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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난임시술, 건강보험 적용됐는데 왜 더 비싸졌나

입력 2017-11-04 14:10 수정 2017-12-11 19:03

탁상공론에 서민 피해 #윤정식_기자
뉴스의 숨은 뒷얘기! JTBC 취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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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숨은 뒷얘기! JTBC 취재수첩

[취재수첩] 난임시술, 건강보험 적용됐는데 왜 더 비싸졌나


탁상 행정이 더 괴로운 난임 환자들

문재인 정부 초기 보건복지 분야의 가장 큰 관심사안은 역시 문재인 케어가 제대로 안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병원 진료는 원칙적으로 건강보험 급여대상으로 한다는 큰 방향에 기대도 크고, 반면 재정이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큰 상황입니다.

3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아직 종합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른 감이 있습니다. 다만 이미 시행에 들어간 부분에서는 조금씩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이번달부터 건보 대상에 편입된 난임시술입니다.

많은 난임 환자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건보 편입 전보다 부담이 커졌다'는게 중론이었습니다. "몸에 큰 무리가 가는 것도 감수하고 난임시술을 받아왔는데, 이젠 돈 때문에 포기하겠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왜 그런지 살펴봤습니다.


1. 난임의 건강보험 급여화, 뭐가 달라졌나

난임 시술은 배란유도→ 난자채취→ 난자처리→ 정자채취→ 수정→ 배양→ 이식(착상) 이렇게 크게 7단계로 나뉩니다. 전체 과정의 비용은 300만원~800만원까지 병원마다 천차만별입니다.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되면 들쭉날쭉한 가격에 기준점이 생깁니다. 바로 보험 수가입니다. 예를 들어 난자 채취 및 처리비는 종합병원 기준 81만8142원입니다.

문제는 이 기준가가 가장 비싼 병원에서 받던 금액보다 약간 낮은 선에서 책정됐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병원에선 예정보다 올려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2. 내가 받는 혜택인데 혜택 받는 시점도 선택 못하나요?

난임 시술 한 번만 해서 바로 임신에 성공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초기 단계에 실패해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보험 혜택은 총 4회로 제한하고 있습니다.(신선배아 기준) 복지부가 내세운 제한 이유는 첫째는 환자의 건강이고 둘째는 여러 번 한다고 성공 확률이 크게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술을 많이 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몸만 상하니 횟수 제한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난임환자의 불만은 4번의 기회를 쓸지 말지를 과거와 달리 본인이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번의 시도 끝에 임신에 성공한 한 난소저하환자 A씨가 있습니다.

난자 채취 실패
난자 채취 실패
수정 실패
난자 채취 실패
이식 실패(자궁 외 임신)
난자 채취 실패
난자 채취 실패
배양 실패(세포분열)
배양 실패(세포분열)
임신 성공

현 건강보험 체제서 이 환자는 3번의 난자 채취 실패와 1번의 수정 실패만 건보 혜택을 봅니다.

지난달까지 적용되던 지원금 체제에서도 똑같이 4번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차이점은 지원금 쓰는 차수를 환자가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비교적 돈이 많이 들어간 2번의 배양 실패와 1번의 이식 실패 그리고 성공했을 때 사용 가능한 겁니다. 난자 채취와 수정까지는 큰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결국 새 정책 때문에 난임환자들의 비용이 크게 늘어났다는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예를 들은 사례가 너무 편파적일까요? 사실 난임 환자들을 취재해보면 이 정도 사례자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열 번 만에 성공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부부의 말이 뇌리에 남습니다.

"4번 안에 성공 못하는 환자는 버리고 가는거잖아요. 정부는 출산율만 높이려하니 임신 잘되는 사람들만 돕고 잘 안 되는 저희는 버림 받는거죠. 이게 무슨 난임정책이에요."


3."우리는 난임 시술 수가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복지부의 항변은 사실일까?

10월 31일 뉴스룸에 보도가 나가고 몇 시간이 지나 복지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보도가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저희는 건강보험 급여화 이후 더 높은 난임 시술비를 내고 있는 A씨의 사례를 들며 복지부가 난임시술을 건강보험 적용대상으로 포함하며 수가를 대폭 올려줬기 때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A씨 사례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A씨는 작년과 올해 초 모든 차수를 소진하고 현재 9번째 시술을 받고 있습니다. 즉 비급여 대상자입니다.

지난 7월 A씨는 다수의 난자를 채취 후 수정 배아 등의 과정에 대해 136만원을 냈습니다.

10월에는 당시보다 훨씬 적은 양의 난자가 채취됐고 만일 난임 건강보험 급여화가 없었다면 136만원보다 낮은 금액을 낼 수 있었다는 게 병원측 설명입니다.

하지만 A씨는 160만3340원을 냈습니다.

복지부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A씨는 어차피 건강보험 대상자가 아니고 이렇게 많은 금액을 낸 건 병원이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급여 대상을 벗어난 4회차 이후의 병원비는 복지부 정책과는 관계가 없다는 설명인 셈이죠.

하지만 이런 설명은 실제 의료현장과는 동떨어진 것입니다. 병원들이 같은 시술을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보험 적용도 못받는 4차 이상 시술환자에게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대부분의 병원들은 비급여 환자들에게도 정부가 제시한 수가를 그대로 받고 있습니다.(물론 앞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차수를 넘긴 환자들의 비용이 늘어난 것은 앞서 설명했듯이 수가를 가장 비싼 병원보다 약간 낮은 수준에서 책정했기 때문입니다.


4. 탁상공론 정책에 빠듯한 서민들만 피해

방금 말씀드린 모 병원은 비교적 고소득층 난임 환자들이 다니는 병원입니다. 이 병원 환자들은 다니는 병원 계속 다니면서 득을 보는 것입니다.

반면 기존 체제에서 빠듯한 경제상황으로 보다 저렴한 가격의 난임 시술 병원을 찾아간 환자들은 부담이 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어차피 가격도 같아졌는데 고소득층이 가던 병원을 누구나 갈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고소득 난임 환자들은 가격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집니다. 반면 빠듯한 난임환자들은 그나마 버티던 경제적 마지노선이 깨지면서 난임 시술을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복지부는 일부 환자들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하지만 저소득 난임 환자들은 이번 난임 정책으로 이제는 아이를 포기하겠다고 현상이 정책 시행 한 달 만에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난임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은 외부의 시선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난임 치료를 건강보험 급여화로 본인부담금이 크게 낮아졌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난임 환자들은 "이제 국가가 왠만한 건 다 지원해주니 부담이 훨씬 줄었겠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 가서 진료비 청구서를 보면 어깨가 더 무거워진다는 겁니다.

지금의 난임 정책이 정말 좋은 정책이라면 그 수요자들 중 일부라도 과거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면 안될 겁니다.

난임 시술의 건강보험화는 '문재인 케어'의 첫단추에 해당합니다. 정책담당자들이 지금이라도 첫 단추가 잘 꿰졌는지 확인해 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윤정식 기자 pro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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