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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불똥에 승마계 '암울'…말 산업도 타격

입력 2016-12-22 16:31

최순실·정유라 사태에 승마 종사자 및 애호가들 '멘붕'

농축산가 신성장 동력, 취미인구 증가 등 성장세 제동 우려

"승마장 이용객 대폭 감소…극단적 사례로 심각한 타격"

꿈나무·유망주들 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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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정유라 사태에 승마 종사자 및 애호가들 '멘붕'

농축산가 신성장 동력, 취미인구 증가 등 성장세 제동 우려

"승마장 이용객 대폭 감소…극단적 사례로 심각한 타격"

꿈나무·유망주들 침체

정유라 불똥에 승마계 '암울'…말 산업도 타격


"정유라 한 명으로 인해 4만여명의 승마인 모두가 매도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최근 승마의 위상이 급격하게 추락했다. 온 나라를 뒤흔든 국정 농단 사건 장본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승마 선수로 활동하면서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자 그 불똥이 말 산업 및 승마계에도 튄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승마업계는 비리의 온상이라는 낙인에 시달리고 있다. 정씨가 승마를 매개로 협회나 대기업 등으로부터 갖가지 특혜를 입고 학창생활에서도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접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승마 자체에 대한 이미지까지 악화됐기 때문이다.

승마 유망주들은 진로 변경을 고심하고, 취미로 즐기던 일반인들의 승마장 발길조차 뜸해졌다.

또 승마와 밀접한 관계인 축산업도 타격을 입게 됐다. 승마인들은 최근 몇년 간 눈에 띄게 성장하던 말 산업에 제동이 걸릴까 노심초사 중이다.

실제 대기업 및 그 계열사들의 승마계에 대한 각종 지원 사업들이 새해부터 예산 배정에서 제외되거나 크게 축소돼 상당 부분 중단될 우려가 높은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성장하는 말 산업…승마인구 4만명 돌파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승마를 '귀족 스포츠'라고 인식하는 등 일반인이 가까이 하기 어려운 스포츠라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2012년부터 말 산업 육성을 위해 5개년 종합계획을 추진하면서 점차 생활 스포츠로서 일상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질병이 빈발하고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축산 농가의 어려움이 커지자 농가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말 산업을 육성시켰다.

비록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쳐졌으나 농림부가 말 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실제로 말 산업 전체 경제규모는 2013년 3조1399억원에서 2014년 3조2094억원, 지난해 3조2303억원으로 매년 상승했다. 말 산업 성장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말 사육두수는 지난해 2만6330두로 집계돼 2014년보다 511두가 늘어났다.

또 승마 시설 수도 457개로 2014년보다 53개소가 늘었으며, 같은 기간 승마 인구는 2378명이 증가한 4만2974명으로 조사됐다. 특히 체험 승마 인구수는 지난해 83만406명에 달했다.

아울러 정부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승마시설을 확충하면서 대중화를 위해 힘써왔다.

◇정유라 사태 두 달째…발길 뜸해진 승마장

그러나 지난 10월 정유라 사태가 터지면서 말 산업 및 승마업계 관계자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에 휩싸였다.

말 산업은 크게 승마산업과 축산업으로 나뉜다. 이 중 승마는 말 산업이 활성화되는 데 있어 중요한 판로이며 수요시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정유라 관련 승마계를 둘러싼 비리와 의혹들이 연일 보도되면서 승마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이 급속히 확산됐다. 먼저 승마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 운영자들의 한숨도 깊어졌다.

예컨대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스티븐승마클럽의 경우 이용객이 절반 가량 줄었다. 박윤경 스티븐승마클럽 대표는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으나 주말의 경우 예약률이 대략 40% 정도 감축됐다"면서 "회원들이 승마장에 오는 것을 쉬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 대표는 "승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승마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어려워졌다"며 "심지어 승마복을 입은 채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말 타는 사람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시비를 건 적도 있다"고 실상을 전했다.

이어 "사람들이 정유라 사태로 이해하고 있는 승마의 내용은 극히 일부 계층의 엘리트 스포츠로서의 부정적 측면 중에서도 극단적인 사례"라며 "이번 사태로 말 산업 전체에 대한 편견이 계속 이어진다면 심각한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경기도 화성에서 호스메이트 승마장을 운영하는 김기천 대표도 "겨울은 비수기라 다른 계절에 비해 이용객이 줄긴하지만 확실히 예년에 비해 20% 정도 줄었다"며 "무엇보다 자식에게 유소년 승마를 시키는 학부모들은 정부 지원이 줄어들까봐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승마 꿈나무 감소 우려…진로 변경 고심도

특히 업계 관계자과 승마 선수들은 이번 사태로 '유소년 꿈나무'들이 감소할 것을 우려했다. 정부는 그동안 유소년 승마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실제로 올해 전국소년체전 정식 종목으로 승마를 채택해 유소년용 승용마 보급에도 앞장섰다.

그런데 정유라의 승마특기자 부정입학 사태로 승마 전공자들이 감소하게 되면 유소년 승마도 덩달아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

김 대표는 "승마는 자세 교정, 신장 발달 등 건강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스포츠"라며 "특히 유소년들은 말과 교감을 나누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게 되고, 스스로 말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에 자신감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처럼 유소년 승마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다는 긍정적인 인식이 쌓이고 있던 상황에서 정유라 한 사람 때문에 학부모들이 승마를 시키는 것을 기피하거나 주저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안타깝다"며 "또 유소년 승마에 대한 정부의 지원까지 끊길까봐 우려된다"고 호소했다.

박 대표도 "승마는 이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이고 앞으로 신축산에는 꼭 필요한 산업"이라며 "특히 아이들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좋은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진로 변경을 고민하는 승마 유망주들도 상당수 나타나는 실정이다.

박 대표는 "승마 전공자들은 전부 다 부정입학을 했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벌써 승마학과를 없앤다는 고등학교, 대학교도 속속 나오고 있다"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승마 유망주들이 갈 곳을 잃어버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승마 선수 "많은 노력 필요…평범한 가정 선수들 훨씬 많아"

승마 선수들은 특히 승마가 돈만 있으면 다 되는 호화 스포츠로 낙인 찍힌 사실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승마 선수 중에는 부유한 집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다른 스포츠 종목과 마찬가지로 승마 역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강민수(한양대) 선수는 "정유라 사태가 터진 이후에 국민들한테 승마라는 종목이 안 좋게 비춰져 안타깝다. 비춰지는 것과 다르게 대부분 선수들은 아주 열심히 훈련하며 학교를 다닌다"면서 "학교와 승마장 거리가 대개 머니까 200km 떨어진 곳을 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선수들도 있는데 이번 일로 승마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이 많아 너무 속상하다"고 밝혔다.

강 선수는 "시합이 잡히면 이틀 전부터 말 컨디션 등을 살펴야 해서 수업에 참여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학교에서 시합 당일 이외에는 수업을 빠지면 안 되는 분위기가 됐다. 승마부가 인식이 안 좋아지다보니까 다른 종목에 비해서 더 깐깐해진 경향이 있다"며 "물론 과거에도 수업이나 시험에 불참하고 과제 제출을 안 하면 공평하게 F 학점을 받았다. 노력하지 않고 성적을 잘 받는 선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승마부가 '부르주아'로 표현이 된다. 어른들은 내가 승마를 한다고 하면 '금수저 물고 태어났네'라고 말한다"라며 "말이 비싸긴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다른 종목과 달리 살아있는 생물과 함께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말 컨디션을 아주 신경써야 한다. 나만 잘한다고, 또는 말만 잘한다고 되는 운동이 아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강 선수는 12살 때부터 승마를 시작했다. 선수 생활은 14살부터 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같이 취미로 하다가 말 발굽의 다그닥거리는 쇳소리가 몹시 좋아서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마방을 치우고 말을 닦는 등 밑에서부터 궂은 일을 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아침 8시에 시작해 오후 6시까지 훈련을 하고 말을 관리하는 등 하루 평균 8~9시간을 승마장에서 보냈다. 말이 아플 때는 하루 종일 마방에 머물고 밤새 말을 간호할 때도 있다.

강 선수는 최근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현재는 아시안게임을 준비 중이다.

그는 "승마 종목은 이번 사태 이전에도 스폰서 도움을 받기 힘들었다. 웬만하면 자비로 하고 있는데 부담이 커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며 "기업 스폰을 받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이 돼있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조차 모르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부분 선수가 다 자비로 훈련하고 시합 출전을 한다.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대학교를 가서 포기하는 선수들이 꽤 많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이미지까지 안 좋아져 종목을 바꾸거나 포기하는 후배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부자이고 재벌인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그렇지 않은 평범한 가정의 선수들이 훨씬 많다. 저 또한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다. 승마 선수들 정말 다 열심히 훈련하면서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데 사람들 시선이 한순간에 달라져서 참 마음이 아프다."

삼성을 비롯한 몇몇 대기업은 정유라의 승마 훈련을 빌미로 거액을 부당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 열린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저희가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지원이 됐던 것을 인정한다. 세세하게 챙겨보지 못해 정말 후회가 막심하다"며 거듭 사죄했다. 이런 분위기 상 한동안 대기업에서 승마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기업들이 요즘 승마 프로젝트를 기피하고 있는 양상"이라며 "선수들이 올림픽 등 큰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훈련비를 비롯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기업의 스폰이 없으면 어려운 상황이라 막막하다"고 말했다.

승마인들은 승마산업이 위축되면 축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결국 말 산업 전반이 휘청거리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박 대표는 "전공자가 없으면 유소년 승마도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말이 필요한 사람이 크게 줄고 말 생산도 확연히 감소하면서 농가도 피해를 받게 된다"며 "즉 전반적으로 말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농림부 축산국 국장, 농협중앙회 상무 등을 지낸 노경상 박사는 "엘리트 승마는 전체 승마인의 10%도 되지 않는다"며 "생활 승마와 유소년 승마가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큰 상황에서 승마 산업 전체를 귀족 스포츠, 비리 종목으로 치부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역설했다.

한편 농림부는 이번 사태가 정책에 끼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농림부 관계자는 "업계에서 힘들다는 얘기는 나오고 있지만 이는 정책적인 부분과는 상관 없다"며 "여러 논란에 흔들림 없이 정책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lje@newsis.com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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