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단독 | 탐사플러스] 지원자에 작품포기 종용…순수예술 '정치검열' 의혹

입력 2015-09-09 22:02 수정 2015-09-09 22:09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정부는 매년 수백억 원을 들여 순수예술 창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선정된 예술인들은 공인된 기관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지요. 그런데 주관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가 정치적 이유로 지원자에게 작품 포기를 종용했던 사실이 JTBC 취재로 확인됐습니다.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문화계 이른바 '정치검열' 현실을 나타내주는 건데요, 강신후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연극 작품에 최대 2억6000만 원까지 지원하는 '창작산실'. 이를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는 5명의 심사위원들을 통해 지난 4월, 8개의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그런데 선정자 가운데 연출자 박근형 씨가 돌연 제작을 포기했습니다.

박씨는 2010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쟁쟁한 작품으로 주목받아왔습니다.

그런데 박씨의 포기가 짜여진 각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박근형 씨를 포함해 8명을 선정했는데, 문예위에서 박씨를 빼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창작산실 심사위원 : 문제는 세 작품이 문제인데 박근형만 빼주면 나머지는 봐주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심사위원 전원이 그건 말도 안 되고, 우린 그렇게 할 수 없다…]

문예위가 문제 삼은 건 박씨가 2년 전 연출한 작품 <개구리>.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극 중 인물 풍랑이 한 대사입니다.

대사에서 '수첩공주'는 대통령을 '시험 컨닝'은 국정원 대선개입을 빗대며 현정권을 비판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국립극단이 기획한 작품이어서 논란이 더 커졌습니다.

[김기란/연극평론가 : 굉장히 날 것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 '개구리' 였다고 생각하고요. 그 외 다른 작품들은 그렇지는(정치적이지) 않습니다.]

심사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문예위 직원들이 박 씨를 직접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근형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 저보고 사실은 먼저… 제가 자진해서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해당 직원들은 박 씨를 만난 건 인정했지만 포기를 강요한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의 의사를 전달했을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박 씨를 탈락시키고 싶었지만 연극계 주요 인사인 박 씨의 작품을 배제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요.

창작산실 당선작 발표가 두 달 가까이 지연되자 문예위는 지난 6월 18일 오전 10시 심사위원 5명을 이곳 예술가의 집으로 소집합니다. 문예위 직원 2명도 배석했습니다.

취재진은 당시 직원들과 심사위원들이 주고받은 녹취파일을 입수했습니다.

이 USB에 바로 당시 오고간 대화가 들어있는데 한번 들어보시죠.

[심사위원 A : 어쨌든 그(박근형) 작품을 뽑았단 말입니다. 근데 이제 어떤 이유로 우리가 안 뽑는 걸로 한다. 저는 그게 제일 견딜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문예위 직원 A : 박근형 연출가의 개구리라는 연극. 그 작품이 포함된 발표를 할 수가 없는 것이죠.]

박씨의 예전 작품을 문제 삼자 심사위원들의 한탄은 계속됩니다.

[심사위원 B : 우리는 그러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심사위원 C : 그러니깐 5공화국도 아닌데 우리가…]

[직원 A : 5공화국 때나 유신 때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문예위 직원도 정치적인 이유라고 인정합니다.

[직원 B : 정치적인 이유일 것이다 하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거예요.]

박씨가 탈락되지 않으면 다른 당선작들도 지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직원 A : 제가 아는 위원회의 생각은 계속 (다른 작품도 지원 못 받고) 11월 달까지 갈 겁니다.]

결국 심사위원을 설득하지 못한 문예위 직원들이 박씨를 만난 셈입니다.

박씨는 문예위 직원들이 윗선이 있다고 털어놨다고 말합니다.

[박근형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 청와대에서 하는 거예요. 그 직원들이 저한테 다 이야기했어요. 저는 그 사람들이 불쌍해요. 공무원들. 문화예술 공무원들]

비단 연극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심사위원/문예위 지원사업 : 문화관광부 그리고 내부적으로 그 위에서부터 이미 기본적인 어떤 것들이 전해져 내려온대요. 그런 일들이 지금 연극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우리 근대사에서 부끄러운 유산으로 남은 사전검열, 그 그림자가 다시 문화계에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둘리도 금서가 될 뻔했다?…9월 첫 주 '금서읽기주간' 야, 포털 문제제기한 여에 발끈…"지금이 군부독재시절인가?" 문재인 "국정 교과서 추진, '유신독재 향수' 때문" 여당,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논란…야당·학계 반발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