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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밥 먹고 버텨도 탈락"…코로나 속 채용사기 기승

입력 2020-12-16 22:17 수정 2020-12-1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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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런 솔깃한 광고가 올라왔습니다.

[신입 캐디를 모집합니다. 체계적인 무료 교육과 기숙사 제공으로 부담이 없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교육 첫날부터 돈을 내라고 하더니 교육이 끝나고 다 취업을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오늘(16일) 나온 자료를 보면 지난달 실업자 수는 96만 명을 훌쩍 넘겼습니다. 1년 전보다 10만 명 넘게 늘었습니다. 코로나19 탓이 큽니다. 이런 위기 속에도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으려는 절박한 심정을 노린 취업 사기까지 지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먼저 강희연 기자입니다.

[기자]

골프장 캐디를 구한다는 광고입니다.

무료 교육, 기숙사 무료 제공.

코로나19 덕에 더 부각되는 직업이라며, 두 달만 교육 받으면 캐디로 100% 취직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구직자들은 이런 광고를 보고 제주도의 한 골프장에 모였습니다.

[구직자 A씨 : 형편이 어렵다 보니까. 고소득이라는 거 보고.]

[구직자 B씨 : '여러분만 열심히 하면 다 (채용)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고. 우리가 낙오만 안 되면 이 골프장에서는 다 취업할 수 있구나.]

하지만 교육 첫날 받은 서약서에는 240만 원을 내야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강사료와 숙식비 등에 쓰인다는 겁니다.

[구직자 B씨 : 내용이 다르네? 막상 와서 계약서는 쓸 수밖에 없는, 이미 짐 싸고 다 왔고. 큰 마음 먹고 다 왔는데. 돈은 벌어야 되고.]

협박으로 느낄 만한 말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습니다.

[캐디 교육기관 교육자 (녹취) : 여기 진짜 (업계가) 작아. 근데 (그만둔) 걔들 골프장 못 들어가. 한 시간 안에 전국 골프장에 걔들 이름 다 날아갔어, 사진까지. 캐디 받지 말라고.]

하루 6시간 넘게 일했지만, 일당은 만원뿐이었다고 합니다.

[구직자 C씨 : 식사는 컵밥 많이 먹었어요. 그때는 (돈이) 많이 부족했어요.]

취업 100%라고 했지만, 교육생 중 상당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구직자 C씨 : 우리 교육받으면 다 제주도에 취직하는 줄 알고 왔거든요. 여기까지 멀리 왔는데. 억울했어요.]

취재진은 해당 광고를 올린 캐디 교육 기관을 찾아가 봤습니다.

이론 교육을 듣는 2주만 무료였다고 해명합니다.

[캐디 교육기관 교육자 : 저희도 자원봉사자가 아니잖아요? 다 서명을 받아놓고 하고 있어요.]

하지만 구직자들은 "철저히 을의 입장에서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구직자 A씨 : 저는 돈이 급했던 사람이에요. 생활을 어떻게 해요, 만원씩 받고. 속으로 끙끙 앓았었죠.]

한 취업포털 설문조사에서 구직 경험자 3명 중 1명이 취업 사기를 당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중 절반은 월급과 같은 채용 조건이 거짓이거나 과장됐다고 했습니다.

거짓 광고로 노동자를 모집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골프장 캐디 같이 특수고용노동자를 구하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들이 법적으론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이기 때문입니다.

200만 명에 이르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취업 사기에도 더 쉽게 노출되는 겁니다.

[권두섭/변호사 : 개인이 그냥 회사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건 쉽지 않잖아요. 법적인 보호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 정부 취업사이트도 '구멍'…구직자 울린 '워크넷'

[앵커]

비슷한 일은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사이트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분명 얼마의 연봉을 주겠다고 광고를 했는데 면접 당일에 "그 돈을 못 주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부의 구직사이트라 더 믿고 기댔던 사람들은 또 한 번 절망했습니다.

계속해서 강나현 기자입니다.

[기자]

[A씨 : 너무 힘들게 4개월 동안 구직생활 했었기에 순간 고민이 됐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A씨는 고용노동부 취업사이트 워크넷을 보고 이력서를 냈습니다.

연봉 2200만 원 이상, 정규직이란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면접 날 말을 바꿨다고 합니다.

[A씨 : 연봉 2200 이상이라고 했는데 2100이 아니면 줄 수 없다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올 4월, "회사를 나가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연봉 계약서인 줄 알고 서명한 서류에 계약 기간이 적혀 있단 겁니다.

[당시 회사 대표 : 정규직으로 입사했어도 내가 계약서를 이렇게 썼잖아요.]

해당 회사는 취재진이 계약 내용에 대해 묻자 "기밀이라 확인해줄 이유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연봉이나 상여금을 속이거나, 정규직이라고 광고하고 계약직으로 쓰는 등 워크넷 피해사례는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워크넷을 포함해 취업사이트에서 거짓 취업광고로 피해를 봤다며 신고한 건수는 2013건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워크넷 피해 사례를 따로 파악한 적도 없는 실정입니다.

현재 워크넷에 등록할 때 확인하는 것은 최저임금 기준을 지키는지 정도입니다.

[지자체 일자리센터 : (워크넷이) 알선만 해드렸지 구인업체와 구직자 면접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서…]

실제 광고대로 취업이 이뤄졌는지 감시하거나, 사후 관리하는 절차는 따로 없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고용 정보가 수십만 건에 이르다 보니, 일일이 사후 관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정부를 믿었던 구직자들은 이런 설명이 무책임하다고 말합니다.

[A씨 : 당연히 기대감이 있었어요. 정부에서 하는 거기 때문에 뭔가 더 법을 잘 지킬 거 같은 느낌? 공고를 보고 회사를 지원하게 되는데 그게 맞지 않는다면 신뢰할 수가 없잖아요.]

(영상취재 : 이동현 신승규 / 영상디자인 : 신재훈 신하림 / 영상그래픽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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