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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9회] 은밀한 선거…덫에 걸린 유권자들

입력 2014-04-13 23:55 수정 2014-04-14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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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탐사플러스 전진배입니다. 6·4지방선거가 이제 약 50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선거법을 어기는 사람들도 전국 곳곳에서 적발되고 있는데요, 금품과 음식물 제공은 단골 위반 사항이죠? 주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이제 받는 사람도 엄청난 과태료 폭탄을 맞게 됩니다. 설사 선거와 관련있는지 몰랐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심코 받은 선물 하나 때문에 한 마을이 쑥대밭 되는, 웃지못할 사태도 벌어집니다.

탐사플러스가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기자]

충청남도 서남단에 위치한 서천군입니다.

남으로는 호남평야, 서쪽으로는 바다를 맞대고 있는 조용하고 자그마한 마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말, 이 동네에 집집마다 장아찌 선물세트가 배달됩니다.

평범한 명절 선물처럼 보인 1만8000원짜리 장아찌는 가로 30cm, 세로 20cm 의 박스에 넣어져 360여 명의 마을사람들에게 택배로 발송됐습니다.

그런데 이 선물세트를 받은 한 주민이 발신자가 6월 지방선거 군수 입후보 예정자의 7촌이라는 사실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보하면서 마을이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선관위가 이를 '불법 선물'로 규정하면서 장아찌를 받은 사람들에게 자수안내문을 보낸 겁니다.

[마을사람 1 : 이거 만약 과태료 물리면 나는 끝까지 행정소송이라도 할 거야. 나는 받은 것도 모르고 보지도 못했고, 그 사람 전화번호도 몰라서 선관위 직원이 나한테 조사하러 왔을 때 그 사람한테 그 양반 전화번호 물어봐서 전화했어.]

[마을사람 2 : 우리는 원치도 않은 걸 갖다 주고서는 우리가 왜 벌금을 내요. 홍삼, 보약도 아니고 짜디짠 장아찌 그거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심동성/서천군 선관위 사무과장 : 선거 관련 물품 받은 경우 30배의 과태료 부과합니다. 이번 경우는 택배로 원치 않게 받았기 때문에, 그럴 경우에도 선거 관련성이 인정되면 10배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건 부과기준에 명시돼 있습니다.]

안내문이 발송되자 하루에 한 명이나 찾아올까 말까 하던 선관위 사무소에는 사흘간 200명 넘는 마을 주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목허균/서천군 선관위 지도홍보계장 : 글쎄 어떤 분은 과태료 안내 문자를 보내니까, 과태료 얘기가 나오니까 못 낸다고 얘기해서 드러누우시려고 하는 분들도 계셨더라고요. 그때 과태료가 겁나니까, 처음에 받았다고 진술하셨다가 안 받았다고 얘기하시면서 과태료 못 내겠다, 이렇게 드러눕는 분도 계셨고….]

그러나 해당 선관위는 자진신고한 사람 등을 제외한 314명에게 장아찌 가격의 10배인 18만 원을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총 5600만 원의 '과태료 폭탄'이 이 작은 마을에 터진 겁니다.

하지만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노부부에서부터 하루 종일 바다에 나가 있느라고 택배를 제대로 확인할 길이 없는 어민에 이르기까지 마을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립니다.

[노인부부 : 참, 별일이 다 있어요. 세상에. 단돈 1000원이라도 뭣 하려고 내겠어요? 그렇지 않아? 참. 세상에. 18만 원, 세상에.]

[어부 : 오라고 하면 어떻게 오냐고. 사람 성질나지. 여기다가 그물을 한 20개씩 싣고 간다고. 바다에서 참…… 환장하네. 얼마나 성질나는지 알아요, 참말로. 어떻게 돌려보내냐고요, 저녁에 왔는데 나는 바다에서 그날 또, 그런데 이게 저번에 선관위에서 '돌려보내 주면 되는데'라고. 말은 쉽죠.]

[농민 : 이웃 간에 좀 나눠먹든가, 그런 형편인데 그거 냄새나고 질척한 걸 먹고 앉아 있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나 별 추접한 일을 다 당하고 사는구만.]

장아찌를 보낸 사람은 거와의 관련성은 일체 부인하면서 을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쳐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장아찌 발신자 : 선거 때문에 보낸 거라면 내가 택배로 보냈겠어요? 은밀하게 하지. 가 그분들한테 굉장히 미안하죠. 그분들에게 전화도 안 합니다.]

[앵커]

서천군 현장을 다녀온 강신후 기자 나와 있습니다. 강 기자, 아찌 때문에 온 마을이 정말 난리가 났네요?

[기자]

네, 이게 바로 마을주민 300여 명을 선관위로 달려가게 한 그 문제의 장아찌입니다.

연세 드신 노인들 중엔 글을 모르는 분도 있었는데요, 영문도 모르고 택배를 받았다가 낭패를 본 셈입니다. 하루 종일 바다에서 일을 하느라 가족이 대신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앵커]

마을사람들 얘기 대로라면 선거법이 좀 가혹한 측면도 있는 거 같네요?

[기자]

맞습니다. 선거와 관련된 금품을 받으면, 선거 관련성을 알았건, 몰랐건, 10배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식사대접은 무려 30배의 과태료가 부과돼 밥 한끼 먹었다가 100만 원 넘는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면 보시죠.

[기자]

'장아찌 사건'이 벌어진 충남 서천군에서 차로 1시간 반가량 떨어진 충남 논산시.

지난 1월 말 논산의 한 청년회 일부 회원들에게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합니다.

청년회 회장이 보낸 문자입니다. 전임 회장과 저녁식사를 한다는 일정을 안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회원들이 삼삼오오 약속장소로 모여듭니다. 회원들 사이에 대화가 오갑니다.

[회원들 : 이거 누가 부른 거야? "본선(논산시의원 출마예정자)이 형.]

이들의 얘기대로 구본선 논산시의원 예비후보도 이 자리에 참석합니다.

두 시간 가량의 식사가 끝난 후 식당의 카운텁니다.

구 후보가 계산대앞에서 돈을 건넵니다.

[종업원 : 5만 원권으로 다 주셨네요.]

55만 원의 밥값을 구 후보가 낸 겁니다.

이어 구 후보와 청년회원들은 함께 식당을 나와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성순/논산시 선관위 지도홍보계장 : 식사비의 형태가 본인이 직접 돈으로 계산했고, 모임의 주최측인 총무나 관련자에게 찬조금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식사 종료 후에 본인이 모든 회원들을 나가도록 하고 본인이 최후에 식사 카운터에서 식사비를 계산한 정황이어서 본인이 산 행위로 판단되었고….]

선관위는 식사비를 이번 모임 참여자 수로 나눠 1인당 30배의 과태료인 126만9000원을 부과했습니다.

한 사람 당 126만원이 넘는 과태료가 부과된 회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회원1 : 126만9000원인가가 향응 제공 음식물로 인해서 부과가 됐어요. 그래서 우린 억울하다, 제가 향응 제공한 게 후보자한테 얻어먹은 게 아니고 제가 그날 초청을 해서 회원들한테 식사 대접을 한 건데 다 억울하다….]

[회원2 : 내는 건 내는 건데 너무 부당하다 이거죠. 그 자리에 구본선씨가 있어서 자기가 시의원 나온다고 표명은 했는데 그 사람을 으쌰으쌰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밥을 우리가 그 사람이 산지도 몰랐고. 그런 얘기가 있어서 억울하다는 거죠. 우린.]

이들은 모두 과태료 처분에 이의신청을 해놓은 상탭니다.

[회원3 : 젊은 사람들은 출마했다고 하면 안 받거든요, 의식이. 밥이 크게 비싼 건 아니지만 얻어지는 게 없잖아요. 제가 제 돈 내고 밥 편하게 먹는 게 낫지.]

구 후보는 관례적으로 찬조금을 낸 것일 뿐이라며 혐의내용을 모두 부인하고 있습니다.

[구본선/논산시의원예비후보 : 전 부회장 자격으로 찬조금 냈을 뿐이지 선거랑 관련해서 낸 건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전례대로 식사 제공한 건데 그게 후배들한테 본의 아니게 피해주게 돼서 죄송하단 말씀 드리고요.]

선관위는 이처럼 출마자와 밥 한끼 잘못 먹었다가는 과태료 액수가 100만 원대를 넘어갈 수도 있는 만큼 공짜 선물과 음식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절대로 가볍게 생각해선 안된다고 말합니다.

[이성순/논산시 선관위 지도홍보계장 : 특히 선관위 조사 시작되면 먼저 자수 부탁드리고요. 자수 후엔 감경 내지 면제 규정이 있기 때문에 유권자 여러분께 자수를 적극 권해드립니다.]

지난 2월, 강원도 횡성군의 문화예술회관.

800여 명의 군 노인회원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춤과 노래를 선보입니다.

행사주관은 대한노인회이지만 재선에 도전하는 고석용 횡성군수는 시종일관 행사자리를 지키며 어르신들과 춤도 추고, 사진촬영도 여러 차례 합니다.

[홍종윤/횡성군 선관위 사무과장 : 그것을 노인회가 주도적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군수가 주는 것처럼 참석한 노인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군청에서 모든 계획을 수립해서 지시하고 한 거죠.]

선관위는 참가자 800여 명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는 등의 행위가 불법선거운동 소지가 있다고 보고, 고석용 군수와 군청 담당 과장을 고발했습니다.

이날 행사 보조금을 이미 은행계좌로 지급을 했으면서도, 이 자리에서 보조금이라고 적힌 빈 봉투를 전달하는 순서를 마련한 것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홍종윤/횡성군 선관위 사무과장 : 이건 군수가 이렇게 격려금을 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한 거잖아요. 그렇게 볼 수밖에 없잖아요.]

특히 음식물을 제공받은 참가자들은 이번 고발사건의 재판결과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될 수도 있습니다.

당시 행사에 참여한 노인들도 유쾌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합니다.

[당시 참가자 : 군에서, 그 우리가 요구한 것도 아니에요. 자기들이 계획해서 예산을 이렇게 쓰겠다 해달라고…. 통로가 노인회가 된 거야, 통로가. 모르겠어요. 하여간 그렇게 해가지고 행사를 진행했는데 호감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고 우리,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그 조금 부담스러운 행사였어요.]

고석용 군수와 함께 고발된 담당 과장도 보조금 전달 순서는 불필요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원수연/횡성군 주민생활지원과장 : 군수님께서 '읍ㆍ면노인회 분회장님들 모처럼 나왔으니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지시를 하셨어 우리한테. 우리야 상관한테 지시받으면 해야지.]

고석용 군수는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지인에게 인터넷 상에서 상대 후보를 비방할 것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결국 지난 3일 경찰에 구속됐습니다.

[앵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유권자가 더 조심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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