱텀에볼루션(LTE) 경쟁이 시작한 이후로 이통사가 가입자 1명을 유치하기 위해 대리점에 지급한 보조금이 100만원에 육박하는 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씨 등이 범행을 저지른 지난 2∼7월은 이통사들의 LTE 가입자 유치 경쟁으로 시장 과열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이통사 관계자는 "텔레마케팅 업체들은 특정 상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기보다는 여러 상품 중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품목을 공략한다"며 "요즘은 스마트폰이 가장 돈이 되는 텔레마케팅 아이템"이라고 전했다.
과거에는 통신 관련 텔레마케팅이 초고속인터넷 등 유선 상품에 치중돼 있었다면 최근에는 이동전화 가입자가 주요 표적으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통신사들이 유선상품보다 이동전화 사업에 많은 마케팅비를 투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주기적으로 이통사 보조금 실태를 점검하고 있으나 정상적인 이동전화 유통 단계에서 벗어난 텔레마케팅에 흘러들어 가는 보조금은 사실상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가입자 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되는 텔레마케팅은 각종 민원과 소비자 불만으로 이통사에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지난 2월 이통사를 사칭한 불법 텔레마케팅을 근절시키기 위한 대응책을 발표한 바 있다
KT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겪은 후인 이달 말부터 불법 텔레마케팅 업체의 무작위 홍보전화에 시달리는 가입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불법TM 고객안심 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이통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도를 넘은 마케팅 경쟁이 부른 화"라며 "KT를 포함한 모든 이통사가 편법적인 텔레마케팅의 등장과 개인정보 유출까지 발생한 데 대해 일면의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