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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논·밭 폐기름 유출' 책임 업체 "피해 우리때문이라는 증거 대라"

입력 2018-06-01 16:01 수정 2018-06-0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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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논·밭 폐기름 유출' 책임 업체 "피해 우리때문이라는 증거 대라"


"이게 뭐냐고 도대체. 마을 지하에서 유전이라도 발견됐냐고."

지난 일요일 낮, 땅을 파고 또 파내도 새나오는 기름을 본 마을 농민들 입에서 분노가 섞인 농담이 나왔습니다. 저를 포함한 취재진도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폐기름이 유출된 지 열흘이 넘도록 방제 작업은 미진한데, 책임이 있는 업체나 감독해야할 지자체는 현장에 없었습니다. 5월 29일자 [밀착카메라] 모내기 끝낸 논에 '폐기름'…농민들 망연자실(http://news.jtbc.joins.com/html/632/NB11642632.html) 기사는 충북 진천군 덕산면의 폐 윤활유 유출 사고 현장을 고발했습니다.

폐기름이 유출된 경위에 대해 업체의 주장과 주민들의 목격담, 진천군청의 조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5월 17일 오전 9시쯤 충북 진천군 덕산면의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외부에서 들여온 폐윤활유가 유출되고 있는 것을 직원이 발견합니다. 유출된 양은 드럼통 반개, 그러니까 100리터 정도였다는 게 업체 주장입니다. 업체에 따르면 유출이 발견된 직후 대부분의 직원을 동원해 방제 작업에 나섰습니다. 방제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날 오후에 비가 내리면서 주변 논·밭에 물을 대는 농업용 수로로 기름이 퍼집니다.

이튿날 아침, 기름 냄새와 썩는 냄새를 맡은 주민 두 명이 냄새의 근원지를 찾다가 공장에서부터 나온 것을 발견하고 진천군청에 신고합니다. 그리고 조사를 나온 진천군청 관계자에게 업체가 유출 사실을 시인하면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겁니다. 최초 유출 발생 이후 지자체에 정식으로 보고되기까지는 23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보도 이후 업체 본부장의 문자, "녹조 현상과 동물 사체가 유출된 폐유 때문이라는 증거 있나?" "피해 면적이 1만5000평이라는 증거 있나?"

기사가 나간 다음날, 유출 책임이 있는 폐기물처리업체 본부장이 보낸 문자 내용입니다. 해당 본부장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현장에서 발생한 피해가 폐기름 유출로 인한 게 맞냐고 항변했습니다.

취재팀은 촬영 당시 현장에서 복수의 주민들로부터 유출 사고 발생 이후 두 차례 시료가 수집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진천군청이 수질검사를 위해 4곳에서 액체 시료를 채취했고, 주민들이 토양검사를 의뢰하기 위해 3곳에서 토양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진천군청이 충청북도 보건환경연구원을 통해 진행한 수질검사에서는 농업용 수로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수치가 검출됐습니다. 나머지 3곳은 불검출로 나왔습니다.

토양 검사 결과는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세종토양연구소에서 토양오염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석유계총탄화수소(TPH) 검사를 진행했더니, 세 곳 중 2곳에서 기준치의 40배가 넘는 오염이 확인됐습니다. 

 
[취재설명서] '논·밭 폐기름 유출' 책임 업체 "피해 우리때문이라는 증거 대라"


업체 관계자는 보도 당일 취재진에 "유출된 폐기름의 주 성분은 엔진오일"이라고 밝혔습니다. 토양검사를 통해서도 오염 물질이 '윤활유 계열 기름'이라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취재진도 정확한 피해 면적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업체와 주민들 사이에서 객관적으로 조사가 가능한 진천군청에 문의했습니다. 다소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자신들은 그런 조사를 자체적으로 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1만5000평 vs 4000평, "피해 접수를 안 했으니 피해라고 볼 수 없다"는 진천군청

이번 폐기름 유출로 인한 피해 면적은 업체와 주민들의 주장이 확연히 갈립니다. 주민들은 최소 1만5000평에서 4만 평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합니다. "논밭에 뜬 기름이 인체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작물에 영향이 없을 거라는 장담을 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올해 벼가 자라더라도 외부로 판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반면 업체가 주장하는 피해 면적은 4000평입니다. 기사 초반에 취재진이 녹조가 낀 물을 뜬 그 논입니다.

진천군청 담당 부서는 취재진에 자체 조사를 벌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5월 23일 진천 부군수가 주민들과 만나 "피해가 있으면 다 신고하시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담당자는 이후 신고를 접수한 주민이 없었다면서 "저희는 피해가 없다고 하면 '아 그렇구나'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진천군청이 파악한 피해 면적은 몇 평일까? 담당자는 "4000평에 걸쳐 방제 작업을 업체가 진행하는 것을 감독했다"고 말했습니다. 업체의 입장만 그대로 되풀이한 겁니다.

이에 대해 마을 이장을 포함한 주민 2명에게 전화로 물어봤습니다. 두 사람은 "부군수를 만난 현장에서 피해 내역을 신고하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그 전에 방제 작업을 완벽하게 끝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나중에 접수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마을 주민들은 자체적인 피해 규모를 정리하는 단계입니다. 진천군은 방제 작업이 완벽하게 끝나는 대로 검사를 진행한 뒤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부 주민들의 과격 시위

기사가 보도되기 전, 유출 책임이 있는 업체는 취재진에 "일부 농민들이 공장 직원들에게 심한 욕설을 했고, 공장의 출입구를 농기구와 차량으로 막아 업무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업체 직원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에는 공장 출입구를 막아선 농민들과 차량이 보였습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여자 직원이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욕설의 소재로 활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과거 다른 공장과 갈등을 겪은 주민이 피해를 과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주민들은 5월 25일부터 경찰에 집회 시위 신고를 하고 집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업체 직원을 포함한 타인에게 욕설하거나, 농기구와 차량을 동원해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할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끝으로

이번에 폐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업체는 과거 최소 3차례 폐기물처리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습니다. 언제, 어떤 위반 내역이 적발됐고 행정처분은 어떻게 내려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담당 기관인 금강환경유역청에 문의해봤습니다. '정보 공개 청구를 신청해달라'는 답이 왔습니다. 환경부에도 물어봤지만 같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취재진은 5월 31일 정보 공개 청구를 신청해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거 관련 법규 위반이 이번 사고와 반드시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금강유역환경청도 "1년 이내 폐기물처리법 위반 사실이 있으면 누적 처벌이 가능하지만, 1년이 지난 위반에 대해서는 누적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해 보입니다. 이 업체에 대해서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환경청 모두 앞으로는 더 철저한 감시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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