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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망 목숨 값은 정찰제…현장 간 유족에겐 "무단 침입 나가라"

입력 2020-12-09 22:08 수정 2020-12-0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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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생전 모습입니다. 내일(10일)이면 김용균 씨가 세상을 떠난 지 꼭 2년이 됩니다. 2020명,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입니다. 매일 6명이 일터로 나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겁니다. 당장 오늘도 포항제철소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하지만, 책임자에게 따라오는 처벌은 겨우 벌금 수백만 원인 경우가 많습니다. 더 큰 책임을 지도록 더 강하게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기국회는 오늘이면 끝이 나는데, 아직 이 법은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됐습니다. 숨진 노동자들의 유족들은 "174석인 여당의 의지가 없다면, 이 법은 영원히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며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임지수 기자입니다.

[기자]

스물다섯 살 김재순 씨는 지난 5월, 광주의 폐기물 공장 파쇄기에 몸이 끼여 숨졌습니다.

안전장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파쇄기에 걸터앉아 위험하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죽음을 고인의 탓으로 몰았다고 합니다.

[김선양/고 김재순 아버지 : 재순이 그 사건 때문에 자기네들도 힘들다고…이 양반이 지금 나한테 와서 이게 할 소리인가?]

이 회사에선 6년 전에도 파쇄기에 끼여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당시 법원이 내린 벌금은 800만 원이었습니다.

[김선양/고 김재순 아버지 : 안전 설비를 갖추는 돈보다 그냥 다치거나 죽으면 벌금이 또 적으니까 그것만 내면 되니까.]

스물다섯 살 김태규 씨는 지난해 4월 수원의 한 공사장에서 일하다 숨졌습니다.

뒷문이 열린 불법 승강기에서 일하다 떨어졌습니다.

[김도현/고 김태규 누나 : 사람 목숨이 얼마나 하찮게 여겨졌으면 그 몇만원짜리 추락방지망 안전망 하나도 안 해서 사람을 죽게 만듭니까.]

유족은 안전장치가 없었단 증거를 모으기 위해 직접 사고 현장을 돌다 내쫓겼습니다.

[회사 관계자 : 이미 다 끝난 거 아니에요? (뭐가 끝났어요?) 무단침입이잖아요. 나가시라고요.]

지난 6월 법원은 안전관리책임자인 현장 소장에게 징역 1년, 회사에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회사 대표는 재판에 넘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손익찬/노동법 전문 변호사 : 노동자가 죽어도 벌금 몇백만원 정도로 끝나고 이렇게 되니까 '목숨 값 정찰제'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생기면,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대표이사에게 강하게 책임을 묻게 됩니다.

사망 사고가 일어날 경우, 3년 이상 징역이나 5000만 원 이상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2020명, 매일 6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정의당과 산재 사망 피해 가족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이번 정기 국회에서 처리하라"며 국회에서 사흘간 농성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여당의 미온적인 태도로 이 법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강은미/정의당 원내대표 : 국민의 힘이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든지 도저히 국민의 여론이 이게 뭐 적절하지 않아서 하기가 쉽지 않다든지 이런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174석을 갖고 있는 여당의 의지가 없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임시 국회에서도 통과가 어렵습니다.

■ '김용균 2주기' 현실은 그대로…사고현장 영상 보니

[앵커]

기업에 더 강한 책임을 지워야 하는 이유는 노동 현장이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2년 전에 김용균 씨가 숨진 발전소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희가 확보한 영상을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어서 강희연 기자입니다.

[기자]

컨베이어 벨트 아래로 석탄 부스러기가 끊임없이 떨어져 나옵니다.

고 김용균 씨는 이 부스러기를 직접 치우다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였습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컨베이어 벨트 아래로 몸을 집어넣고, 위험한 작업을 합니다.

[화력발전소 노동자 : (청소 설비) 그런 게 없어요, 거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삽으로 다 퍼내야 하는데…아무리 삽으로 긁어도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히 있잖아요.]

안전펜스 하나 없이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지난달 28일 화물차 운전기사 심장선 씨는 4m 높이 화물차 위에서 떨어져 숨졌습니다.

위험작업은 2인 1조로 해야 하지만, 혼자 석탄재를 화물차에 싣던 중이었습니다.

김용균 씨 사망 이후 정부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리고, 또 다른 죽음을 막겠다며 22개 권고안을 내놓았습니다.

권고안에는 응급 상황을 대비해 발전소에 전담 의사를 둬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고 심장선 씨 아들 : 다칠 수 있겠다는 걸 판단해서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안 했던 거에 대해서 정말 너무 화가 나고…]

노동계는 특조위 권고안 22개 중 이행된 건 단 2건, 이행률은 약 9%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산업통상부는 컨베이어벨트 안전펜스 설치 등 10개가 완료됐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현장 영상을 확인한 결과, 정부 설명과 달리 컨베이어벨트 안전 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권영국/전 특조위원 : 크게 달라졌다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이기도 해요. (권고안 이행이) 사실상 상당히 겉핥기 또는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VJ : 최준호·안재신 / 영상디자인 : 박경민·오은솔 / 영상그래픽 : 한영주·박경민 / 인턴기자 : 김아라·신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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