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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어른'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년…그리운 '빈자리'

입력 2019-02-15 10:20 수정 2019-02-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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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바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불렸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지 10년이 되는 날이 바로 내일(16일)입니다. 당시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몰린 사람들이 40만 명, 명동의 기적이라고도 했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목소리를 높였던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5·18 민주화 항쟁입니다.

강나현 기자입니다.

[기자]

[김수환/추기경 : 광주 시민과 함께 어떤 의미로 싸우고 싶은 그런 충동까지 가질 만큼 그랬으니까]

김수환 추기경은 가장 마음 아팠던 기억으로 5·18 민주화 항쟁을 꼽았습니다.

시대의 불의에 마주하면서 목소리를 냈습니다.

[김수환/추기경 (1987년 6월 항쟁 당시) : 당신들은 나를 밟고 우리 신부들도 밟고 수녀들도 밟고 넘어서야 학생들하고 만난다.]

모두의 어른이기도 했습니다.

이주노동자나 성매매 여성, 재개발로 갈 곳 잃은 사람들, 사회가 외면한 사람들을 찾으면서도 늘 미안해 했습니다.

[김수환/추기경 (1999년 서울 장지동 화훼마을 방문) : 여러분을 찾아뵌 것이 어떤 의미로는 너무 늦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고해성사를 하러 온 신도에게 몰래 생활비를 건넸고 가정방문을 다니며 일자리를 찾아줬습니다.

마흔 일곱에 한국 교회 최초이자 최연소 추기경이 됐지만 빛나는 자리보다 평생 가난하고 약한 이들 곁을 향했던 김수환 스테파노.

사랑이 뭔지 평생 보여줬으면서도 마지막은 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각막을 주고 가난한 여성들이 만들어 준 옷을 입은 채 떠났습니다.

10년 전 겨울, 명동성당에는 40만 명 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한 성직자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버팀목을 잃었다며 슬퍼하는 이들의 행렬, 잊지 못할 풍경은 '명동의 기적'이라고 불렸습니다.

10년이 지나 다시 명동성당에는 김수환 추기경을 추억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고맙다며,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긴 그의 빈자리는 더 큰 그리움으로 남았습니다.

(화면제공 : 페이퍼크리에이티브, 평화방송, 다큐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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