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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고려대생 이명'백'

입력 2019-03-06 21:34 수정 2019-03-0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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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964년의 대학가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로 연일 시끄러웠습니다.

대규모 대학생들이 모여 진행한 6·3항쟁에 놀란 군사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위를 주동한 학생들을 대거 잡아들였지요.

며칠 뒤 당국은 아직 붙잡히지 않은 주동급 학생들의 명단을 공개하였는데 그중 한 학생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려대생 이명백


황급한 마음에서였을까…

계엄 당국은 '이명박'을 '이명백'으로 잘못 표기했을 정도로 조금 허술했던 모양입니다.

당시에 도피 중이었던 그는 신문 공고가 나간 뒤 경찰에 자진 출두했고 석달동안 감옥살이를 한 뒤에 보석으로 출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석으로…

"무엇보다도 억울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도망을 다니느냐…당당하게 내 말로 경찰서를 찾아갔다"
- 이명박 < 대통령의 시간 >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이 일로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친척이 "서울시 용산구 이명박 앞"이라고만 적어 보낸 사과 궤짝이 그가 사는 단칸방에 정확하게 배달됐을 정도라 하니…

이명박이라는 그의 이름 석 자는 구속과 함께 알려지기 시작해서 이제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이름이 되었지요.

수인번호 716번.

수감 직전 "54년 만에 팔십이 다 되어 감옥에 간다"고 말했다는 그는 349일 동안 그 감옥에 있었습니다.

서울동부구치소의 최상층 독방.

젊은 시절 그의 죄명은 '내란선동죄'였으나 50여 년이 지나 다시 수감된 그의 혐의는 18가지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비자금 의혹으로 바뀌어 있었고… 

이제 수인번호 대신 이름을 잠시 되찾은 그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감옥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습니다.

50여 년 전의 고려대생 이명'백', 아니 이명박은 이번보다 훨씬 짧은 투옥 3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었습니다.

각 대학에서는 억울하게 갇힌 동료를 위해서 모금 운동을 진행했고, 변호사들이 무료 변론에 나선 끝에 이끌어낸 결과였습니다.

어렵사리 성사시킨 젊은 그들의 귀환을 모두는 환하게 반겼을 테지요.

그리고 50여 년이 지나 결정된 전직 대통령 이명박의 보석 허가.

고령에 돌연사 위험까지 있다 했으니 판단은 시민 각자의 몫이 되겠지만…

그 시절, 당당했을 젊은이의 출소와 논란이 분분한 보증금 10억짜리 출소의 간격은 벌어진 50년의 세월만큼이나 멀고도 아득해만 보이는…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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