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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라쇼몽…비단결 같은 삶'

입력 2019-03-12 21:46 수정 2019-03-1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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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한자로 읽으면 나생문(羅生門), 라쇼몽은 일본 헤이안 시대 수도인 교토 외곽문의 이름입니다.

당시 라쇼몽의 다락은 사람들이 가져다 버린 시체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교토에 전염병과 대기근이 몰아쳐서 굶고 병들어 죽은 사람이 넘쳐나게 되었는데 죽은 이들을 제대로 처리할 여력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이곳에 시체를 가져다 버리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남들도 다 그러니까".

이렇게 라쇼몽에서 퍼진 가장 치명적인 역병은 자기합리화를 위한 '거짓말'이었습니다.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역시 이 오래된 이야기에 주목해서 같은 제목의 영화를 제작했고 '라쇼몽 현상', 즉 동일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각자 자신의 입장에 맞춰 해석한다는 심리학적 용어마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억, 그 라쇼몽 현상이 가장 많이 벌어지는 곳, 바로 일본의 위정자들도 증명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곳은 바로 역사가 아닐까…

"미안하다고 사과 한마디라도 해주십시오"
- 조영대 신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지만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이거 왜 이래!"

미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민들이 폭도가 되고 자신은 오히려 희생자가 되어버린 기억의 조작.

어찌 보면 그의 한평생은 우리 현대사에 퍼진 라쇼몽 전염병의 숙주라고나 해야 할까…

"불순 세력이 들어와…이북에서 김일성이가 조종"
- 박희도/전 육군참모총장

"사격한 사실도 없는 걸…재판하는 게 납득이 안 된다"
- 허화평/전 비서실장

그가 왜곡해서 퍼뜨린 '라쇼몽' 바이러스는 곁에서 부귀영화를 함께 누린 자들과 더불어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고, 그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쇼몽 현상의 기원이 된 '라쇼'.

그 단어의 이름을 풀이하자면 '비단결 같은 삶(羅生)'이라는 의미라고 하죠.

가해한 자들이 긴 시간 동안 누려온 비단결 같은 삶과 그들이 짓밟아버린 그래서 결코 비단결일 수 없었던 세월…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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