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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일당 9천 원' 폐지 줍는 노인들의 하루

입력 2013-11-14 08:09 수정 2013-12-2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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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수거 나서는 노인 100만 명
"자녀에게 버림 받은 것 증명해야 정부 지원…사실상 불가능"

[앵커]

폐지를 유모차에 싣고 가다 후진하는 차에 치여서 크게 다친 할머니 이야기, 어제(13일) 전해드렸었죠. 이렇게 폐지를 모으려다가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이는 노인들, 적지 않습니다. 이제 날씨까지 점점 추워지는데요.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버는 돈이 많아야 9,000원이라는데, 저마다 사정이 딱합니다.

오늘 긴급출동에서는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사연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난 7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골목.

후진하는 트럭 뒷바퀴에 폐지가 실린 유모차, 그리고 폐지를 모으던 여든 여섯의 박 모 할머니가 끼어 있습니다.

트럭 기사는 사정을 모르고 계속 후진을 시도하다가 뒤늦게 차량을 빼냅니다.

[박성삼/최초 신고자 : 고물상이 있다 보니까 파지를 주워서 거기다 파시는 거예요. 트럭 타이어 바퀴가 이렇게 할머니 발 쪽으로 (밀고 올라갔죠.)]

다행히 박 할머니는 수술 끝에 생명은 건졌지만 아직도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폐지를 주우러 거리로 나서는 노인들이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넘습니다.

[김영광/자원 재활용 연대 사무총장 : 전국에 한 140만 명 정도의 노인분들이 저희 고물상을 이용하고 (폐지를 팔고) 있으십니다.]

리어카 안에는 새벽부터 모은 폐지가 가득 쌓여 있지만 고물상에 팔아서 버는 돈은 하루에 1만 원이 안 됩니다.

[정금례/서울 삼전동 : 잘 해야 그저 9000원, 8000원… 100kg 나가야 9000원.]

[박순여/서울 삼전동 : 어저께 그렇게 실어서 (고물상에) 갔는데 2700원 주더라고요. 힘들어요. 사는 게….]

올해 여든 다섯의 권분남 할머니는 4년째 폐지를 모으며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폐지를 줍기 위해 위험천만한 도로를 건너는 권 할머니.

[권분남/서울 삼전동 : 오다가 살짝 사고났는데, 이렇게 엎어졌다가 아픈지도 몰랐는데 허리도 아프고….]

할머니는 이른 새벽부터 하루 8시간이 넘게 폐지를 찾아 거리를 돌아다닙니다.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 지병까지 앓고 있지만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분남/서울 삼전동 : 거기 갔으면 좋겠어. 요양원. 그것도 돈이 들어가야 된대요. 그래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사는 데까지 살래요.]

이렇게 한 달 동안 폐지를 모아 버는돈 15만 원이 할머니의 유일한 수입.

오늘도 어렵사리 모은 폐지와 함께 물품 수집업체를 찾았습니다.

[권분남/서울 삼전동 : (얼마 버셨어요?) 2000원 벌었잖아요, 2200원. 이거 가져와서 2200원. 어떨 땐 두 번도 하는데 오늘은 한 번 밖에 못했어. (폐지가) 없어.]

힘든 몸을 이끌고 도로 위에서 쉬는 모습이 익숙해 보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할머니는 기초생활 수급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자녀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권분남/서울 삼전동 : 신청을 몇 번을 했어요. 몇 번을 했는데 딸이 괜찮게 산다고 안 된대요.]

자식이 셋이나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

이런 경우 할머니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임을기/보건복지부 노인정책과장 : 부양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지방 생활보장 위원회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정말 연락 두절인지 이러한 걸 조사를 해서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으실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가족관계가 단절되고 자녀에게 버림 받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기철/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노인분들이 그걸 입증하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거고, 노인분들이 자기가 말한다고 공공기관이 인정을 해주는 게 아니니까 사실상 입증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특히 다른 것보다도 자녀에게 '나는 우리 부모님을 부양하지 않는다.' 라는 확인을 받아오라는 얘기거든요. 그게 일반 정서상 불가능하죠.]

[권분남/서울 삼전동 : 혼자 외톨이가 되면 (그때) '자식도 없고 나 혼자 있다.' 이래야지. 자식이 있는 걸 왜 없다 그래? 내가 그거 안 받으면 (안 받았지) 자식하고 연은 못 끊어요.]

우리나라 노인 빈곤률은 OECD 국가 중 1위.

서류상 부양자가 있다고 해서 기초생활 수급액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정금례/서울 삼전동 : 눈 오고 하면 (폐지 줍는 일) 못하지 뭐….]

[박순여/서울 삼전동 : 제 맘이 아프지요. 마음이 아플 뿐이지 뭐. 어찌할 도리가 없잖아요.]

[권분남/서울 삼전동 : 내가 죽을 때 어디 가서 죽나… 그게 걱정이요. 그게 걱정이야….]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거리 위의 노인들.

다가올 겨울이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글 : 황승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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