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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피해자 고통의 기록서…'참고문헌 없음'

입력 2018-02-01 21:45 수정 2018-02-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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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원하는 바는 여성이 아닌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제 제게 온 메일의 한 구절입니다.

그는 가느다란 체구였지만 단단한 심성을 가졌고 늘 세상의 따뜻한 순간들을 담아내고 싶어 하는 사진작가 지망생이었습니다.

그는 2013년의 어느 날 이후에 성폭력의 피해자가 됐습니다.

오랜 고심 끝에 그가 자신의 아픔을 세상에 드러내 보인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인 2016년…

돌아온 것은 가해자로부터의 명예훼손 소송이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당시는 문학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서 예술계 전반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세상에 나섰던 시기였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피해자와 그의 지인들에게
보복성 고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괴로움에 자살을 시도한 사람까지…
그 모든 피해는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대다수는 도리어 가해자로부터 보복성 고소를 당했고, 지금도 그 지난한 싸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담아내고 싶어 했던 사진작가 지망생…그 역시, 아픔을 치유 받기는커녕 지금껏 변화가 보이지 않는 나날의 연속일 뿐입니다.

"저는 그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별했고 그들을 사랑하는 저의 마음과도 이별했습니다 "

더구나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니, 예전보다 더욱 활발히 활동하는 가해자의 근황.

그런 가해자에게 한없이 관대해 보이는 세상의 분위기였습니다.

며칠 전 저희에게 똑같은 얘기를 해준 사람이 있었지요.

"까마득한 터널 안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8년의 고뇌 끝에 마침내 터널을 빠져나온 검사 서지현은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터널 안에 갇혀 있는 또 다른 세상의 서지현들.

제게 메일을 보낸 사진작가 지망생…그는 저의 학교 시절 제자였습니다. 

1년 전 그가 고통 속에서 저를 찾았을 때 남겨주고 간 책… < 참고문헌 없음 >

고립되었던 개개인이 모여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기록서… 

그들은 말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서사를
우리가 직접 쓸 것입니다.
지금은 당신이 우리의 서사를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 이성미 <참고문헌 없음>


그러나 저희는 귀담아 듣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불거진 시기는 2016년 10월, 공교롭게도 세상에 태블릿 PC가 등장했던 그 시기와 맞물려 있었고 거기에 집중해야 했다는 변명만으로 저희는 정작 같은 시기, 봇물 터지듯 쏟아진 피해자들의 아픔을 뒤편으로 제쳐놓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제자로부터 받은 메일에 대한 답장은…아직 쓰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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