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조율, 사전에는 '악기의 음을 표준에 맞추어 고름'이라고 풀이합니다. 이 말은 갈등의 골이 깊을 때 타협하는 과정에도 심심찮게 쓰이죠. 조율은 화려한 무대 뒤 아무도 모르는 데서 하는데요. 근사한 이 말 하나를 붙잡고 64년 동안 피아노와 씨름한 사람이 있습니다.
권근영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화려한 조명도, 뜨거운 갈채도, 오로지 연주자에게만 향합니다.
무대 뒤, 조율의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관객 없는 무대, 박수 없는 연주, 조율사는 이 모든 것이 익숙합니다.
[이종열/조율사 : 조율사를 '블랙 선'이라고 해요. 만날 껌껌한 데서 이렇게 하니까. 어둠의 자식.]
163cm의 작은 키, 그만큼 작은 손이 눈에 들어옵니다.
늘 펼쳐서 건반을 눌러야되는 왼손은 크고 오므린 채 현을 조이고 푸는 오른손은 작습니다.
건반과 씨름한 지 64년, 아름다운 화음에 빠져 교회 풍금을 뜯어봤던 공업학교 졸업반부터, 이종열의 세상은 여기 건반 위였습니다.
피아노 공장의 조율사였다가 이젠 유명 피아니스트들이 단골이 됐습니다.
[이종열/조율사 : 거친 소리를 깎아서 예쁜 둥근 모양으로 소리를 만들죠.]
어느새 여든 하나, 그래도 귀는 늙지 않았습니다.
같은 음을 반복해 치면서, 현을 조이고 풀면서 옳은 소리를 찾아갑니다.
[이종열/조율사 : 사격선수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숨도 안 쉬거든요. 이게 230줄인데 계속해서 230번 그런 순간이 계속되는 거예요.]
88개의 건반이 쭉 고른 소리를 내야 하는 피아노는 우리네 세상을 닮았습니다.
자연스런 음을 바탕으로 서로 타협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구성한다고 모두가 아름답기 위해 서로 똑같이 양보해서 음을 결정한다고 이종열은 피아노를 민주주의에 빗댔습니다.
[이종열/조율사 : 조율을 종교처럼 생각했어요. 일생을 바쳐서 연구할 수 있는 학문, 그렇게 생각했죠.]
(영상디자인 : 박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