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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1주기, '김정은 체제' 누가 뜨고 누가 졌나

입력 2012-12-09 13:11

장성택·최룡해·리설주 부상, 리영호·김정각 퇴장
"숙청·좌천 과정 거쳐 김정은 사람들로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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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최룡해·리설주 부상, 리영호·김정각 퇴장
"숙청·좌천 과정 거쳐 김정은 사람들로 교체"

김정일 1주기, '김정은 체제' 누가 뜨고 누가 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북한 권력층 내부에서는 많은 인사가 숙청 또는 좌천되고 대신 김정은의 인물들이 새롭게 부상하는 등 권력 서열의 부침이 진행됐다.

우선 김 위원장 사후 1년은 북한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분류되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온 기간으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의 매제였지만 한때는 '곁가지'로 분류돼 여러 번 좌천되기도 했던 장성택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뒤 그의 `후견인' 역할을 맡으면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장성택은 올해 8월 단독으로 중국을 방문해 국가수반급의 예우를 받고 지난달에는 노동당과 내각의 핵심 실세들로 구성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올해 들어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지난달 19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제1위원장이 기마중대를 시찰한 사진들을 내보내면서 장성택과 김 제1위원장이 똑같은 외투를 입고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발행했다.

북한 매체가 장성택이 최고지도자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내보낸 적은 이 때가 처음이며, 이는 장성택의 달라진 정치적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으로 꼽힌다.

김정은 체제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다.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동료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인 최룡해는 장성택의 최측근으로 오랫동안 청년동맹을 통솔했지만 1998년께 비리사건으로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비서로 좌천됐다가 2003년 노동당 총무부 부부장으로 재기했다.

이후 승승장구해온 그는 2010년 9월 김 제1위원장과 함께 군 대장 칭호를 받고 같은 달 열린 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비서, 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임명됐다.

최룡해는 올해 4월 군 차수로 승진하며 민간인 출신 첫 총정치국장에 임명돼 군부 내 `1인자'로 우뚝 섰으며 같은 달 열린 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돼 노동당 내 공식서열 2위의 자리에 올랐다.

또 김 위원장 사망 후 혜성처럼 등장한 김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는 올해 북한 파워엘리트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예능 영재학교인 금성제1중학교(과거 금성제2고등중학교)와 금성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했으며 은하수관현악단 가수로 활동하다가 김 제1위원장의 눈에 들어 결혼에 골인했다.

올해 7월 공식 등장한 리설주는 눈에 띄는 외모와 세련된 패션감각으로 첫 등장에서부터 눈길을 끌었고 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에 지속적으로 동반 참석하면서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최근엔 '임신설'까지 불거져 그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이들과 반대로 김정일 위원장 사후 숙청돼 권력 핵심부에서 멀어진 인물들도 적지않다.

작년 12월28일 평양에서 열린 김 위원장 영결식에서 김 위원장의 영구차를 호위하던 8명 중 민간인을 제외한 4명의 군부 핵심인사들이 1년이 지난 현재 모두 숙청되거나 현역 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영구차 호위 8인' 중 김 제1위원장을 제외한 민간인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김기남·최태복 노동당 비서였으며 군복 입은 파워엘리트는 리영호 당시 인민군 총참모장, 김영춘 당시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당시 총정치국 제1부총국장, 우동측 당시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숙청된 우동측은 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2009년 국방위 위원과 보위부 제1부부장에 오른 인물로, 그동안 부장이 공석이던 보위부의 수장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한 올해 4월 우동측이 돌연 경질되고 김원홍 인민군 대장이 국가보위부 부장에 임명됐다.

또 김영춘은 올해 4월 인민무력부장직을 김정각에게 넘겨주고 노동당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함경북도 주둔 6군단장 재임시 `6군단 사건(1995년 발생한 군사쿠데타 모의사건)'을 적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10월 군 차수로 승진한 인물이다.

김정은 체제의 군부 인사 `물갈이'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무엇보다도 리영호의 숙청이었다. 평양방어사령관을 역임하다 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2009년 총참모장에 전격 발탁된 리영호는 김 제1위원장의 군부 장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됐으며 김 제1위원장과 나란히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올라 한때 김정은 체제의 `2인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리영호는 올해 7월15일 당 정치국회의에서 갑자기 모든 직무를 박탈당하고 권부에서 사라졌다.

`영구차 호위 군부 4인방'중 가장 마지막으로 권력무대에서 하차한 김정각은 1992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2007년 총정치국 제1부총국장에 임명된 김정각은 병환이 깊었던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을 대신해 군부 인사권을 휘두르며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에 일조했다.

그는 올해 2월 군 차수로 승진했으나 4월에는 최룡해에게 총정치국 수장의 자리를 내주고 인민무력부장으로 전보됐다. 이 후 김정각은 지난 11월 김격식에게 인민무력부장 자리를 내주고 경질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7∼2009년 총참모장을 지낸 바 있는 김격식은 지난 2010년 황해도 일대를 관할하는 4군단장 재임 당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주도한 군부 내 대표적 강경파 인물로서 한때 상장으로 강등되기도 했지만 최근 대장으로 복권되면서 권력 핵심부로 진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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