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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철도기관사 '얄궂은 운명'에 눈물만 흘렸다.

입력 2013-12-31 11:42

27년 베테랑 아버지 '노조의 뜻에 따라' 파업 동참 … 징계받을 처지
기관사 면허 아들 취업못해 애태우다 결국 '대체인력' 채용때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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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베테랑 아버지 '노조의 뜻에 따라' 파업 동참 … 징계받을 처지
기관사 면허 아들 취업못해 애태우다 결국 '대체인력' 채용때 합격

부자 철도기관사 '얄궂은 운명'에 눈물만 흘렸다.


"이럴 바에야 아들에게 기관사가 되라고 권하지 말걸…" "차라리 아버지의 뒤를 따르지 말고 다른 길을 갔어야 했는데…"

22일 역사상 최장의 파업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른 가운데 부자 철도기관사의 '얄궂은 운명'이 주변을 숙연케 하고 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지난 30일 파업을 철회하기로 한 가운데 복귀 후 징계를 피할 수 없는 아버지와 대체인력으로 채용된 아들의 얄궂은 사연이다.

# <아들>기관사가 되고 싶어 철도 관련 대학에 진학했다. 국토교통부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에 들어가려면 성적이 좋아야 한다기에 열심히 노력했다. 교육기관에서 반년 동안 사활을 걸고 매달려 최근 기관사 면허시험을 통과했다.

20대 중반. 취업이 늦은 나이는 아니지만 초조했다. 철도 관련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더 노력해 기관사 면허를 따냈지만 취업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공채 시기도 불분명해 언제까지 채용 공고를 기다려야 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해 코레일이 대체 인력 채용에 나선다는 소식을 접했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그냥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한 가지, 파업에 참여한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는 어린시절부터 아들의 우상이었던 철도 기관사다.

# <아버지>파업 15일째. 정부와 코레일 사측은 우리가 시민을 볼모로 불법파업을 벌이고 있다며 연일 강경 대응 방침을 쏟아냈다. 노조 핵심 간부에게는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사측은 고삐를 당겨 노조를 상대로 77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파업이 한창이던 그때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은 됐다. 사측이 철도파업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자 대체인력 카드를 꺼낸 상황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기관사가 되겠다며 열심히 준비했던 아들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정부에서 대체인력을 뽑는다는데 지원해볼까 합니다." 죄송한 듯 맥 없이 이야기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사연의 주인공인 최진호(아버지·가명)씨와 강해(아들·가명)씨는 모두 기관사 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철도 부자(父子)'다.

아버지 최씨는 30년 근속을 몇 년 남기지 않은 베테랑 기관사다. 지난 9일 철도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할 때 파업에 참가했다. 그리고 22일 동안 복귀하지 않은 탓에 징계를 피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최씨는 "파업을 하면 절대 정부를 이길 수 없다"며 "어떤 이야기를 해도 불법으로 내모는 데 무슨 수로 이길 수 있겠나. 각오는 하고 있다"고 심정을 밝혔다.

기관사 지망생이던 아들은 이번 파업으로 그 꿈을 임시로나마 이룰 수 있게 됐다. 사실 대학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지난 3월 기관사 면허시험에 합격한 강해씨였지만 언제 취업을 하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취업의 문은 좁은데 기관사 면허를 가진 경쟁자는 매년 500명씩 배출되는 탓에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런 강해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철도노조 파업이 길어지면서 대체인력 채용 공고가 난 것. 고민 끝에 지원해 며칠 뒤 대체인력으로 채용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해씨는 파업 중인 아버지의 자리를 꿰찼다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도전해보라는 아버지 최씨의 응원에 용기를 냈다.

결국 그는 코레일이 파업 대체인력으로 신규 채용한 기관사 면허소지자 127명 중 1명이 됐다. 이제 15일간 교육을 받으면 이달 중순께부터 부기관사로 투입돼 꿈을 이루게 된다.

강해씨는 "기관사라는 직업이 특수한 직업이다 보니 공채가 일정치 않아 늘 불안감을 갖고 지낼 수밖에 없다"며 "기관사 면허를 갖고도 노는 사람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민이 많았다. 아버지와 따로 살아서 전화로 얘기하긴 했지만 지원해보라고 하셨을 때 씁쓸했다. 괜히 잘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불과 며칠새 상황이 급변했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키로 하면서 아버지 최씨가 현업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는 아들 강해씨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다. 파업 철회로 이번에 대거 채용한 대체인력의 거취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해씨는 "이번에 교육받으러 와보니 교육기관에서 함께 준비하던 낯익은 얼굴이 많이 보인다"며 "다들 취업이 힘들다 보니 이번에 지원했다고 하는데 코레일 측에서 파업 철회와 관련해 별다른 말이 없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 기관사로 일하는 아버지가 멋있어 보여서 그때부터 기관사의 꿈을 키워왔다"며 "코레일이 일용직보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정규직을 많이 뽑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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