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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입력 2018-12-13 21:51 수정 2018-12-1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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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도시는, 온통 그를 향해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모두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그를 보고 싶어 했으며 한밤에도 횃불이 밝혀진 철창을 찾아가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의 앙상한 갈비뼈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더욱 도드라져 보였지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단식광대'.

그러나 이것은 아예 허구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오랜 기간 단식을 하는 광대를 대중이 지켜보는 일종의 공연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타인의 허기짐과 고통을 관람하는 사람들.

카프카는 여기에서 착안해서 작품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굶고 있는 건가? 대체 언제까지 단식을 한 건가?"
- 프란츠 카프카 < 단식 광대 >

그러나 사람들의 호기심과 연민에는 유효기간이 있었는지, 반복되는 단식에 대중은 점차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고통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결국 작품 속 광대는 홀로 철창에 들어가 관객 없는 단식을 계속하게 되는 비극…

스물네 살의 청년이 컨베이어 벨트 사이에서 목숨을 빼앗긴 이후에 세상은 또다시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탄식과 애도, 문제를 분석하는 말들은 쏟아지는데…

정작 불편한 진실은 따로 존재합니다.

노동자의 죽음은 처음이 아니라는 것.

무엇이 문제인지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

단지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이 짧은 애도 기간이 지나면 카프카의 소설 속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진 대중들처럼 우리 역시, 조금씩 세상의 고통에 무감해지게 될까…

"고통 앞에서 수치심을 느껴라. 연민이란 참으로 게으르고 뻔뻔한 감정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몇 년 전 시인 진은영은 니체의 말을 인용해서 대안 없는 연민의 허무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 연민과 시혜의 언설이 난무하는 사회"
- 진은영/시인

청년의 죽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고 탄식하는 모두는 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시인은 그 감출 수 없는 수치심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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