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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시 달리는 '지하철 1호선'…김민기의 '요즘 생각'

입력 2018-09-13 22:04 수정 2018-09-14 02:25

'아침이슬' 탄생 비화 공개…"반지하방 미술작업실에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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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탄생 비화 공개…"반지하방 미술작업실에서 만들어"

■ 인터뷰의 저작권은 JTBC 뉴스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JTBC 뉴스룸 (20:00~21:20) / 진행 : 손석희

[앵커]

7-80년대 저항문화를 상징하는 노래이지요. 아침이슬. 그 후로도 한국사회 주요 변혁기마다 불렸던 이 광장의 노래를 직접 만들고 또 부른 목소리의 주인공. 극단 '학전' 대표인 김민기 씨를 오늘(13일) 모셨습니다.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지하철 1호선'의 연출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방송에서 이렇게 좀 뵙기가 힘든 얼굴인데, 오늘 < 뉴스룸 문화초대석 >에 특별히 나와주셨습니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새로운 얘기들이 오늘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안녕하세요.]

[앵커]

반갑습니다. 오늘은 제가 좀 긴장이 좀 됩니다. 사실 인터뷰할 때마다 긴장을 안 하는 건 아닌데 오늘 특별히 좀 긴장이 됩니다. 혹시 김 선생님은 긴장 안 되십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죽겠죠, 뭐. 이렇게 있는 게.]

[앵커]

그러신 것 같습니다. 조금씩 풀려갈 겁니다. 요즘 힘들고 어려운 뉴스들이 많아서 이렇게 모시니까 사실 한편으로는 많이 푸근하기도 합니다. 제가 기억하기에 한 10여년 전쯤에 대학로의 어느 주점에서 제가 우연히 한번 뵀었고 그리고 처음인데 혹시 기억하십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네, 기억합니다.]

[앵커]

얼핏 어떤 느낌이 드냐 하면 사실 여기 문화초대석은 많은 분을 모셨는데 오늘 저의 개인적인 느낌이랄까. 우리 대중음악사가 커다란 어떤 대하, 그러니까 큰 강줄기라면 그 발원지에 계신 분을 만나뵙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듭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건 너무 거창한.]

[앵커]

실제로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시간 이후에는 문화초대석은 그만 해도 될 것 같은…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러면 안 되죠.]

[앵커]

방송 인터뷰를 어렵게 결정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안 나오십니까?

Q. 그동안 언론에 잘 안 나온 이유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냥 우스갯소리로 저희들끼리 배우들을 앞것들이라고 그러고. 스태프들을 뒷것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뒷것들 두목쯤 되다 보니까 앞에 나서고 그러는 게 너무 힘들고 불편하여 몸에 맞지가 않고.]

[앵커]

그래도 지금 뒷것들이라고 표현을 하셨습니다마는 앞에 나서셔서 노래를 하시던 분 아닙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해 본 적은 거의 없어요, 음반만 내봤죠.]

[앵커]

그런가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네.]

[앵커]

공연을 하신다든가.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거의 없었습니다. 한겨레신문하고 겨례의 노래할 때 엔딩곡을 아침이슬을 불렀는데 그때도 공연장 맨 뒤 컨트롤부스에서 불렀습니다. 무대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앵커]

그럴 정도셨습니까? 그런 분이 어떻게 노래를 만들고 가수로서 활동하실 생각을 처음에 하셨습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가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앵커]

물론 미술 전공하시고.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목소리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그냥 노래를 만들어봤던 것뿐이죠.]

[앵커]

아니, 그런데 저는 이 목소리가 정말 좋습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너무 낮아요.]

[앵커]

아닙니다. 정말 듣기가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계시다고 저는 감히 생각을 합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고맙습니다.]

[앵커]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뺄 수 없는거고요. 그런데 사실은 오늘 아침이슬 이야기도 이따 해야 되겠습니다마는 좀 더 급한 이야기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 이미 지금 10년 만에 다시 무대 위에 올라 있지 않습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네, 올렸습니다.]

[앵커]

10년 전에 그것을 그만 두실 때, 즉 지하철 1호선을 내리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좀 의아해했습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찾아주시고 계셨는데 왜 갑자기 내렸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혹시 그 답을 지금 주셔도 됩니까?

Q. 탄탄한 공연인데 10년 전 중단한 이유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지하철을 처음 시작하고서 조금씩 아동, 청소년극을 같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 하고 같이 하다 보니까 아동, 청소년 곡들 몇 편이 쌓여가고 그렇게 되니까 지하철은 오픈런으로 가고 있고 그래서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선택을 해야 됐는데 그래서 지하철 1호선을 중단을 하고 아동, 청소년 극이 지금 더 급합니다라는 생각에 거기에 매달리면서 지금 10년을 왔습니다.]

[앵커]

그동안에 많이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손해도 많이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작정하고 한 건데요. 그 돈 계산이 안 되죠.]

[앵커]

작정하고 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10년 뒤에 다시 지하철 1호선을 올리실 때에는 아동, 청소년 그건 안 하시기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1991년에 학전 소극장을 열고 내일모레면 30주년이 되는데 그동안에 올려본 작품이 한 15편 정도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정신없이 막 늘어놓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이제 좀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되겠다 하는 생각에 맨 첫 작품이 지하철 1호선이었으니까 이것부터 좀 짚어보고 가야 되겠다, 그래서 좀 다시 시작을 해봅니다.]

[앵커]

그런데 왜 100회 한정 공연을 하신다고 제가 들어서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다음에는 또 아동, 청소년극도 해야 되고 그러니까. (또 그쪽으로 옮겨가시고?) 아니요. 그 극장이 하나이기 때문에. 옛날에는 극장이 둘이었으니까 한쪽은 지하철을 계속했고 그랬는데 이제 번갈아가면서 해야죠.]

[앵커]

그런데 100회 한정 공연을 하신다고 했지만 많은 분들이 여전히 사랑을 해주시고 계속 찾아오시면 그래도 100회로 그냥 칼같이 끝내버리십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지금은 열다섯 작품 전체를 정리를 해야 되니까 그것이 더 급할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에 또 몇 회 한정으로 또 올리고 그런 레퍼토리 시스템이니까 그런 식으로 올리면 되겠죠.]

[앵커]

그런데 또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왜 열다섯 작품을 꼭 정리를 하셔야 됩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정리를 해야지 지금 막 너무 어수선하게 그냥 검증 없이 막 흐트러만 놨으니까 작업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게 있을 겁니다. 어느 시점쯤에서는 다시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되겠다 그런 단계를 느낍니다.]

[앵커]

그런데 이제 10년 만에 올리는 재공연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IMF 시대를 얘기하고 있어요. 혹시 2018년의 상황을 담을 수 없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기도 하는데. IMF 시대가 갖는 어떤 특별한 상징성을, 그것 때문이신 건가요?

Q. '99년 버전' 그대로라는데…어떤 '상징성' 있나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상징성도 있겠지만 방금 말씀드린 대로 정리를 해야 되겠다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시절 것은 그 시절의 기록물로 그대로 남겨두는 게 좋겠다 그런 생각이.]

[앵커]

그렇군요. 그러면 먼 훗날 또다시 몇 년 뒤혹은 10년 뒤라도 좋습니다. 지하철 1호선이 다시 달리게 될 때 그때도 여전히 IMF 시절을 얘기하실 겁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 시기가 되면 전혀 다른 틀의 새 작품을 만들어야 되겠죠. 옛날 버전은 그냥 그 시절의 기록물로 남겨두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앵커]

아까 저희 강나현 기자가 리포트할 때 그 기사가 기억이 나는군요. 그러니까 IMF 시대로부터 우리가 꽤 오랜 세월을 거쳐왔지만 우리의 삶은 나아졌는가 하는 질문. 그런 것이 여전히 새로 올라가는 '지하철 1호선'에서도 담고 있는 정신인가 보죠.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서민들의 생활은 늘 고달프죠. 그렇게 크게 바뀔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앵커]

혹시 이 작품을 관통하는 어떤 주제를 잘 나타나는 대사라든가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소개해 주실 수 있는 게 있는지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중간에 서울역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곰보할매가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극중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어떤 정점으로 돼 있는 할매인데 그 할매가 부르는 노래 가사가 "그래도 산다는 게 참 좋구나 아가야" 그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속에서 버텨내는 어떤 그런 긍정적이라고 그럴까요. 그런 걸 대표하는 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앵커]

사실 지하철 1호선 하면 작품성도 물론 그렇지만 거기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지금 굉장히 대성한 배우들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설경구 씨, 김윤석 씨 아까 잠깐 나오기도 했습니다마는 황정민 씨도 있고 조승우 씨도 있고. 이번에 굉장히 많은 배우들이 공모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기준이 있습니까? 어떤 배우를 택한다라는.

Q. 그간 숱한 명배우 낳은 무대인데…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제가 우선 연극이나 뮤지컬 이런 걸 공부를 해 본 게 없기 때문에 우선 제가 백지 상태고 그리고 작품의 특성이 11명의 배우가 97개 배역을 소화해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배우가 어떤 특정 캐릭터의 빛깔을 너무 진하게 갖고 있으면 다른 배역으로 변신이 안 되겠죠.]

[앵커]

그렇군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1인 다역 때문에. 그래서 예전에도 늘 오디션 볼 때 항상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거의 백지 상태인 사람들을 많이 뽑았던 것 같아요. 그래야지 거기 새로운 빛깔이 얹혀질 수가 있으니까. 늘 그렇게 해왔던 것 같습니다.]

[앵커]

제가 사실 오늘 인터뷰 들어오기 직전에 우리 김민기 선생께서 '아침이슬'이 왜 탄생하게 됐는가를 오늘 처음으로 말씀해 주시겠다라는 얘기를 건네들어서 지금 사실은 그 질문을 드리고 싶어서 마음속에서 안달인데, 참으면서 지하철 1호선 얘기를 조금 더 한 다음에 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 원작자가 독일의 폴커 루트비히. 그리고 그 원작을 공연했던 것이 그립스 극단이고요.그런데 사실은 아동, 청소년극도 마찬가지고 그립스 극단에 나온 것들이 많습니다. 특별한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Q. 원작자와 독일 '그립스' 극단은 어떤 의미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처음에는 그런 관계성은 전혀 모르고. 90년대 초반에 학전을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인건비 아낄 겸해서 제가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 보니까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이런 것하고 전혀 다른게 독일 쪽 자료를 볼 수 있게 됐는데 그게 제 개인적으로는 70년대 초반에 제가 시작했었던 마당극하고 굉장히 흡사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그걸 좀 공부해 보겠다고 파고들다 보니까 지하철 1호선이 탄생을 하게 된 거고 그런데 그 극단을 그래서 이렇게 살펴보다 보니까 아동, 청소년 전문 극단이 더라고요. 그래서 지하철도 독일에서는 청소년극으로 돼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그 방면을 꼭 하고 싶었었는데 그래서 덜컥 물고 늘어졌죠.]

[앵커]

사실은 폴커 루트비히 씨가 저작권도 한동안 받지 않고 거의 이렇게 무료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많은 도움을 준 걸로 알고 있는데 저희 취재기자가 폴커 루트비히 씨를 잠깐 만나봤습니다. 그래서 김민기 씨와의 인연이랄까, 본인이 느끼는 감상이랄까. 아주 짤막하게 들어봤습니다. 함께 좀 듣겠습니다.

+++
 
  • 원작과 '지하철 1호선'의 차이는?

    [폴커 루트비히/연극 '지하철 1호선' 원작자 : 김민기 선생의 버전은 우리 독일 작품보다 정치적이고, 젊고, 현실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베를린 버전과 달리 해피엔딩도 없는데 이 모든 것이 나에겐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 저작권료를 받지 않는 이유는?

    [폴커 루트비히/연극 '지하철 1호선' 원작자 : 100번 공연의 저작권료를 받고선 충분하다 생각했다. 당연히 4000회까지 될 줄은 몰랐다. 그렇지만 알았더라도 당연히 그렇게 똑같이 했을 것이다. 김민기 선생의 극단이 경제적으로 힘들고 지원도 잘 못 받는 것을 알고, 그가 나에게 이 큰 성공을 안겨주어 고맙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민기 대표의 노래를 아는지…

    [폴커 루트비히/연극 '지하철 1호선' 원작자 : 유명한 '아침이슬'도 그를 위해 최대한 독일어로 번역해, 그가 베를린에 왔을 때 우리 극단 배우들이 그를 위해 직접 독일어로 '아침이슬'을 불러준 적도 있다.]


+++

[앵커]

감동적인 장면이네요. 독일어로 들은 '아침이슬'은 어떠셨습니까?

Q. 배우들이 독일어로 부른 '아침이슬' 느낌은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무반주 아카펠라였는데 난생처음 듣는 깜짝 그런 저한테 사전에 얘기도 안하고 깜짝쇼를 했는데, 전통적인 서양 교회 음악 아카펠라. 전형적인 그런 편곡이었더라고요. 그래서 내용은 가사 번안 폴커 선생이 거의 비슷하게 하셨는데 크리스마스 캐럴인가 그렇게 처음 깜짝 놀랐어요.]

[앵커]

그렇군요. 제가 속에서 안달이었던 질문을 이제 드리겠습니다. '아침이슬'은 어떻게 해서 태어났습니까? 아마도 오늘 처음 말씀해 주신 것 같은데.

Q. '아침이슬'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아무래도 아침이슬 얘기를 꺼내실 것 같아서 그래서 이 말씀 드리려고. 그런데 이 얘기는 어디서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얘기라서.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집이 정릉에서 수유리 우이동 쪽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가 야산에 있었고 무덤도 몇 개 있긴 있었는데 반지하창고. 옛날에 연탄들도 갖다놓고. 거기를 처음으로 제 개인 작업실로 쓸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 밤에 늘 그림 작업 하다가 이 작업이 하다 보면 막히잖아요. 막히면 기타 잡고 노래 만들고 그러다가 또다시 그림 작업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왔다갔다 했었는데 밤에 기타 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없고. 그런데 한밤중이었는데 그때 그림 작업이 막혀서 노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침이슬이었는데 가사를 '그의 시련일지라'라고 써놨는데 거기서 음악이 더 진행이 안 되더라고요. 꽉 막혀서 이제 화성이건 멜로디건 더 나아가지 않아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나의 시련'으로 바꿔봤어요. 그러니까 아마도 그의 시련이었을 때는 예수나 석가 이런 성자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그런 진행이었을 텐데. 그런데 나의 시련으로 바꾸니까 금방 다 풀리더라고요, 끝까지.]

[앵커]

그다음에 나 이제 가노라로 진행이 되지 않습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래서 '그의 시련'에서 '나의 시련'으로 자리 바꿈이 그게 그 당시 젊은이들한테 그 부분이 그렇게 읽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많이 부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얼핏 해 봅니다.]

[앵커]

애초에 그러면 아침이슬이라는 곡을 나는 이렇게 만들겠다라고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미술작업이 막히면 노래로 가서 만들어보고 다시 미술로 왔다가 그림으로 갔다가 다시 노래로 가면서 그렇게 단절, 단절된 상태에서 곡이 끝내는 완성이 되는 그런 단계군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림 작업도 마찬가지죠. 처음부터 어떤 구도를 해 놓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텅 빈 그 캔버스에서 처음 시작하는 거잖아요. 노래 작업도 저한테는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앵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올라'는 그런 가사는 그러면 아까 말씀하실 때 수유리 우이동 그쪽의.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야산에 있는 무덤이 그런 걸로 보였으니까 그건…]

[앵커]

그것 때문에 금지곡도 됐습니다. 개사도 요구받았고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웃기는 얘기죠.]

[앵커]

지금은 그냥 '웃기는 얘기' 다섯 글자로 요약을 하셨습니다마는, 그 당시에는 사실 그것이 크게 우리를 지배했었는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침이슬이라는 노래가, 물론 너무나 많은 좋은 곡들을 가지고 계십니다마는 가을편지, 친구, 봉우리. 봉우리는 저도 저희 엔딩곡으로 냈었습니다. '철망 앞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셀 수 없는 좋은 명곡들을 가지고 계시지만 아침이슬이 주는 부담감에서 한때 그 부담감을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해방이 되셨습니까?

Q. '아침이슬'을 평생 꼬리표처럼 달고 사는데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부담감이랄 건 없고 워낙 옛날 얘기고 근 50년 전 얘기고 그리고서는 한참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러다가 87년인가 한 17년 만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걸 처음 봤죠. 처음 봤는데 그전에는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 봤는데 워낙 많은 사람이 부르다 보니까 저도 군중 속의 한 사람이었지만 아무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지만 고개를 못들겠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 절절하게 이렇게 부르니까 그럼 저 사람들 노래지. 그리고서는 또 다 잊어버렸습니다. 부담이라고 할 것도 없고.]

[앵커]

그렇군요. '철망 앞에서'의 경우에는 사실 그렇습니다. 요즘 남북관계가 가다 서다 조금 하는 것 같습니다마는 여러 가지 그런 상황 때문에 저도 그것도 주목해서 엔딩곡으로 내기도 했었는데.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봤습니다.]

[앵커]

허락도 없이. 어떤 상황에서 그 곡을 만들셨습니까?

Q. '철망앞에서'는 언제 어떤 현장 그렸는지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꽤 늦게 만들었죠.]

[앵커]

간주 부분은 굉장히 현대적입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노래는 다 잊어버리고 살다가 88올림픽 직후인가 그때 짧게 남북 무슨 공연단 교류 같은 게 있었습니다. 북한 공연단이 예술의전당에 와서 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때 군사정부였었는데 의외로 저한테 남쪽에서 올라갈 공연단의 구성을 좀 해 달라고. 그래서 대의는 대의니까. 그런데 구성을 짜다 보니까 엔딩곡이 하나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만들어봤던 겁니다.]

[앵커]

안 그래도 엔딩곡에 딱 어울리는 곡이기는 합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런데 곡이 그렇게 큰 울림이 없어서.]

[앵커]

저는 굉장히 울림이 있어서 두 번이나 틀었는데. 그때 군부 정부에서 그렇게 요청을 했군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노태우 정부 때죠. 89년도인가.]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그 전에 사실은 군가도 지으셨습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 물론 이것은 나중에 이제 소위 운동권 가요가 되기도 했습니다마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런데 그건 군가라고 할 수가 없는 게 반주만 스네어드럼이 들어갔을 뿐이지.]

[앵커]

지금 듣고 있습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내용은 군인의 넋두리죠. 그런데 지난번 현충일 때 최백호 씨가 부르는 걸 봤는데 군인의 날에는 안 맞는 노래잖아요. 현충일이기 때문에 좀 연결을 지으려면 지을 수도 있겠다.]

[앵커]

결국 이게 금지곡이 됐습니다, 그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금지곡이 됐죠.]

[앵커]

군가로 지어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지어주셨으니.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군가로 지어달라는 게 아니었고 그때 전방 부대에서 군 생활할 때인데 정년퇴임 앞둔 탄약 선임하사가 있었어요. 상사님이었는데 자기 얘기를 다 들어달라고. 그래서 그 상사님 넋두리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급속하게 확 퍼져나가니까 아마 국방부에서 군 사기 저하다 그래서 금지를 시켰을 텐데 재미있는 걸 하나 봤는데 80년 광주 때 군에서는 금지곡으로 돼 있을 때일 텐데 뉴스에 슬쩍 지나가는 장면인데 진압군이죠. 계엄군, 계엄군이 저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고.]

[앵커]

이 노래를?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네. 살짝 들렸어요.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이 시위대가 저걸 투사의 노래로 부르더라고요. 그러면서 그게 싹 오버랩이 됐는데 그건 방송국 사람들도 모를 거예요. 저는 들리죠, 그게. 그래서 노래라는 게…]

[앵커]

아이러니한 그런 역사의 한 장면이었군요.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노래라는 게 참 묘한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앵커]

그러게요. 군에 계실 때 카투사로 복무를 하시다가 거기서 또 노래를 하나 부탁을 해서 '식구 생각'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그것도 불온적이어서 결국은 어디 군대도 다른 데로 쫓겨나시고 그런 기억도 있다고.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것도 전방부대에 있을 때 그때는 아까 그 '늙은 군인의 노래'는 만든 동기나 만든 과정이나 그야말로 소박한 거죠. 그런데 그때가 대마초 이런 거로 TV가 그냥 클래식 음악만 방영하고 그럴 때일 거예요.]

[앵커]

맞습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래서 중앙정보부에서 전방 보안대 통해서 와서 노래 만들라고. 그래서 만들었는데 자기네들 입맛에는 전혀 안 맞아서.]

[앵커]

안 맞는다, 어찌 보면 김민기 선생께서는 그냥 본인의 생각대로 소박하게 만든 노래들이 시대적 상황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창이 되고 칼이 돼서 본인한테 날아왔던 그런 기억들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시간은 많이 오버됐다고 지금 안에서 저한테 그러는데요. 이제 좀 풀리시는 것 같기 때문에 제가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는 것 같고요. 한두 가지 질문만 더 드리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곡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셨는데 사양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Q. 세월호 관련 음악, 작곡 제의 있었는데…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 이전에도 쭉 만들어봤던 노래들이 어떤 의도, 어떤 기획, 계획 하에 이렇게 만들어본 그런 체질이 아니다 보니까 어떤 의도로 이렇게 해 달라 그랬을 때. 물론 정말 가슴 아픈 그런 일이지만 그것이 제가 그 작업하는 문법하고는 맞지 않은 것 같고.]

[앵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런데 다만 고등학교 때 만들었던 그 노래가 세월호 장면 볼 때 그 노래가 떠올랐어요. 그런데 그때 제 심정하고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그걸 쓰라고 했었던 거죠.]

[앵커]

그렇군요.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아침이슬을 빼놓은 김민기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냥 함께 같이 살아가는 늙은이죠, 뭐. 그걸로 족하지 않겠습니까?]

[앵커]

더 여쭙지 않겠습니다. 정답이신 것 같습니다. 감히 제가 정답이다 아니다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마는. 오늘 특별한 걸음에 깊이 감사드리겠습니다.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수고하셨습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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