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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만 42명 숨져…되풀이되는 아동학대 비극, 왜?

입력 2020-12-0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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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엿새 전 전남 여수의 가정집 냉장고에서 아기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은 우리 사회가 가진 여러 숙제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는 사이 다른 남매는 쓰레기 더미에 방치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을 살펴야 할 보호기관 직원들, 그리고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제 몫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욕설과 폭력에 시달리면서 "지옥 같은 업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배승주 기자입니다.

[기자]

[여수경찰서 관계자 : 그때부터 본인이 미친 것 같다고 스스로가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전남 여수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기 시신을 유기한 엄마 A씨의 말입니다.

쌍둥이 가운데 한 아이가 죽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애초 출생 신고도 안 해 그 어떤 육아 지원이나 안내도 못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기 시신을 냉장고에 숨겼습니다.

이후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끼니는 배달 음식으로 때웠습니다.

집안에 쓰레기가 쌓여갔습니다.

[여수경찰서 관계자 : 첫아이가 혼자잖아요, 아빠가 없이. 너무 손가락질 받고…]

그런데 이런 위기 가정을 살펴야 할 아동보호기관과 담당 공무원들의 사정도 여의치가 않습니다.

A씨는 여러 차례 찾아온 주민센터 직원과 현장조사를 온 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을 집안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강제 조사 권한이 없는 상담원들에겐 이런 문전박대는 일상입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 공무원도 아닌데 뭐 하러 여기 와서 조사하냐, 쫓아내는 경우도 많이…]

어렵사리 만나도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기 일쑤입니다.

흉기나 둔기에 다친 직원들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 갑자기 감정이, 분노감이 올라와서 들고 있던 커터 칼로 저희를 위협하는…]

처우도 좋지 않습니다.

일반 사회복지사들이 받는 임금의 80% 수준입니다.

범죄피해자 보호기금으로만 운영되다 보니 예산이 빠듯한 겁니다.

[구미희/전남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 때문에 지난 10월부터 일부 시·군에 아동학대전담 공무원이 배치됐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비슷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지난달 초과 근무만 95시간이었다는 담당 공무원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공무원은 "업무 수행 두 달이 지옥이었다"고 적었습니다.

[○○시청 아동학대전담 공무원 : 다른 곳에 갈 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옮겨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 사전 신고 있었던 경우 많아…구할 기회 놓친 이유는

[앵커]

학대를 당하다가 숨진 아이들은 지난해에만 42명입니다. 뉴스룸은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지 집중했습니다. 아이들을 구할 기회는 있었습니다. 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때를 놓친 경우가 많았습니다.

먼저 강희연 기자입니다.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학대가 아니었습니다.

학대를 의심해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했지만 막지 못했습니다.

학대 아동들은 스스로 피해를 호소하기 어렵습니다.

[A씨/아동학대 피해자 : (엄마가) '어디서 탁 나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너무 외로웠던 것 같아요. 그냥 회색빛이었어요.]

[B씨/아동학대 피해자 : 제 아버지가 선생님이시거든요. 답답하다고 때리고 발로 차고 뒤통수를 막 손으로 때리고…]

학대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B씨/아동학대 피해자 :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사랑의 매다 뭐 그런 거…대학을 다니고 하다 보니까 이게 학대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대신 미움 받는 이유를 자신의 탓으로 돌립니다.

[A씨/아동학대 피해자 : 내가 잘해야 될 것 같았어요. 내가 뭘 잘못했지? 아 나도 좀 사랑받고 싶다…저는 항상 아프고 싶었어요. 내가 멀쩡하니까 나를 안 봐주는 것 같아서…]

전문가들은 보이지 않는 학대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현장조사를 거부할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뿐입니다.

민간 아동보호기관이 학대 가정을 관리하지만, 강제적인 조치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상흔, 멍 등 보이는 증거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정서적으로 학대하거나 아예 아이를 방치하는 경우는 잡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공혜정/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 창녕 탈출 소녀처럼 그런(탈출하는) 케이스는 굉장히 드뭅니다. 현장을 조사하시는 분들이 드러난 것, '멍도 별로 없네, 별로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네' 하고 철수를 하는 겁니다.]

어른들이 발길을 돌리는 사이 학대는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경찰 : 애 집에 돌려보냈지.]
[변호사 : 애 죽인 인간이랑 같이 두면 어떡합니까.]
- 영화 '어린 의뢰인'

■ 학대 확인해도…피해 아동 80%가 다시 부모 손에

[앵커]

영화 속 일만이 아닙니다. 아동학대를 잡아내도 아이들 열 명 가운데 여덟 명은 원래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학대를 한 부모 손에 아이들을 다시 맡기면서 학대는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어서 임지수 기자입니다.

[기자]

아홉 살 난 아이가 집에서 여행용 가방 안에 7시간 갇혀 있다 숨졌습니다.

지난 6월 천안 아동학대 살인사건입니다.

이미 한 달 전 신고가 들어왔지만, 아이는 가정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한 겁니다.

[김영주/변호사 (전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 : 이 가정을 벗어나서 누군가 날 지켜줄 거라는 그런 시스템에 대한 이해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래서 아동이 집에 있고 싶다 그래서 그럼 원가정에 두는 게 낫겠다라고 바로 판단하면 안 되고요.]

아동복지법은 피해 아동이 분리되더라도 최대한 빨리 원래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권장합니다.

이른바 '원가정 보호원칙'입니다.

[공혜정/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 (원가정 보호원칙은) 일반 가정이었을 때 훌륭한 조치입니다. 학대 피해 가정은요, 이미 학대가 난무한 곳이기 때문에 피해아동들한테는 안전한 곳도 따뜻한 곳도 아니에요.]

지난해 아동학대 사건 3만여 건 중 가해 부모와 분리 조치된 경우는 12%에 불과합니다.

전체의 84%가 원래 학대받던 집에 남겨졌습니다.

다시 학대를 당한 사례 가운데 70%는 이렇게 학대당했던 집에 남겨졌을 때 발생했습니다.

학대 가해 부모는 교육과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 응하는 경우는 10건 중 1건꼴도 안 됩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 : 저희 전화 차단해놓으셔도 할 말이 없는 거죠. (가해 부모에게) 욕 얻어먹을 각오하고 (학대 아동) 학교를 찾아가는 경우도 많거든요. 아이 생사라도 확인을 해야 하니까.]

내년부터는 1년에 2번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아이를 즉시 가정에서 분리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학대 피해로 분리된 아이는 3600여 명.

하지만 학대 피해 아동 쉼터는 전국에 72곳, 정원은 약 500명에 불과합니다.

전문가들은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여건부터 갖춰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 290명이 4만건 담당…전담 공무원제 '삐걱' 출발

[앵커]

정부는 지난 10월부터 '전담 공무원 제도'를 시작했습니다. 전문성을 키우겠다는 거지만, 현장에선 "업무를 익힐 틈도 없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어서 채윤경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9월 인천에서는 아이들끼리만 방치된 채 라면을 끓여 먹다가 형제가 큰 화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정부는 지자체에 아동학대를 전담하는 공무원을 두기로 했습니다.

전국 229개 지자체 중 올해까지 118개 지역에 공무원 290명을 우선배치합니다.

지난해 전국 아동학대 신고는 4만 건을 넘었습니다.

공무원 1명이 1년에 140건을 담당할 정도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내년까지 전담인력을 664명으로 늘리겠단 계획이지만, 시작부터 삐걱입니다.

아동 사건을 담당해본 적이 없는 공무원들을 급히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A씨/00시청 전담공무원 : 아동쪽은 이번이 업무가 처음입니다. 1주일간 온라인 교육, 나머지는 실습 3일하고 서울에서 이틀간 현장 교육을 받고 시작했습니다.]

전담 공무원은 아동학대를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복지직이 아닌 행정 직원을 배치한 곳도 있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 코로나가 있고… 원래는 이런 걸 하면 같이 모여서 설명회, 교육, 워크숍 이런 것들을 충분히 하면 좋은데, 이런 부분들이 애로가 있었고…]

현장에선 "업무를 익힐 틈도 없이 바로 투입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일을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채윤경 기자 / VJ : 남동근, 안재신 / 영상디자인 : 황수비, 김충현 / 영상그래픽 : 박경민, 한영주 / 인턴기자 : 신귀혜·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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