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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나귀를 타고 가는 나폴레옹'

입력 2018-09-13 21:12 수정 2018-09-1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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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1800년 5월, 제2차 이탈리아 원정 당시를 그린 이 장면은 술병에도 인쇄됐을 정도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나폴레옹의 초상화이기도 합니다.

알프스의 가장 험준한 협곡을 넘는 영웅의 모습은 결연하고 날카로워 보이죠.

나폴레옹 역시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같은 그림을 여러 장 주문해서 유럽 각지에 보냈을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사진이 일반화되었지만 고귀하게 얼굴을 남기는 초상화의 전통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선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3부 요인과 역대 헌법재판소장과 검찰총장 정도가 자리에서 물러난 뒤 공식 초상화를 남긴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지금 시대에 있어서도 초상화는 권위와 존경의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마치 유럽의 중세, 공화국 이전의 귀족의 권위를 이어받은 듯 위엄 있게 걸린 그 역대들의 초상화들은.

그들이 본질적으로는 민중의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아래에 있으며, 그들의 상급자이자 임명권자는 민중이라는 민주 공화국의 원칙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그들만의 성역처럼 느껴지게도 하지요.

그들은 모두 자랑스러울까…

얼마 전 KTX의 해고승무원은 대법원 대심판정 앞에 걸린 전임 대법원장의 초상화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의미.

실제로 최근 대법원의 초상은 그리 자랑스럽지 못합니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일본에 강제로 빼앗긴 사법권을 되찾은 사법부 창립 70주년이 되는 날이라는데 전임 대법원장은 물론, 빈자리가 성성했던 우울한 기념식의 한편에선 위엄 있게 걸린 역대 대법원장들의 초상화만이 허허롭게 빈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죠.

앞서 보여드렸던 나폴레옹의 초상.

19세기 화가 폴 들라로슈는 나폴레옹의 과장된 이미지를 바로잡기 위해서 고증을 거쳐 다시 그 장면을 그렸습니다.

나귀를 타고, 협곡을 건너가던 조금은 초라한 듯 보이는 영웅의 초상.

실제로 그는 그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역사에 빛나는 초상만을 남기고 싶었겠으나.

신화와 포장이 벗겨진 역사는 지극히 날 것의 얼굴을 세상에 보이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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